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장태욱 편집국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해 도시가 물에 잠긴 장면이다.

현대사회는 고도로 발달한 테크놀로지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가지 재난에 취약성을 보인다. 세계 최강국 미국도 가끔 허리케인이나 폭설, 대형산불 앞에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보였고,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도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와 코로나19의 역습으로 국가 위기상황을 맞았다.

재난의 공격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동일한 규모의 재난이라도, 부유한 국가보다는 빈곤하고 비민주적 국가에 더 혹독한 충격을 불러오는 경향이 있다.

사회가 도로로 복잡해지면서, 재난이 한번 발생하면 거대도시에 밀집된 수많은 시민에게 물리적·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긴다. 그런 이유로 최근에는 안전관리학과 심리학, 사회과학, 정치학, 경영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재해는 사회구성원에게 큰 상처를 남길 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큰 영향을 남긴다. 일반적으로는 정권을 위태롭게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정권을 더욱 안정화하기도 한다. 두 가지 상반된 사례가 있다.

1985년 멕시코시티에서 리히터 8.2의 초대형 지진이 발생해 1만 여명이 사망했다. 관료주의에 빠진 정부가 복구에 늑장을 부렸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구조와 건물 복구에 참여했다.

멕시코는 1982년 금융위기를 겪은 후 막대한 외채를 갚기 위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양극화가 심화됐던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무능한 정부에 분노했고 집권 제도혁명당에 대한 지지율이 급감했다.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도혁명당을 심판했지만 여당은 개표조작을 통해 살리나스 후보를 권좌에 올렸다. 콰우테목 카르데나스 후보는 중도좌파 선거연합 민족민주전선(FDN)의 후보로 출마해 사실상 승리했으나 여당에게 승리를 도둑맞았다.

지진은 사회에 많은 물리적 피해를 입혔지만 멕시코 시민사회는 지진 당시 정부보다 훌륭한 조직력으로 복구 과정에 기여했다는 자신감으로 결집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정권교체까지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다. 시속 200㎞에 달하는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의 공격으로 뉴올리언스 둑이 무너졌고 최대 높이 6m에 해당하는 홍수가 도시를 덮쳤다. 카리브해의 전통과 흑인문화 등이 뒤섞인 독특한 문화도시, 재즈로 상징되는 미국의 '보물' 뉴올리언스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

당시 홍수로 약 1천800명이 사망했고 도시의 80%가 침수됐으며 가옥 10만채가 파손됐다고 전한다. 재산피해액은 1000억 달러(약 120조 원)로 추산됐다.

그런데 당시 뉴올리언스 시장인 네이진(Ray Nagin)은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 주민의 대피 및 복구에 최선을 다했다는 평을 받았다. 물바다로 변한 뉴올리언스에 남아 복구작업을 지휘하며 '카트리나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6년 시장선거 당시 뉴올리언스에는 45만여 명의 시민 중 절반 이하의 시민들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대다수 흑인들은 애틀랜타나 휴스턴 등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투표에 참여했고 네이진 시장은 재임에 성공했다. 2008년 선거에서도 당선돼 시장직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사회에서도 재난의 정치적 측면이 크게 주목을 받는다.세월호 사건 이후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패배했고, 박근혜 탄핵으로 정권도 내놓아야 했다.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꿔 치른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하며, 혹독한 시련을 맞아야 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도 연일 5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새로 발표되고 있다. 재난이 닥쳤을 때마다 그랬듯이 정부의 기대 섞인 예측은 빗나가고, 재난을 당한 시민사회는 생필품과 피난 공간 등이 부족해 분통을 터트린다.

4.15총선이 40일 앞으로 다가왔다. 재난이 정치에게 물을 차례다. “넌 뭐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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