[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갤러리 두모악에 전시된 김영갑의 생전 사진.(사진은 장태욱 기자)

‘아쉬운 대로 10년의 세월이 내겐 소중하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았고, 노인이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산중 생활의 맛을 내 식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사진으로 표현해야 할 나만의 화두가 있기에 요즘의 하루해는 너무 짧기만 하다. 누가 인간을 삼라만상의 우두머리라고 치켜세웠던가? 일주일만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 아침의 여명을 지켜보노라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화자찬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자연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있다. 보고자 하지 말고 느끼려 한다면 분명 순간순간 그 기운과 만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안개가 자욱한 때도, 바람이 심한 날이나 칠흑의 한밤중에도 신비스러운 기운은 늘 존재한다. 그 신비로운 기운 덕에 사람이거나 짐승이거거나 나무, 물 등 삼라만상 모두에 생기가 넘쳐난다. 그 신비스러운 기운 덕에 사람들은 자연의 품에 안기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렇습니다. 김영갑갤러리에서 만난 글귀입니다. 표선의 친구가 고향에 오면 왈종미술관과 더불어 꼭 들른다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전시 공간에서 이 글을 만나 글귀 앞에서 끄덕이고 끄덕이며 공감 또 공감했습니다. 제주에 오는 가족이며 친구들을 데리고 열손가락 넘기도록 레일바이크를 타고선 ‘말이야, 루게릭에 걸린 사진작가가 1년 내내 찍었다는 저기가 바로 용눈이오름이야!’라고 핏대를 올리면서도 정작은 용눈이오름 한 번 제대로 밟지 않았던 시간을 뒤로 하고 바로 그 곳을 올랐습니다. 설문대 할망이 치마로 날랐다는 흙들이 떨어져 제주의 오름이 되었다는데 어쩌면 그리도 다 다를까요? 오름마다 검은 돌과 나무와 물과 억새들이 무심한 듯 기기묘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도 감탄스럽지만 이 계절, 하늘거리는 억새가 바람을 타고 펑퍼짐한 오름에 스러지듯 눕는 광경은 사계절 중 으뜸의 풍광입니다. 중산간을 달리면서도 ‘예가 억새 군락지였나’ 싶게 가을까지 새초롬했던 들판은 금모래가 반짝이는 느낌으로 뒤척이다 어느 새 황금빛 노을처럼 퍼져갑니다. 그런 용눈이의 뒷자락은 레일 바이크를 저으면서 지켜보던 그런 날렵함은 아니었지요. 어찌 그리 실한지 뒷모습 또한 감탄하게 할 만한 억새들의 주억거림이 있더군요.

두모악이 폐교였다는 것도 잠시, 전시실을 거닐면서 본 들판은, 안개는, 노을은, 오름은 이곳이 제주였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사진들은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제주에 살면서 슬금슬금 드는 생각은 올레를 완주해야겠다는 것도, 기를 쓰고 오름을 오르고 한라산 백록담을 찍고...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을 한번 배워봐? 낚시를 꼭 해야 할 것만 같아!’입니다. 아마추어의 경지를 넘는 친구에게 ‘카메라 비싸지?’라고 물어보면 어쩐지 속물 같아서 그렇지 않아도 말꼬리가 내려가는 판국인데, 기껏 씨익 웃으며 ‘렌즈가 좀 비싸지...’라고 답할 때, ‘으응, 호사를 한번 부려봐? 버킷리스트에 카메라를 한번 올려봐?’라면서 침(?)을 흘리게 되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두모악에서 만난 사진 속의 김영갑은 그런 한심스런 치기를 확 걷어내면서 겸손해야만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해 질 무렵이나 혹은 구름이 바람에 휩쓸려 녹아버릴 듯 그런 풍광을 마주하고는 자연 앞에 겸허해지는 마음과 함께 김영갑의 선하디 선한, 그러나 심장을 찌르는 눈빛을 보고는 말없이 뒤돌아 나와 그의 물기 어린 사진첩을 다시 한 번 더 들여다보았습니다. 새로운 생기로 다시금 차오르는 느낌입니다. ‘철들면 죽는 게 인생. 여한 없다. 원 없이 사진 찍었고, 남김없이 치열하게 살았다’ 그의 말대로 치열하게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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