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기자] 임지인

아빠에게 손수 말린 귤칩과 귤피차를 보내면서 편지를 썼다.

나는 며칠 전에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밖에 나가면 수많은 회색신사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든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그래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회색 신사들처럼 냉기가 나오는 것 같다. 답답하다. 그리고 서로를 하나도 믿을 수 없는 기분이다.

자고 일어나면 엄마는 습관처럼 하루 사이에 더 늘어난 확진자수와 사망자수를 확인하는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회색 빛깔이 쫙 퍼지는 것 같다.

우리는 전에 옆집에 사시는 화가이모와 점심밥을 함께 먹었다. 하지만 이제는 왠지 부를 마음도 안 나고 혹시나 해서 잘 만나지도 못한다. 가끔 담 너머로 인사하고 간단하게 얘기만 한다.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독서모임도 쉬고 있다.

그리고 아빠, 언니와도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아빠는 경기도 안양에서 근무를 해서 한 달에 한 번씩 휴가를 내서 일주일 가까이 집에 머무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계속 못 내려오고 있다. 유학중인 언니는 원래 4월에 오기로 한 계획을 미루게 되었다. 엄마 친구들과 이모네 식구들도 제주에 내려오는 계획을 취소했다.

이렇게 코로나 때문에 많은 만남들이 연기되고 불가능해졌다. 만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요즘 다리가 아파서 우울한 이모에게 손수 말린 귤칩과 귤피차를 보내면서 편지를 썼다. 그랬더니 감동한 이모네가 요즘 구하기 힘든 마스크와 나를 위해 특별한 컬러링북과 색연필을 보내주었다.

엄마와 나는 회사 숙소에서 혼자 지내는 아빠와 기숙사에서 나와 친구 집으로 이사를 한 언니를 위해서 뭔가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더구나 언니가 사는 캐나다에는 이제 식당들이 문을 대부분 닫았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를 위해 색지로 책을 접고, 사진도 붙이고 그림도 그려서 직접 요리책을 만들었다. 네 권이나 만들었는데 첫 번째는 언니가 쉽게 할 수 있는 베이킹, 두 번째는 언니가 좋아하는 코코넛밀크로 할 수 있는 요리들, 세 번째는 된장국이나 밥, 샐러드 같이 언제나 어울리는 요리들, 마지막으로 제대로 멋을 내서 하는 요리들이다. 그리고 엄마는 프린터로 우리 가족들의 사진을 뽑아서 박스종이에 붙이고 재활용종이로 테두리를 장식한 액자들을 만들어서 함께 보냈다.

아빠에게는 우리가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서 보내준다. 일주일에 한번씩! 미숫가루과자, 비지쿠키, 귤머핀, 귤칩, 오트밀 영양바, 현미튀밥과 건과, 견과류를 잔뜩 넣은 초콜릿, 현미누룽지, 그래놀라와 구운 계란 같은 다양한 음식을 보낸다. 엄마와 내가 꼬박 하루 종일 준비해서 오븐을 돌리고, 먹기 좋게 나누어 포장한다. 아빠 숙소에는 해가 잘 드는 베란다가 있어서 작은 텃밭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우리 마당에 뿌린 씨들도 조금씩 싸서 보낸다. 물론 편지도 써서 함께 보낸다. 그러면 아빠도 답장을 보내고 식물도감과 헬멧, 망원경 등을 선물로 보내준다.

아빠처럼 언니도 내 생일 선물을 부쳤다고 한다. 생일은 같이 보내지 못하지만 ‘선물이 무엇일까?’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기쁨도 좋다. 그리고 우체국에 가서 요금에 맞게 우표를 내고 주소를 써서 보내는 낭만적인 기분도 좋다. ‘너무 늦게 가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다행히 빨리 잘 도착한다.

그리고 전에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DVD를 빌렸다. 하지만 도서관이 문을 닫게 되어 우리 집 책꽂이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책들을 한 권 한 권 꺼내어 보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어두운 채로 털퍼덕 주저앉아서 끝없이 읽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책들이 바로 내 옆에 있었구나 놀라면서 엄마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기도 하고, 책 만들기도 한다.

요즘은 정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바깥에 산책을 하거나 외출을 자주 하지 않는 대신에 요즘에는 정원 텃밭에서 많이 지낸다. 씨를 심어 모종을 만들고 표지판을 써서 꽂고 땅에 옮겨 심는다. 싹이 나서 자라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놀랍다. 흙에서 맨발로 걸어 다니면 평화롭고 자유롭고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행복하다. 흙이 발에 닿는 촉감을 따라올 수 있는 감촉은 없으리라! 꽃을 그리고, 강아지 노마와 놀고, 공벌레를 관찰하고, 마른 땅에서 위험에 빠진 지렁이를 구해주고, 나무 위의 새들을 자세히 보기도 한다.

코로나 19 때문에 아프고 죽기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게 참 슬프지만, 나처럼 가족들과 서로 따뜻하게 격려하고 걱정해주면서 마음을 전하고,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요즘의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상상한다. 반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난롯가에 앉아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따뜻한 감자를 나눠 먹는 장면을. 가난한 농부들이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나누는 식사가 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처럼 우리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이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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