瀛洲吟社 漢詩 連載(영주음사 한시 연재)-24

初冬午夜與客話(초동오야여객화) 초겨울 깊은밤 나그네와 얘기 나누다

▶伽泉 金安國(가천 김안국)

 

涯家日暮影明窓(애가일모영명창) 강변 집에 날이 저무니 창에 비친 그림자는

與客情談老一雙(여객정담노일쌍) 객과 더불어 정담 나누는 노부부라

津店耆婆誇弄埠(진점기파과롱부) 나루터 점포 할미는 부두의 농담 자랑하고

渡船主叟說遊江(도선주수설유강) 도선 선주 영감은 강 놀이 설명하는데

西山側月消於盞(서산측월소어잔) 서산으로 달 기울어 잔 속에서 사라지고

東嶺晨星閃以缸(동령신성섬이항) 동쪽 마루 뜬 샛별은 술 항아리에 반짝이네

午夜何時過不識(오야하시과부식) 밤이 어느새 지났는지 알지 못하고

事緣無極襞增腔(사연무극벽증강) 무슨 사연 그리 많아 빈속에 주름살 더할까

눈 쌓인 포구(사진은 장태욱 기자)

◉ 解說(해설)

▶文學博士 魯庭 宋仁姝 (문학박사 노정 송인주)

 

초겨울 한밤중에 손님과 정담을 나누는 잔잔한 삶이 향기가 전해지는 이 시는 칠언율시 평기식의 시로, 운자는 모두 ‘강(江)’ 운통의 글자인 ‘窓(창), 雙(쌍), 江(강), 缸(항), 腔(강)’이다.

수련 부분에서는 강변의 집에서 손님과 정담을 나누는 노부부의 그림자가 창에 드리운 모습을 묘사하며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 부분 1구의 해석을 보면, 1구에서 문장을 끝내지 않고 2구와 문장을 이어가며 시를 전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구를 살펴보면 ‘전치사+명사+명사’ 구조인 ‘與客情談(여객정담)’과 ‘명사+명사’의 구조인 ‘老一雙(노일쌍)’으로 문장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명사 성분인 ‘情談(정담)’을 ‘정담 하다.’라는 술어로 해석을 하고 있고, 또 명사+명사 성분인 ‘老一雙(노일쌍)’도 ‘노부부라’로 풀어서 술어로 해석하고 있다.

함련에서는 나루터의 할머니가 삶의 터전인 부두에서 오가는 농담을 자랑하는 모습과, 선주 영감이 강 놀이를 설명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수련의 상황을 더욱 자세하게 묘사하며 시상을 이어가고 있는데, 작가는 여기서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반 사람들의 편안한 일상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듯이 자연스럽게 표현해내고 있다. 그리고 위아래의 문장을 ‘津店(진점)-渡船(도선), 耆婆(기파)-主叟(주수), 誇(과)-說(설), 弄埠(롱부)-遊江(유강)’으로 대(對)를 맞추고 있다.

경련 1구에서는 작가가 달이 드리운 술잔을 대하고 손님과 정담하고 있는 동안, 어느덧 시간이 흘러 달이 서산으로 기울고, 이에 술잔 속의 달도 더불어 사라짐을 묘사하고 있다. 이 부분은 송(宋)나라 소식(蘇軾)의 시(詩), ‘月夜與客飮杏花下(월야여객음행화하)’중에 등장하는 ‘술잔 속의 달을 또 마시라고 그대에게 권하노니(勸君且吸杯中月)’라는 구절이 문득 연상된다. 그리고 경련 2구에서는 손님들과 정담(情談)하는 동안, 동쪽 산마루에는 벌써 새벽이 찾아오고, 술 항아리에는 샛별이 드리워 빛나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이 두 구(句)에서는 서산에 기우는 달과 산마루의 새벽 별로, 시간 흐름을 잊으며 손님과 새벽까지 정담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시속에 묘사하는 잔 속의 달과 항아리 속의 별은 추운 겨울밤 실외에서 마시는 술잔에 비치는 실제의 달과 별이 아닌, 고아한 시상을 가진 시인의 맑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잔 속의 달과 술 항아리 속에서 빛나는 별일 것이다.

미련에서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눠도 끝이 없는 정담 속에는 사연도 많아, 가슴속에는 아마도 주름살이 더해졌을 것이라고 말을 하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날이 쌀쌀해지면 여러 사연으로 주름살이 늘어가는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추워진다. 그런 겨울날, 힘든 내 마음의 이야기를 밤새도록 불평 없이 들어줄 대화의 상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 시를 감상하노라니 겨울밤 정담(情談) 속에서 추위를 사르르 녹여주는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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