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개] 현택훈 시인의 <제주어 마음사전>(걷는사람, 2019)

책의 표지.

현택훈 시인이 자신의 정서에 깊이 박힌 제주어들을 테마로 이야기 모음을 냈다.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들은 수많은 얘기들이 가슴속에 싹을 티우고 열매가 맺었다. 시인은 그 열매를 하나씩 꺼내고 거기에 얽힌 추억을 풀어냈다. 제목이 <제주어 마음사전>(걷는사람, 2019)인데, 박들 화가가 삽회를 더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가매기(까마귀)다. 새(烏)에 대한 얘기인줄 알았는데, 거리에서 뛰놀며 까마귀처럼 얼굴이 새까매졌던 어릴 적 시절 얘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마음에 품었던 여학생을 성인이 되서 만났다는 얘기도 있다.

작가가 ‘다시 돌아간다면 까마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백에 격하게 공감했다. 작가는 ‘웃동네와 알동네끼리 편을 가르고 자치리글 하고 겨울미녀 눈싸움을 했다’고 했다. 진짜 그랬다.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고 자동차도 거의 없던 그 시절, 넓은 들판과 바다가 우리 차지였다. 그 시절엔 친구가 있었다.

돌킹이(바다 게의 한 종류)에 대한 추억도 흥미롭다. 집게다리가 몸에 비해 크고 유독 껍질이 딱딱하다. 집게다리의 힘이 얼마나 센지 손가락이 한번 물렸다하면 지옥을 경험한다. 시인의 말대로 옛날에는 동료들 사이에 ‘돌킹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이 한 명쯤 있었다. 몸이 단단하고 야문데다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키가 조그마하고 정의로우면 그렇게 불린다.

돌킹이를 놀리다 두들겨 맞은 친구의 얘기도 있는데, 더 이상 주변에 돌킹이 명맥이 끊겼다고 한다. 시인은 이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면 손해를 보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박들 화가의 삽화가 정가을 더한다.

‘베지근’이라는 단어로 소개했는데, 시인이 배지근헌 고기국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혼에 참석하는 것을 ‘국수를 먹는다’라고 부를 만큼 국수는 공동체의 결속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백석과 김소월도 국수를 먹고 시를 썼다. 자신도 백석의 고향 평안도 정주에서 국수를 먹고, 북한 사람들도 제주에서 국수를 먹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솔라니(옥돔)’도 흥미롭다. 옥돔은 생선 중 갑이다. 서귀포 사람들은 옥돔을 솔라니라고 부른다. 한라산을 경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고동을 산북사람이나 대정 사람들은 보말이라고, 서귀포와 남원, 표선, 성산에서는 고메기라고 부르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현택훈 시인은 솔라니에 대해 설명하면서 서귀포시를 사랑하다고 고백한다. 아내가 서귀포사람이기 때문에 서귀포를 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솔란이’는 산남과 산북의 문화적 차이, 그 긴장과 설렘을 상징한다. 사랑도 그 긴장과 설렘 가운데 꽃을 피운다.

언어는 사람의 문화와 정서를 담는 질그릇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느끼고 생각한다. 제주사람들은 제주어를 통해 이웃과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한다. 그런데 제주어가 소멸위기에 놓였다.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위기 4단계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제주어가 소멸되면 수천 년 동안 우리 문화의 원형을 지켜온 그릇이 깨질지도 모를 일이다.

현택훈 시인은 61개 단어마다 각각에 담긴 에피소드와 추억들을 소환했는데, 거기에는 맛과 향이 담겼다. 제주사람에 전하는 제주어의 힘이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