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직의 음악칼럼14] 까르미나 부라나 리뷰

오승직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오승직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3일, 아침부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들 떠 있다. 까르미나 부라나 공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최종 리허설 현장을 둘러 볼 기대감 때문이다. 필자가 많은 최종 무대 리허설을 경험했지만 유독 이번 연주에 기대감을 갖는 이유는 뭔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보통 까르미나 부라나 연주는 관현악과 합창의 다 악장 칸타타 형식이지만, 이번은 연기, 의상, 연출 등을 가미하여 작곡 본래의 의도를 표현하는 의미 있는 연주이다. 이미 도립 무용단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을 터라 안무 연출이 있을 것임은 짐작하고 있었고, 때문에 관악과 합창 사이에 얼마나 절묘하게 안무가 이루어질 것인지 기대감이 큰 건 사실이다.

3시부터 최종 무대 리허설을 시작한다기에 2시30분에 현장에 도착하였다. 입구에서 발열 체크 후 확인 스티커를 받고 극장 안으로 들어와 보니 이미 많은 공연 관계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관악단은 이미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 착석해 있었고 총연출자의 지휘 아래 최종 점검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역시 최종 무대 리허설은 본 공연과는 다르게 또 다른 긴장감이 있다.

시간이 되니 합창단이 먼저 입장하고 조금 뒤 무용단이 입장하였다. 드디어 지휘자의 지휘봉이 움직이며 최종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사실 제일 기대하고 있던 장면이 첫 곡 ‘오 운명의 여신이여’인데 예상했던 대로 관악, 합창, 무용이 무대를 충분히 채워 장엄하고 웅장한 느낌을 표현하였다. 가끔 독창자들이 컨디션을 조절하는 모습과 음악과 무용의 완벽한 조화를 위한 마지막 점검들이 세세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그간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까르미나 부라다' 공연 장면(사진=오충윤 독자위원)
'까르미나 부라다' 공연 장면(사진=오충윤 독자위원)

 

최종 리허설이 끝나고 로비로 나가니 공연 관계자들과 서귀포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코로나19 하에서 이번 공연에 기울인 제주도립 예술단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었다.

5시50분부터 좌석 배정을 한다기에 데스크로 가서 리허설 때와는 정 반대편 좌석을 요청하였다. 본 공연은 리허설 때와는 조금이라도 다른 각도에서 관람하고 느끼고 싶은 필자의 호기심이었다.

드디어 공연 10분 전, 하우스 안으로 입장하여 착석하고 보니 방송 카메라 바로 뒤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무대를 가리지는 않아 감상하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첫 곡 연주 직전 긴장감과 흐르는 적막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이윽고 첫 곡이 장엄하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데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듯하였다. 다만 첫 곡에서의 역동적인 팀파니와 타악기 연주자들의 연주 모습이 오케스트라 피트에 가려 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4번 곡 ‘태양은 모든 것을 누그러뜨린다’ 바리톤 솔로의 피아니시모 연주 이후 연결되는 5번 곡 ‘봄이여 잘 왔도다’는 필자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최종 리허설 시 남성 합창 부분에서 다소 관악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고 남성 합창 단원들은 큰 무리 없이 소화하였다. 역시 프로 연주자들임을 실감하게 했다. 빠른 템포와 다양한 변박의 6번 무용곡을 지나 드디어 테너 독창자에게 가장 난감한 순간이 찾아왔다. 높은 고음으로 인한 가성(falsetto) 창법으로 연주해야 하는 12번 곡 ‘일찍이 내가 살았던 호수’, 새 모습으로 분장한 독창자는 힘 있는 소리로 시작하여 falsetto 창법으로 고음 처리의 노련함을 보여주어 필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이후 선술집 장면들은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연출하였고 종반으로 치달으며 고음으로 구성된 23번 곡 ‘그리운 사람이여’를 소프라노 독창자는 피아니시모로 애절하게 노래하였다. 이후 삶의 순환을 말하듯 운명의 바퀴처럼 첫 곡 ‘오 운명의 여신이여’를 역동적인 타악기 리듬을 동반하며 장엄하고 웅장하게 재연, 긴 운명의 수레바퀴의 여정을 종결하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실 필자의 이번 연주에 대한 최대의 관심은 음악과 무용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거의 매 악장마다 등장하는 무용은 다소 과한 듯하였고 제주의 느낌을 표현하려는 시도 또한 다소 어색하였지만,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관악과 대규모 합창, 매 악장 등장하는 무용과 출연자들의 연기가 펼쳐지며 마치 오페라를 연상케 하는 대규모의 극음악을 세밀하고 역동적으로 이끄는 지휘자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런 멋진 공연을 단 1회 공연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추가 입장권도 5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들었다. 시민들의 관심과 관람 욕구가 크다는 증거이다. 더 많은 시민에게 관람의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가능하다면 제주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도 관람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이런 멋진 공연을 더 많은 시민이 관람하지 못하고 막을 내리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필자는 이번 공연을 위해 거의 하루를 서귀포에서 보냈다. 투자한 만큼 보람이 있어 행복하다. 어둠과 안개를 뚫고 제주시로 올라오는 내내 내 입가에서 ‘O fortuna’ 노랫소리가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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