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국립제주박물관 <낯선 곳으로의 여정, 제주 유배인 이야기>

국립제주박물관이 유배문화 특별전 <낯선 곳으로의 여정, 제주 유배인 이야기>을 마련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유배(流配)란 중죄인을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보내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귀양, 귀향 등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조선시대에는 사형(死刑) 바로 전 단계의 중한 형벌이었다.

제주섬은 조선 제일의 유배지였다. 유배인들은 제주라는 멀고 낯선 땅에서 궁핍과 질병, 고독의 공포에 맞서야 했다.

설 연휴를 맞아 국립제주박물관을 찾았다. 유배문화 특별전 <낯선 곳으로의 여정, 제주 유배인 이야기>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1부. 먼 길 낯선 여정, 제주 유배를 들여다보다>에서는 제주에 유배된 인물들의 다양한 면면을 조명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광해군에 대한 기록 『광해군일기』(국보 제151-4호)다. 광해군은 조선 제15대 임금이었지만 인조반정으로 인해 죄인의 신분으로 추락했다. 강화에 유배된 후 태안으로 옮겨졌고, 1623년에 제주에 들어왔다. 광해군이 남겼다는 시 한 소절과 광해군일기가 그의 파란만장한 생을 쓸쓸하게 증언한다.

그리고 조광조의 벗이었던 충암 김정의 『충암집』, 노론의 영수 송시열 초상화와 글씨, 한말 의병장 <최익현 초상>(보물 제1510호), 한말 정치가였던 박영효의 글씨, 제주의 마지막 유배인 이승훈의 재판기록 등이 소개된다.

제주 최고령 유배인 신임의 초상화.

제주 최고령 유배인 신임의 초상화도 인상적이다. 신임은 숙종 9년(1683)에 제주에 유배된 아버지 신명규의 석방을 호소해 풀려나게 했다. 이후 신임옥사(1722) 과정에서 연잉군(훗날 영조)을 보호하고 소론을 비판하는 소를 올려 대정현에 유배됐다. 나이 84세에 겪은 고초인데, 이듬해 영조가 즉위하고 해배돼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망했다.

그리고 그간 알려져 있지 않았던 <대정현 호적자료>도 전시됐다. 호적자료에서 당시 유배인들과 적거지 보수주인 등의 명단도 확인할 수있다.

<2부. 낯선 땅 가혹하고도 간절했던 시간을 기다리다>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3대가 제주에 유배 온 가문, 외롭고 처참했던 유배 생활에서 찾아온 사랑, 자신을 돌아보고 학문에 정진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 등 절절한 사연 등도 전시됐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풍비박산됐던 김진구 일가의 사연이 인상적이다. 숙종과 궁녀 장 씨 사이에 왕자 윤이 태어난 파급된 여파로 서인이 몰락하고 남인이 정치 실세로 등장하게 됐다. 숙종은 윤을 원자로 책봉하고 장 씨를 희빈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서인들을 대거 탄핵해 유배형에 처했다.

김진구의 일가는 당시 화를 입은 대표적인 서인의 가문이다. 김진구의 삼촌 서포 김만중은 남해로, 동생 김진구는 거제도로 각각 유배됐고, 김진구와 아들 김춘택, 사위 임징하 등은 모두 제주섬에 유배됐다. 김진구는 유배지에서 당시 제주목사였던 이익태와 가깝게 지내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김춘택은 제주 유배기간 별사미인곡을 포함해 많은 시문을 남겼다.

김진구와 그의 절친 야계 이익태, 아들 김춘택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김춘택, 임징하의 시문 등도 볼 수 있다.

대정읍 동성리 호적자료.

조태채와 증손녀 조정철에 이르기까지 조 씨 가문의 기막힌 사연도 만날 수 있다. 조태채는 신임옥사에서 연잉군을 지지하다 화를 입었고, 진도에 유배된 후 사사됐는데 영조가 즉위한 후 복권돼 사충사에 배향됐다.

조태채의 장남 조정빈은 정의현에, 차남 조관빈과 손자 조영순은 대정현에 유배됐다. 이후 조영순의 아들 조정철은 영조시해사건에 연루돼 제주목에 유배됐는데, 유배지에서 홍윤애와 더불어 꽃피운 사랑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조태채와 조관빈의 초상화와 조간빈의 <회헌집>, 조정철의 <정헌영해처감록> 등이 전시됐다. 또, 조정철이 세긴 홍영랑 묘비명도 탁본으로 전시됐다.

제주의 대표 유배인으로 제주 유배 시 추사체를 이룩한 김정희의 <수선화 시 초고>, 충남 예산 김정희 종가에서 전래되는 벼루와 붓(보물 제 547호)을 비롯해 김정희가 친구 권돈인에게 써준 <묵소거사자찬>(보물 제1685-1호), 김정희 제자 허련이 그린 <완당선생해천일립상> 등이 전시됐다. 추사가 아내에게 써준 편지를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살필 수 있다.

<3부. 제주 유배, 그 후>에서는 유배인이 제주에 남긴 흔적과 제주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개했다.

제주의 오현인 김정‧정온‧송상인‧김상헌‧송시열의 시문집과 오현의 사적을 기록한 <오선생사적>, 일제강점기 때 탁본된 <우암송선생유허비 탁본>을 통해 제주에 뿌리내린 오현에 대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유배지에서 가문을 형성한 김해김씨, 청주한씨 족보 등 제주에 뿌리 내린 입도조 자료도 함께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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