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그때를 아십니까

중소기업청이 조사한 서귀포시 상권분석 자료에 의하면 ‘송산동이 지고 중정로·중앙로·동문로가 뜬다’고 한다. 말하자면 상권의 중심이 송산동에서 중정로 일대로 이동했다는 얘기이다. 특히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상업의 대표격이던 솔동산길이 이제는 세상사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대변하는 과거의 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해방전, 서귀포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농어촌으로서 주민들 대부분이 자급자족의 경제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서귀포항을 비롯한 지금의 송산동 일대에 사람들이 주로 모여서 살았는데, 면사무소·주재소·소방서 등의 관공서와 학교가 모두 이곳에 위치해 있었다. 일본인들은 주로 서귀포항 주변에 거주하면서 고래공장·해산물 공장 등을 운영하고 과수원을 경작하거나 표고버섯을 재배해 상대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였다. 지금의 솔동산길 양쪽으로는 잡화점·양복점·철물상·제재소·약방·식당·목욕탕 등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목욕료는 5전이었는데, 당시에는 50전으로 2∼3명이 술을 마실 수 있었다. 해방후, 솔동산의 상점들은 대부분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잡화·고무신·포목·철물·목재·양복·책·빵·과질·포목·우산·석유·기름·육고기·술 등을 팔았다. 과질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넓게 펼친 후 네모나게 도려내어 기름에 튀긴 다음 꿀종류에 바르고 쌀 튀긴 것을 입힌 과자류인데, 공정과정이 복잡한 만큼 상당히 고급으로 취급되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상호도 간판도 없이 ‘누구네 점방’으로 불려졌으며, 비슷한 규모에 생계를 겨우 유지할 정도였다. 같은 업종에는 대개 하나의 상점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1950년대 초반까지 그대로 이어진 듯 하다. 왜냐하면 피난민들의 눈에 비친 서귀포의 상업은 해방직후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오일장을 중심으로 장사를 시작하면서 서귀포에는 상인수가 갑작스레 많아졌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함께 고객확보전이 전개되면서 취급품목 및 유통경로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고객과 시장이 창조되면서 상업은 그야말로 급속하게 성장해 나갔다. 산남 사람들 대부분이 물건을 사기 위해 서귀포로 나왔으며, 명실공히 서귀포는 산남지역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물론 사채이자가 월 8부, 연 96부(연리 96%)의 고리임에도 불구하고 매매마진이 더 높아서 장사가 가능했던 어수룩한 시대였다. 하지만 성공의 주원인은 치열한 경쟁과 피눈물나는 노력에 있었다. 서귀포항에서 대성호를 타면 보통 저녁 5∼6시에 출발해 이튿날 저녁 그 시간이 되어야 부산에 도착했다. 만 하루가 걸리는 위험한 뱃길, 운수 나쁘게 중간에서 바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3일씩 걸리기도 하였다. 백만표 고무신이 쌀 1말 값에 판매되었는데, 부산 국제시장에서 도매해 온 공산품들이 서귀포에서 산남 일대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지금의 중정로(일주도로)가 시원하게 생겨나고 관청들이 이전하면서 상점들도 따라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뒷병디’라 하여 무덤과 잡초만 무성하던 자리에 시장이 생겨나고 건물들이 들어섰다. 일주도로쪽으로 정류소가 이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새 시장과 상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서귀포의 상권은 변함 없는 송산동에서 변화 많은 중정로 일대로 그 중심이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즈음 서귀포의 상업이 유례없는 침체기라 한다. 하루종일 문을 열어도 손님 한 분 들어오지 않는 가게, 권리금은 커녕 임대료를 낮추어도 임자를 찾을 수 없는 상점들, 한 집 건너 식당인 듯 손님보다 일꾼이 많은 음식점들, 대형마트로 손님을 뺏겨 파리를 날리는 동네슈퍼들. 설상가상 주말이면 타도시로 쇼핑가는 사람들. 이렇게 풀죽어버린 서귀포의 상업을 보며 지나간 시절을 회고해 본다. 몇십년 동안 휴면해 있는 상업을 일깨워 역사의 부흥기를 창출했던 피난민들, 그 치열했던 삶의 흔적속에 아직도 빛나는 시대정신을 보게 된다. 그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신념이요, 내일의 태양을 바라보는 희망이다. 그때 그 사람들의 정신으로 돌아가 오늘의 어려움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남 다른 노력으로 새 상품과 새 고객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허정옥/객원논설위원·탐라대학교 교수제229호(2000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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