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親BOOK)회담 3] 제남도서관 귤향기책사랑동호회 <여자짐승아시아하기> 토론

귤향기독책사랑동호회가 21일 제남도서관에서 독서토론을 열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늦은 저녁에 한적한 시골 도서관에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여성들인데 낮에 일을 마치고 모인 듯하다. 여성시인이 쓴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자신의 애 낳던 경험, 직장내 성추행 피해경험까지 나온다. 1시간30분이 훌쩍 지났다.

서귀포시 남원읍 제남도서관 귤향기책사랑동호회(회장 김조희) 회원들이 금년 첫 독서토론을 열었다. 회원 15명 가운데 12명이 20일 저녁 7시30분, 도서관에 모였다. 이날 소재는 김혜순 시인의 <여자짐승아시아하기>(문학과지성사, 2019)이다.

<여자짐승아시아하기>는 외형상 작가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기록한 기행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시인은 국가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강요되고 억눌린 가장 작고 낮은 것들 - 여자와 짐승 - 과의 만남과 그들에 대한 연민을 기록했다.

우리의 문법이 사고를 구속한다. 마찬가지로 ‘거대한 국가이념’은 여자와 짐승의 자유로운 생명활동을 구속하고 이들에게 오명을 덧씌웠다. 여자·짐승과 정서적 유대를 맺기 위해서는 시간의 제약을 거부하고 국가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여행자는 자신의 존재를 내려놓고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문법을 파괴하고 언어를 해체한다. 책을 읽어도 어느 곳의 이야기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장소가 아닌 존재의 실상과 허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눈의 여자

히말라야의 설산을 배경으로 전해지는 전설 속 주인공인 듯하다. 그래서 시인은 ‘눈의 여자는 마치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 몸속에다 놓아버린 어머니의 몸처럼 흐릿함을 몸에 두르고 상실의 높은 봉우리 위를 휙 지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보자마자 달아나는 사람, 혹은 비명을 지르는 사람,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스스로를 ’무서운 것‘ 혹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추측한다’고 했다.

그리고 훅 던지는 이상 시인의 ‘오감도’. 김혜순 시인은 ‘무서운 아이’(식민지 백성)와 ‘무서워하는 아이’(식민지 질서)를 대비한다. 설산보다는 설산을 무섭다고 하는 이들이 훨씬 위험한 자들이다. 여자와 짐승을 볼온하게 여기는 자들 역시도 그렇다는 주장일 게다.

#쥐

쥐는 전염병을 옮기고 남의 것을 훔치며, 더러운 곳에 산다고 알려져 왔다. 도대체 인간을 위해 무익한 존재로 여겨지는데, 인도에는 쥐를 숭배하는 까르니마타 사원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쥐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맹수들이 쥐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철망을 둘렀다.

쥐가 달걀을 다루는 방식도 소개했다. 쥐 한마리가 달걀을 안고 드러누우면 다른 쥐가 그 쥐의 꼬리를 물고 쥐구멍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맛있게 나눠먹는다.

이곳 사람들의 배설하는 장면도 소개했다. 공공장소에서 배설하는데 부끄러움이 없고 배설하던 소녀가 행인에게 인사를 한다. 정신보다 몸이 우선이다.

결국 문명이란 게 약한 존재에는 편견이며 폭력이다. 강자들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일부였던 여성을 구속했고, 짐승에게 더러운 이미지를 덧씌웠다.

토론회.(사진은 장태욱 기자)

책은 시공을 옮겨 다니고 많은 은유와 상징을 동원한다. 그래서 독서토론에 참가한 회원들은 대체로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최경옥 회원은 “책이 분량이 적어서 읽기 편하겠다 싶었다. 크게 ‘눈의 여자’와 ‘쥐’ 두 단락으로 구성됐는데, ‘눈의 여자’ 읽다가 어려워서 ‘쥐’ 단락은 읽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문성은 회원은 “저자가 무엇에 대해 기술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주어진 대상을 해체하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표현하기 때문에 읽기에 난해하다. 처음에 오감도 시를 보여줬는데, 그 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입부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야만 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작가가 언제 어디에 가서 뭘 했는지 드러나지 않지만 해체되고 분해된 후에 진실이 전달될 수도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민혜란 회원은 “작가가 ‘시하기’, ‘여자하기’, ‘짐승하기’처럼 ‘하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은 작가가 아시아 여성으로서 실천의지를 드러냈다고 본다”라고 말한 후 “문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더라고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면 만족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여성으로서의 피해의식에 대한 대화도 오갔다. 김조희 회장은 “여성으로서의 지나친 피해의식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말했고, 민혜란 회원은 “시인이 55년생으로 나와 동감내기다. 우리세대에는 낙인과 폭력이 일상화됐었기 때문에 시인의 글이 절실히 다가왔다”고 말했다.

책은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더불어 구걸하는 모습, 오염된 강물 등 부정적 장면들도 그렸다. 이와 관련해 회원들은 저자의 의도를 읽기 어렵지만 날것 그대로의 아시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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