瀛洲吟社 漢詩 連載(영주음사 한시 연재) -21

初雪(초설) 첫눈

▶ 海言 李仁奉(해언 이인봉)

陰黑垂天鷺立沙(음흑수천로립사) 음흑이 하늘 덮는데 백로 모래에 서 있고

庭園全白透窓紗(정원전백투창사) 정원의 하얀 빛 창사에 비치네

嚴冬冷氣過村里(엄동냉기과촌리) 엄동의 찬 기운 촌락을 지나고

薄暮寒風到野家(박모한풍도야가) 땅거미 찬바람 시골집에 드네

騷客題詩長夜短(소객제시장야단) 시인이 시 짓는데 긴 밤이 짧은 듯하고

旅人酌酒早朝遐(여인작주조조하) 나그네 술 따라 마시는데 새벽이 머네

來年稼穡豊年瑞(내년가색풍년서) 명년의 농사 풍년 될 상서로움인지

暢月耽羅積六花(창월탐라적육화) 동짓달 제주에 눈이 쌓이네

시골집 올레에 함박눈이 소복이 쌓였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 解說(해설)

▶文學博士 魯庭 宋仁姝 (문학박사 노정 송인주)

 

이번에 연재하는 시는 전국한시백일장에서 여러 차례 입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해언(海言) 이인봉(李仁奉) 작가의 시이다.

이 시는 첫눈을 읊은 시로, 수련 1구의 두 번째 글자가 측성으로 시작되고 있어서 칠언율시 측기식의 시이다. 운자는 沙(사), 紗(사), 家(가), 遐(하), 花(화)로 모두 麻(마) 운통의 글자들이다.

이 시의 수련 1구에서는 음흑(陰黑)이란 시어를 쓰고 있다. 그 뜻은 ‘어두침침하다.’라는 뜻으로, 눈을 가득 머금은 어두침침한 구름이 하늘에 드리워져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2구에서는 정원에 쌓인 눈에서 발하는 하얀빛이 창문에 드리운 비단 휘장에 투과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잔뜩 흐린 하늘의 검은빛과 이미 눈이 내려 온통 하얗게 변해 버린 정원으로, 흑과 백의 색감을 대조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함련에서는 추운 겨울의 냉기가 촌락을 지나가고, 초저녁 쌀쌀한 바람이 시골집에 불어옴을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嚴冬(엄동)-薄暮(박모), 冷氣(냉기)-寒風(한풍), 過(과)-到(도), 村里(촌리)-野家(야가)’로 위아래 대구(對句)를 맞추고 있다. 여기서 ‘嚴冬(엄동)-薄暮(박모)’는 시령(時令)을 나타내는 명사 성분의 글자끼리 위아래 배치해서 대(對)를 맞추고 있고, ‘冷氣(냉기)-寒風(한풍)’부분은 천문(天文)의 현상을 나타내는 명사 성분의 시어를 위아래 배치하여 대(對)를 맞추고 있다. 그리고 ‘過(과)-到(도)’는 술어 성분으로, ‘村里(촌리)-野家(야가)’는 장소를 나타내는 시어를 위아래 배치하여 대(對)를 노련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경련에서는 내리는 첫눈에 시흥(詩興)이 일어 시를 짓는 시인의 모습과 나그네가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읊고 있다. 시인들은 마음속에서 시의 흥취가 일면 시를 읊조리게 된다. 붓을 들고 시를 읊다 보면 시제(詩題)와 운자(韻字)에 맞는 시어를 얻기가 쉽지 않다. 설령 시어를 얻었다 해도 그 시어 속에 시의(詩意)가 잘 드러나는지 살펴야 하고, 또 전체적인 내용과 조화가 잘 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시를 쓰려면 이처럼 많은 생각을 거치며 퇴고(推敲)를 해야만 겨우 한 수의 시가 탄생하게 된다. 이와 같은 작시(作詩)의 어려움은 옛 시인의 시에서도 나타나는데, 당(唐)나라의 시인(詩人), 가도(賈島)는 그의 시 <제시후(題詩後)>에서 “시 두 구절을 삼 년 만에 얻어, 한번 읊조리니 두 줄기 눈물이 흐르네.(二句三年得, 一吟雙淚流(이구삼년득, 일음쌍루류))”라고 읊고 있다. 위의 시를 쓴 이인봉 작가도 가도(賈島)처럼 마음에 드는 시어를 얻기 위해 아마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것이다. 그 깊은 생각 사이로 긴 겨울밤의 시간들이 지나가지만, 작시(作詩)에 몰입하고 있는 작가는 그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면 어느새 긴 밤은 사라지고 새벽 이미 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작가는 시어(詩語)를 찾아 나선 긴 겨울밤이 짧다고 말하고 있다.

미련에서는 가색(稼穡), 창월(暢月), 육화(六花)라는 시어를 쓰고 있다. 가색(稼穡)은 ‘곡식 농사’를 나타내는 시어이고, 창월(暢月)은 음력 동짓달을 의미하며, 육화(六花)는 눈의 이칭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동짓달에 첫눈이 내리니 내년 농사가 풍년이 들 상서로운 징조가 아닐까라고 읊으며 시를 멋있게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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