瀛洲吟社 漢詩 連載(영주음사 한시 연재)-23

獨酌雪夜(독작설야) 눈 내리는 밤에 독작하다.

▶野彦 蔡秦培(야언 채진배)

 

雪夜寒燈黃卷冬(설야한등황권동) 엄동 설야의 한등 아래 책을 펼쳐 드니

先人玉韻寫充胸(선인옥운사충흉) 선인들의 훌륭한 문장 가슴에 그려 채운다

塞鴻遠映隔江畔(새홍원영격강반) 새 홍의 먼빛은 저 강둑 건너에

雲鶴長鳴過月峯(운학장명과월봉) 운학의 긴 울음은 월봉을 넘어간다

職分可知今得靜(직분가지금득정) 직분을 알며 안정을 얻을 것이요

事緣未遂老如慵(사연미수노여용) 사정의 연유를 못 따라 늙음에 게으름뿐

煎茶石鼎滿香室(전차석정만향실) 석정에 차 다리는 향기 집안 가득

獨酌爐邊聞寺鐘(독작로변문사종) 홀로 화롯가에 잔 들고 절 종소리 듣노라

눈 내리는 밤, 가로등이 골목을 밝히고 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 解說(해설)

▶文學博士 魯庭 宋仁姝 (문학박사 노정 송인주)

 

이 시는 첫 줄 두 번째 글자인 ‘夜(야)’자가 측성이기 때문에 칠언율시 측기식의 시이다. 운자는 ‘冬(동), 胸(흉), 峯(봉), 慵(용), 鍾(종)’으로 모두 ‘冬(동)’운통의 글자들이다.

이 시의 수련에서는 겨울밤에 책을 펼쳐 들고, 옛 선인들의 옥운(玉韻), 즉 시를 읽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부분을 보면 황권(黃卷)이라는 시어를 언급하고 있다. 황권은 ‘서적’이란 뜻인데, 옛날에는 황벽나무의 즙으로 종이를 누렇게 물들여 좀이 이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서적을 황권이라고 불렀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고서적 느낌이 나는 황권을 눈으로만 대강 훑고 지나가지 않고, 선인들의 문장을 가슴속에 그려 넣으며 시를 음미(吟味)하고 있다.

함련의 1구에서는 ‘새홍(塞鴻)’이란 시어를 쓰고 있는데, 그 뜻은 변방의 기러기라는 뜻으로, 이 부분에서는 멀리 보이는 변방의 기러기가 강둑을 넘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2구에서는 운학(雲鶴)을 언급하고 있다. 운학은 ‘한가로운 구름과 학’을 나타내기도 하고, 학(鶴)을 바로 운학(雲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는 ‘塞鴻(새홍)-雲鶴(운학), 遠映(원영)-長鳴(장명), 隔(격)-過(과), 江畔(강반)-月峯(월봉)’으로, 위아래 대(對)를 맞추고 있고, 시어들은 ‘2+2+1+2’ 구조로 위아래 배치하고 있다.

경련에서는 시상을 한껏 굴려 멋있게 시를 전개해 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을 보면 ‘職分可知(직분가지)’라는 표현이 있다. ‘職分可知(직분가지)’는 ‘목적어+술어’ 구조로, 작가는 여기서 시의 평측(平仄)을 맞추기 위해 술어와 목적어의 어순을 도치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와 대(對)를 이루는 2구의 ‘事緣未遂(사연미수)’ 부분도 술어와 목적어를 도치시킨 문장 구조로 시어를 배치하고 있다. 옛 시인들의 한시에서도 이 부분처럼 어순을 도치시키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런 어순의 도치는 원뜻을 파괴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

미련에서는 돌 솥에 차를 달이는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고, 화롯가에서 절의 종소리를 듣는 모습을 묘사하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차는 시인들이 즐겨 마시던 기호품으로, 시인들은 차를 즐기며, 차를 시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당대(唐代)의 이백과 두보의 시에서도 차를 언급한 시들을 찾아볼 수 있고, 송대(宋代)의 유명 시인들은 대부분 차를 즐겨 마시며, 많은 다시(茶詩) 읊어, 1,000여 수에 달하는 다시(茶詩)를 남겼다.

보통 시의 제목에 독작(獨酌)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술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를 쓴 작가는 독작이란 시어가 주어졌지만, 술을 선택하지 않고 차를 소재로 삼아 시를 읊었다. 만약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술을 읊었다면, 눈 오는 밤에 혼자 술을 마시는 내용으로 시가 전개되어, 시의 분위기가 조금 처지고 쓸쓸함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작가는 술 대신 차를 시의 소재로 삼아, 차의 은은한 향기로 맑고 정결한 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시어들 속에서 한가롭게 차를 즐기는 고상(高尙)한 선비의 품격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마지막 구에서는 절의 종소리를 묘사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정화 시킬 수 있는 맑고 은은한 분위기의 시 한 수를 완성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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