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아이들의 복지를 상징하는 조형물.(사진은 pixabay)

정말 우연한 기회로 상담소에 발을 담근 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을 지냈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자모회에서 만난 이곳 표선출신의 친구를 따라 안양여성의전화에서 여성주의상담원양성교육을 받고 나서는 막상 전화 상담을 해야 하는 자원봉사가 너무 떨리는 일이라 교육 수료증을 받고 차일피일 상담을 미루면서 반년 너머 계속 공부모임만 나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12월 마지막 날을 며칠 앞두고 심호흡을 하면서 전화상담실에 들어가 첫 전화를 받던 날의 생생하고 벅찬 감동은 지금도 어제인 듯 기억납니다. 이제 그 딸이 손녀를 낳았고, 2대를 내려가는 그 세월을 지나는 동안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신체적인 상처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내담자를 만나고 감정이입이 된 채로 쓸쓸했던 며칠을 보낸 적도 있으며, 성폭력 피해자의 재판과정에서 억울함과 막막함을 호소하는 내담자와 보호자를 만나면서 우리 사회의 인식과 가치관에 대하여 답답한 심정을 함께 토로하면서도 정작은 피해자에게 차마 아무런 말도 못하던 상황도 정말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잊지 못할 것은 피해자와 함께 하는, 혹은 피해자의 모습 뒤에서 웅크린 듯 수줍은 듯 숨어있는 많은 아이들과의 만남은 정말이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또렷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술 먹고 들어와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면 자는 척했다는 3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의 놀라움이란...., 가정폭력이란 과연 부부싸움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아이가 어리면 미성숙하다는 말로 다 덮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지 쉼터에서, 상담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미성숙이란 단어로 덮어서 한 켠으로 치워버리기에는 감정도, 생각도, 인지도, 행동도 어른 못지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허다한 사회복지 분야에서 영유아복지도 아니고 태아복지라는 과목을 처음 접하고 아주 생소했던 기억이 납니다. 태아복지의 시작은 놀랍게도 말 그대로, 출산의 순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란의 착상을 그 시작으로 봅니다.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 자리 잡는 순간부터 사회문화적으로 이미 인간임을 인정하고 사회복지적인 관점으로 돌보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아이를 태중에 품고 있는 엄마와 배우자인 아빠가 이루어내는 가정이란 울타리와 더 나아가 사회적인 개념까지 포괄해서 하나의 수정란이 건강하게 출생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인식의 출발점을 태초의 관점에서 시작해야함을 역설합니다.

인권(humanrights)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모든 권리 또는 지위와 자격을 총망라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정은 사회구성의 기본단위로 아이들의 사회화를 돕는 최초의 집단이기 때문에 어른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높아지고 이혼율의 증가 등으로 인하여 자녀양육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아이들이 가정 안에서 비록 작지만 아이의 인권을 보장해야 되고, 부모로서 정서적으로 원만하고 화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유기나 학대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안정된 양육환경이라고 부를 수 없듯이 배우자를 향하여 신체적, 정서적, 성적, 경제적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정 안에서부터 서로가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평등권과 존엄성은 바꿔 말하면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굳이 인권이 ‘관계’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자각이며, 실천이라는 말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누구나 잘 살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그것, 행복하다고 아이들을 포함하여 가족 구성원 누구나가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그것은 가정폭력이 없는 건강한 가정이 그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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