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의 선구자 나비박사 석주명(2)

토평사거리에 있는 석주명 기념비(사진은 윤용택 교수 제공)

석주명 선생은 나비박사이면서 제주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두 별칭만으로는 그의 면면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석주명 평전’을 쓴 이병철은 그를 나비를 쫓아 한반도 곳곳을 누빈 곤충학자,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산을 오른 산악인, 한국 최초로 방언사전을 펴낸 국학자, 국제어인 에스페란토 보급에 힘쓴 세계평화주의자, 우리나라에서 시간을 가장 잘 아껴 쓴 사람 등으로 평하고 있다. 석주명은 학문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기타와 만돌린을 잘 쳤고, 제주민요 ‘오돌똑(오돌또기)’을 최초로 채보하기도 하였다.

요즘은 학문이 세분되고 전문화 되다보니까 인문학자는 과학을 모르고, 과학자는 인문학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석주명은 “학문이 아무리 분리되었다고 하더라도, 한 분야의 권위자는 다른 분야에도 통하는 데가 있다. 내가 전공하는 나비를 예로 들어 나비학의 권위자가 되려면, 직접 관계되는 곤충학에도 통해야 하고, 동물학 전체에도 다소는 통하여야 될 뿐만 아니라, 더 크게 생물학에도 얼마큼은 통하여야만 된다.”고 하였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것들을 알아야 하고, 어느 하나를 깊이 알게 되면 그와 관련된 다른 것들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나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자연과학 전반과 인문학까지도 공부했고, 그 덕분에 여러 분야에서 폭넓은 학문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박사(博士)’의 원래 의미는 두루두루 넓고 깊게 아는 사람을 뜻하지만, 오늘날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긴 해도 넓게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석주명은 나비연구를 위해 전국을 누비면서 각 지역마다 독특한 방언이나 문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특정지역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자연, 인문, 사회 현상 전체를 연구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는 좁게는 나비학자 내지는 곤충학자요, 넓게는 생물학자 내지는 자연과학자이지만,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든 매우 특이한 연구자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나비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문사회분야까지 폭넓게 연구했던 명실상부한 ‘박사’이다.

석주명은 일제강점과 해방정국 시기를 살면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나라 생물상이 독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 생물학’을 주창하면서 당대의 여러 분야 학자와 국학운동을 펼친 민족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는 자국민과는 모국어로, 외국인과는 세계평화언어이자 세계공통언어인 에스페란토로 소통할 것을 주장하면서 교재를 만들고 보급한 에스페란토 운동가이자 세계주의자였다. 그는 지역문화가 살아야 민족문화가 풍성해지고,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가 살아 있어야 인류문화가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지역주의, 민족주의, 세계주의 어느 한 쪽에 매몰되거나 배척하지 않고 그것들을 잘 받아들여 조화를 이뤘다.

석주명은 다양한 분야에 두루 능통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이념이나 관점을 녹여내어 화합하려 하였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과 탁월성을 발휘한 팔방미인의 학자요, 한국의 르네상스인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강조하고,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석주명 선생에게 배워야 할 점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지역과 세계, 특수와 보편, 전통과 현대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잘 녹여내었던 통섭과 조화의 정신이다.

윤용택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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