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15] 까르미나 부라나를 추억하며

오승직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오승직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1992년은 필자에게 음악적인 면에서 잊을 수 없는 의미 있는 한 해다. 이유는 칼 오르프의 까르미나 부라나 때문이다. 군에서 전역하고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고, 음악을 시작한 지도 몇 년 안 된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당시 제주에서 음악회는 그리 흔히 있는 일이 아닌 시절이라 제주대학교 음악학과에서 까르미나 부라나를 연주한다기에 제주문예회관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당시 까르미나 부라나는 제주 초연이라 호기심과 기대가 컸다. 팜플렛에 소개된 곡에 대한 설명을 찬찬히 읽고 잠시 기다리는데 막이 올랐다. 도입부 첫 곡이 울려 퍼지는데 그 스케일과 반복적 리듬의 타악기의 웅장함이 압권이었다. 그러다가 다소 생소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테너 아리아를 듣는 순간 매우 난감함과 흥미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성악에서는 잘 쓰지 않는 falsetto(가성) 창법으로 연주하였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없는 높이의 고음을 연주하느라 테너 독창자는 큰 긴장감 속에서 연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테너뿐만 아니라 소프라노나 바리톤 독창자도 역시 극도의 고음 때문에 애를 먹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은 시간 예술이라 타악기의 반복적이며 역동적인 리듬과 함께 연주는 흘러 마지막에 이르렀고 ‘오 운명의 여신이여’의 강력한 합창 사운드의 첫 곡을 반복함으로써 모든 연주가 마무리되었다. 처음 접해보는 엄청난 크기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그 크기에 걸맞은 엄청난 소리와 웅장함, 반복적이며 역동적인 리듬과 강력함 등 음악도인 필자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해 보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필자가 까르미나 부라나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억이다.

집단적인 리듬 교육을 강조한 음악 교육학자로서도 유명한 작곡자 칼 오르프는 까르미나 부라나의 가사를 10세기 말부터 13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독일, 영국과 북부 이탈리아 등지에서 활동했던 골리아드의 시가에서 차용하였다. 골리아드 집단은 당시 대학 체계가 확립되기 이전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도시와 마을들을 떠돌던 성직자, 유랑 음유 시인들이었다. 그들은 음주, 사랑, 도박, 정치풍자, 그리스 고전 시 개작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또한 그들은 반체제적 사고, 기성 사회체제 비판, 기존 질서에 대해 저항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노래들은 라틴어 가사의 단성적 음악이며 독일 뮌헨 남쪽 바이에른 지방의 베네딕트 보이레 수도원에서 일부 발견되어 약 250여 곡이 전해진다. 칼 오르프는 이들 중 24곡을 뽑아 총 25곡으로 까르미나 부라나를 작곡했다. 서곡(2곡), 1부 봄의 노래(8곡), 2부 술집에서(4곡), 3부 사랑 이야기(10곡), 다시 첫 곡 반복으로 구성되었다.

안양시립합창단의 카르미나 부라다 공연 현장(사진=안양시립합창단 유튜브 채널 갈무리)
안양시립합창단의 카르미나 부라다 공연 현장(사진=안양시립합창단 유튜브 채널 갈무리)

그런데 뜬금없이 필자가 다시 까르미나 부라나를 소환하게 된 것은 7월 3일 서귀포예술의 전당에서 제주도립예술단의 연주가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1992년 제주대학교 학생들의 연주에도 강한 인상이 남아 있는 그 곡을 이제 전문 음악인들의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흥분이 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특히 이번 공연을 지휘하는 서귀포 관악단 이동호 상임지휘자는 1995년 마산시립교향악단을 이끌고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교향악 축제에서 이 곡을 연주하여 6인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이 곡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다. 3관 편성의 관현악을 어떻게 관악 편성으로 편곡이 되었을지, 관현악의 원곡의 느낌을 지휘자는 관악으로 어떻게 끌고 나갈지, 반복적이고 역동적인 타악기의 울림과 대합창단의 강력한 사운드, 비상식적인 고음으로 인한 어려움을 독창자들은 어떻게 연주해낼지 몹시 기대된다.

코로나로 방역 하에서 그동안 많은 제약과 자유롭지 못한 연주 환경으로 인해 어렵고 답답한 시간을 견뎌 왔다.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방역 상태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규모가 큰 연주를 감상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번 연주가 이 어려움을 견디어 온 모두에게 위안이 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