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돈내코탐방로 탐방, 방문객은 줄고 있는데 화장실만 늘고 있는 상황 아쉽다

서귀포시민은 하루 몇 번씩 한라산을 바라본다. 어떤 때는 어깨가 딱 벌어진 장수처럼 웅장하고 어느 때는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다. 시민들은 어린 시절 내창에서 놀고 산을 오르며 한라산과의 추억을 쌓았다. 

서귀포에는 한라산에 오르는 탐방로가 두 곳 있다. 하원동 영실탐방로, 영천동 돈내코탐방로 등이다.

과거 수험생 시절 한라산에 오르면 육신의 건강과 마음속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사회생활하며 몸이 한없이 부풀어오르는 걸 느끼게 되자 한라산을 찾을 생각을 했다. 예전에 영실탐방로는 걸어본 적이 있는 터라, 이번에는 돈내코탐방로를 등반하기로 했다. 마침 탐방로 입구까지는 집에서도 가까운 거리다.

14일 오전 9시 차를 몰고 서귀포산업과학고를 지나 원앙계곡 입구 거쳐 돈내코탐방로 주차장에 도착했다. 토요일인데 주차장에는 승용차가 한 대도 없었다. 코로나19 영향인가? 차를 주차하고 안내판을 따라 걸은 끝에 돈내코탐방안내소에 이르렀다.

삼나무 숲 (사진= 강문혁 기자)

돈내코탐방안내소에서 남벽분기점까지는 7km로 대략 3시간30분이 소요된다. 삼나무숲과 숲을 지나는 찬바람소리가 방문객을 반긴다. 몇 분을 걸어 삼나무숲을 지나자 햇살이 따뜻하게 비친다. 멀리 들판 아래로 서귀포시내 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훼손된 나무계단 (사진= 강문혁 기자)
담쟁이가 지지나무에 기어올라 있다 (사진= 강문혁 기자)

돈내코탐방로는 1973년 윗세오름까지 처음 개방되었으나 1994년부터 2009년까지 21년간 생태계 복원을 위해 자연휴식제를 거쳤다. 이후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2009년에 재개방됐다.

재개방된 2009년 이후 정비를 전혀 안 했는지 나무계단이 크게 훼손돼 있었다. 계단에 구멍도 뚫려 있었고 난간 기둥에는 담쟁이가 기어 오르고 있었다. 난간기둥이 흔들려 쓰러지는 것도 있었다. 오일스테인이 벗겨져 물기를 흠뻑 먹을 태세다.

나무계단을 지나 걸음을 이어가는데, 육중한 체중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계단이 계속 삐걱댔다. 성판악탐방로 등 다른 탐방로 대부분이 나무계단과 나무길인데 돈내코탐방로는 주로 돌길이 이어진다.

돌길에 한걸음 디딜 때마다 발끝으로 체중의 묵직함이 전해져도 그에 따르는 정겨움이 있다. 돌길을 따라 걷다보니 ‘헉헉’ 거리는 내 숨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그러다 마주친 '멧돼지 주의' 안내문. 돈내코의 옛지명은 ‘돗드르’로 돗은 ‘돼지’ 드르는 ‘들판’을 뜻하는 제주방언이다. 돈내코는 제주어로 ‘돈’은 돼지, ‘내’는 하천, ‘코’는 입구를 뜻한다. 하천입구에 멧돼지들이 많이 살아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멧돼지 주의 안내문'을 보니 아직도 멧돼지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참 걷고 쉬고 하며 ‘섞은물통숲’을 지났다. 섞은물통숲은 울창한데, 표지판에는 노루, 오소리, 제주족제비, 다람쥐 등을 만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무거워지는 다리를 달래며 돌계단을 따라 올랐다. ‘한 발 한 발 앞 계단을 보며 오르십시요. 그러다보면, 반드시 그 한 발이 정상을 만나게 합니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쏟아져 내리는 땀을 보충하기 위해 물을 들이켰다. 힘을 내어 남벽 분기점 4.43km을 앞둔 적송지대를 지났다.

붉은 소나무 숲 (사진= 강문혁 기자)

해발 900M에서 보이는 나무껍질이 벗겨진 붉은색의 소나무들과 솔바람소리, 재잘거리는 새소리는 방금 전 마신 물만큼이나 청량했다.

펭궤대피소 (사진= 강문혁 기자)
공사중인 화장실 (사진= 강문혁 기자)

계속 돌계단을 따라 걸었다. 남벽분기점을 1.7km 남긴 지점에서 펭궤대피소가 보였다. 대피소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대피소 안의 더러움에 놀라 밖으로 나와야 했다. 펭궤대피소를 떠나 몇 분을 걸었다. 갑자기 건축물이 눈에 들어와 앞을 막았다. 전망대 화장실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공사화장실 뒤편에는 포크레인과 컨테이너 사무실도 있는 것을 보아 산을 깍아내며 공사한 모양이다.

서귀포가 보인다.(사진= 강문혁 기자)

공사현장을 지나자 갑자기 추워졌다. 그래서 남벽분기점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 발걸음을 서둘렀다. 몇 분 후 갑자기 딱 트인 서귀포시내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찬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가방에서 뚜꺼운 장갑을 꺼냈다. 봄옷을 입은 터라 추위가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그래도 서귀포의 파란 바다와 함께 보이는 군산, 범섬, 문섬, 섶섬, 제재기 오름, 지귀도가 보이는 절경을 감상하며 다소 위안을 얻었다. 탐방로 오른편 멀리 보이는 흰 구름 속 남벽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서귀포 절경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져 걷다 보니 잠시 후, 넓은드르전망대를 지났다. 계속되는 찬바람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어렵게 했다. 그래도 탐방로 옆 길게 늘어선 밧줄을 잡고 빨간 깃발을 따라 걸었다. 밧줄을 잡고 몇 번을 쉬고 걷고 했다. 남벽분기점에 다다랐다.

남벽 (사진= 강문혁 기자)

구름이 걷힌 남벽의 웅장함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봄이 더 완연해질 때 남벽을 찾았으면 남벽 아래 등터진궤, 웃방애오름이 남벽의 웅장함과 푸르름에 조화를 이뤄 더 아름다울 듯하다.

남벽분기점 전망대에서 등반객을 만났다. 대구에서 제주도로 이사 온 지 3년 됐다는 이주민이었다. 그는 “돈내코탐방로는 자연 그대로인 돌길이여서 좋아 자주 찾는다. 보통 주말에 돈내코탐방로를 등반하면 10여 명의 등산객이 있는데 코로나19 영향인지 오늘은 거의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라오다 보니 전망대 화장실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펭궤대피소와 넓은드르전망대가 있는데 굳이 산을 깍으며 전망대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화를 마치고 이주민은 윗새오름으로 향했다. 남벽분기점을 떠나는 하산길에서 여러 오름 위 구름이 걷히며 드러내는 몽환적인 풍경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돌길 따라 두 시간을 꾸준히 걸어 밀림숲을 지났다. 다시 낡은 나무 계단길, 서귀포시내가 훤히 보였다.

노루가족이 보였다.(사진= 강문혁 기자)

노을 질 무렵 들판 석양 아래 노루가족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에 생각 없이 카메라를 눌렀다.

돈내코탐방로 안내소를 지나 주차장으로 가는 길, 오래 걸은 끝에 오는 고단함과 절경을 감상했다는 만족감, 무성의하게 방치된 산책로를 향한 아쉬움 등 만감이 교차했다. 서귀포에는 아름다운 곳이 많고, 아름답지 못한 일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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