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의 선구자 나비박사 석주명(6) 곤충학자의 꿈을 키운 가고시마고농림학교 시절

가고시마농립학교 시절

석주명은 1926년 송도고보를 졸업한 후 생물교사였던 원홍구의 영향을 받아 일본 가고시마고등농림학교(鹿兒島高等農林學校, 이하 가고시마고농)에 입학하였다. 식민지 조국의 부흥을 생각하여 낙농과 축산을 염두에 두면서 농학과에 진학한 것이다. 일본제국은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농업을 진흥하고 아시아로 진출하는데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해 고등농림학교를 세우기 시작했다. 가고시마고농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고등농림학교로 동남아시아 자원을 개발할 농업기술자나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8년 설립된 가고시마고농은 1944년 가고시마농림전문학교로 되었고, 1949년에는 가고시마대학 농학부로 편입되었다.

석주명이 입학하던 1926년 가고시마고농은 농학과, 임학과, 농예화학과, 양잠학과 등 4학과로 편제되어 있었고, 농학과는 두 전공, 즉 1부(농학일반), 2부(농예생물학전수)로 나눠져 있었다. 농학과 1학년 학생들은 전공에 상관없이 수신, 작물학, 지질학 및 토양학, 측량학, 양잠학, 법률 및 경제학, 물리학 및 기상학, 화학, 동물학 및 곤충학, 식물학 및 식물병리학, 외국어, 체조, 실습을 수강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2학년에 진급하면서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석주명은 농학과를 1년 다니는 동안 우수한 생물학 교수들의 강의와 곤충학자 파브르, 한국인 육종학자 우장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물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2학년에 진급하면서 농학과의 두 전공 가운데 ‘농예생물학전수’를 선택하였다. 당시 농예생물학은 주로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곤충들을 연구했는데, 해충들 중에는 나방 종류가 많기 때문에 가고시마고농 생물학 교수들은 나방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에 가고시마고농은 실습에 중점을 둬서, 농학과의 경우 1학년은 가고시마현의 사다실습장에서 3일간, 2학년은 큐슈의 동서연안지대를 매년 번갈아가면서 6일간, 3학년은 조선, 타이완 또는 국내를 3주간 견학 여행하여 조사보고서를 쓰도록 하였다. 그리고 농예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동식물을 채집하고 표본을 제작하는 것을 배우고, 교내 생물학동아리인 가고시마박물동지회에서 연구발표하고, 졸업반인 3학년 여름에는 지도교수와 함께 10일간 채집여행을 다녀와야 했다.

당시 가고시마고농에는 생물학 교수들 가운데 오카지마 긴지(岡島銀次, 1875~1955) 교수는 석주명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도쿄제국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가고시마고농 설립 당시부터 1936년까지 재직했던 동물학, 곤충학, 양잠학의 대가로 나비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교내에 ‘박물동지회’를 만들어 학생들의 과외할동을 지도하였고, 가고시마현의 중등교원과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박물학회’를 만들어 동식물 및 광물을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교육도 하였다. 그는 천연기념물 조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적과 자연경관 보호운동을 펼쳤고, 일본곤충학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는데, 엄격하면서도 온후하고 관용적이어서 많은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석주명은 졸업반이자 3학년이던 1928년 8월에 오카지마 교수와 타이완 채집여행을 다녀왔다. 당시에 오카지마는 비가 내리는 데도 하루살이 수백 마리를 삼각봉지에 담아 일일이 분류하여 곤충채집 과제를 완수한 석주명을 눈여겨보았다. 그는 가고시마고농을 졸업한 다음 귀국하는 석주명에게 다른 사람이 시작하기 전에 조선 나비를 연구하는데 10년만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을 권유하였다. 석주명이 나비를 연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오카지마 교수의 권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훗날 그는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금강산에서 발견한 부전나비의 신아종에 ‘긴지부전나비’라 명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국내 학계에서는 그것을 ‘깊은산부전나비’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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