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가게] 자연의 연필

▲ 자연의 연필 사진관 전경. (사진= 설윤숙 객원기자)

“스마트폰에 아이 사진은 가득한데, 부모님 사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 말을 듣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필자의 핸드폰에도 아이와 함께하지 않은 내 부모님의 사진은 없다.

호근동에 위치한 사진관 ‘자연의 연필’에서 이규호 작가를 만났다.

필자의 아이의 여권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을 검색하다 알게 된 사진관. 홈페이지에서 눈길을 사로잡던 가족사진. 몇 년 전부터 아이가 가족사진을 갖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이번에 마음을 먹고 아이 여권 사진을 찍으며 가족사진까지 촬영했다. 그렇게 찾아오게 된 ‘자연의 연필’ 사진관이다.

사진을 찍고 공부하며 대학에서 사진 강의를 했던 이규호 작가는 8년 전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왔다. 셀프웨딩 촬영의 시초가 된 이규호 작가의 이야기는 <어느 멋진 날>이란 책이 출판되며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2017년까지 셀프웨딩, 야외 촬영으로 몇 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이규호 작가는 작년 4월 ‘자연의 연필’ 사진관의 문을 열었다.

자연의 연필 사진관 내부 모습. (사진=이규호 작가)
자연의 연필 사진관 내부. (사진=이규호 작가)

‘자연의 연필’. 상호에서 느껴지는 고전적 느낌이 그냥 좋았다. 도화지 위에 연필로 쓱쓱 스케치하듯 과하지 않고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움으로 본연의 모습을 전해줄 것 같은 따뜻하고 정직한 이름.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샌드라는 이름의 귀여운 강아지가 쪼르르 쫓아와 반긴다. 크지 않지만, 클래식하고 따뜻하며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진관이다. ‘The pencil of Nature’ 자연의 연필은 1843년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 작가의 최초 사진집 이름이다.

강아지 샌드는 유기견이었다. 우연히 샌드를 입양하고 나서 작가는 본인이 가진 것으로 베풀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유기견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버려진 동물들의 사진은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얼굴이다.

야외 촬영으로 인연을 맺고 1년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는 어느 가족, 돌 사진을 찍고 4살이 되어 다시 온 꼬마, 자연의 연필 블로그를 고등학생 때부터 봐오며 성인이 되어 결혼사진을 찍으러 온 블로그 이웃.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족을 이루고 매년 여행은 못 가도 가족사진을 찍자며 매년 방문하는 한 가족. 엄마, 아빠, 아이의 가족사진을 찍으러 방문했다가 친정 식구, 시댁 식구와 또 방문해 소중한 이들의 순간을 함께 기록하는 이들.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자연의 연필’ 사진관을 꾸준히 찾아오는 이들이다.

이규호 작가는 그에게 다녀간 이들의 사진을 몇 년이 지나도록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손끝과 렌즈를 통해 남겨진 ‘사진’ 한 장은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이다.

“애기일 때 사진을 찍고서, 몇 년 후 다시 사진을 찍으러 방문한 아이의 예전 사진을 찾아봐요. 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리고 저의 삶, 누군가의 삶에 대해 생각을 하게 돼요.”

사진관은 작가의 작업 공간이자 가족의 휴식 공간이며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다.

“자, 긴장 푸시구요. 고개를 조금 돌리시구요. 사진 찍습니다.”

몇 십 분 만에 끝나는 사진 촬영이 아니다. 작가와 손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나눈다. 작가와 피사체의 소통은 렌즈를 통해 전해지는 피사체의 자연스러움을 끌어낸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옷장을 열고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고민하며 옷을 골랐어요. 후에 옷장에서 그 옷을 발견할 때 ‘그래 내가 이 옷을 입고 그때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었지’하며 기억을 되살리게 되죠. 이 모든 것들이 촬영의 일부에요. 기억 속에 살아있는 이야기들”

사진관 ‘자연의 연필’. 내 삶의 한순간, 사진으로 남긴 기록은 사진 한 장의 의미를 넘어 그때의 기억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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