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소장
송주연 소장

지난 2020년 10월 13일 이후 566일 만에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됐습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되어 실외에서라도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니, 참으로 감격스럽고 눈물겹습니다.

마스크를 벗을 수도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설레었던 마음 한편 여성폭력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마스크만큼이나 가슴을 옥죄여오면서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은 최근 들어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된 많은 말, 말, 말들이었습니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여가부가 폐지되면 그럼 상담소는 어떻게 되는 건데?”, “계속 일할 수 있는 거야?”라는 진심 어린 우려와 위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씁쓸하고 허전한 마음 한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이 계속 맴돌더군요.

여가부 폐지에 맞서서 ‘성평등 관점의 여성폭력방지 전담부처 반드시 필요하다’는 슬로건 아래 535개 단체는 ‘여성폭력피해자지원현장단체연대’를 결성하였고, 지난 4월 7일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1,000여 명의 시위 참가자가 모인 것은 전례 없었던 일이기도 하거니와 여가부의 폐지를 위하여 단체 혹은 개인의 이름으로 참석한 그들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보면서 울컥하는 심정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뒤에서 소리 없는 눈물과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있는 여성폭력 피해자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으니까요.

인권은 누구의 관점에서의 인권일까요?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의 제각각 사연은 천차만별이지만 분명한 것은 ‘원치 않는 폭력의 피해’를 당하고도 붙잡고 하소연할 수 없었던 그들이 상담소를 찾아 자신의 가정폭력 혹은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사태가 참으로 어이없을 뿐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 156개국의 정치·경제·교육·건강 분야의 성별 격차 현황을 담은 ‘2021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경제규모 10위로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성평등 순위는 102위입니다. 경제규모 10위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102위의 성평등 순위는 우리가 과연 선진국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질적 내용을 담보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폭력은 단연코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의해 발생합니다. 성차별적 사회구조란 여성 혐오를 비롯해 여성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들이 모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대 여성학 전공자들이 만든 ‘나는 대한민국 남성입니다’라는 풍자물을 보면 “이 세상에 여자는 착하고 순결하고 고분고분하고, 결혼해선 남편을 잘 섬기고 투기하지 않고, 집안일과 육아를 입 닥치고 조용히 해야만 가정과 이 사회의 평화가 유지된다”라고 말합니다. 동영상의 바탕에는 초등학교 2학년 시험지에 엄마가 아기에게 사탕을 건네주는 모습과 함께 ‘다음 그림은 어떤 약속을 나타낸 것인지 써봅시다’라는 문구 아래 초등학생의 삐뚤빼뚤한 연필 글씨로 ‘최면을 걸고 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비단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만 최면을 걸고 있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남녀 불문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애써서 기울어지지 않았다고 강변하면서 그러면서 사회 구조적으로 성차별은 결코 없다고, 성적으로 평등하다고 집단최면에 걸려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가부의 존재 그 자체는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전담부서로써 그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평등 관점의 여성폭력 방지 전담부처인 여가부의 폐지는 재고되어야 마땅합니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성 평등이니까요.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