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10)] 제주올레 7-1코스

길은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다시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길을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 편집자 글

 

제주올레 7-1코스는 신시가지 또는 신서귀포라 부르는 신머들에서 시작된다. ‘신머들머들이 많아 불려진 지명이다. ‘머들은 땅에 박혀 있으나 지상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암반을 의미하고, 노출이 적고 지면 아래에 암반이 있으면 빌레라고 한다.

신머들남쪽은 써근섬해안으로 지역 일대를 고상머들이라고 한다. 이처럼 신서귀포에서 부터 써근섬 해안까지는 지반 자체가 머들로 대부분 이뤄져 있어 흥미롭다.

지명을 살펴보면 그 지역의 미래가 보인다. ‘신머들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머들은 건물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지역은 새로운() 건물(머들)이다는 의미로 재해석 된다. 그래서 그런지 신서귀포에는 고층 아파트가 많고 혁신도시가 함께 하고 있다.

신서귀포의 당산인 고근산은 북서풍과 북동풍의 바람 길을 가르고 있어, 환절기에는 도껭이주시(회오리바람), 후내기(눈비바람)’가 일어나고, 바다에서는 범섬을 기점으로 용오름 현상이 가끔 나타난다.

또한 신서귀포지역은 병참·반참·고른참이라 하여 이 지역을 기점으로 동쪽은 정의현, 서쪽은 대정현의 경계가 되고, 물 때 또한 정의현은 대정현 지역보다 한물이 늦다. 즉 대정현은 음15·30일 기준으로 여섯 무날이지만, 정의현에서는 일곱 무날이 된다. 이는 자연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문화 환경 또한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자연과 문화의 다름을 하나로 연결하는 고리가 제주올레7-1코스이다.

열 번째로 연재하는 제주올레7-1코스는 정의현 법환동에서 출발하여 바로 대정현 강정동으로 건너간다. 강창학공원·‘종백이왓(월산동)’의 올란지(엉또폭포)를 지나 신월동촌에서 다시 정의현 서호동·호근동·서홍동·서귀동을 지나,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마무리되는 15.7km로써, 40리가 되며, 20081227일 개장되었다.

 

도로원표(사진=윤봉택 제공)
도로원표(사진=윤봉택 제공)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 앞 제주올레7-1코스 출발점에서 4차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도로원표가 있다. 도로원표는 각 도시간 도로 거리의 기준이 되는 지점으로, 여기서 서울 486km, 부산 310km, 광주 251km가 된다. 더 가면 중앙공원이다. 지금은 매립되어 없지만 이곳 분수대에서 1998년 양경식 지휘로 서귀포시립관악단 창단 기념 첫 연주공연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서귀포대신중학교 서문에서 서쪽으로 나가면 강창학공원 남쪽에서 종백이왓(월산동)’으로 이어진 올레가 엉또폭포까지 이어진다.

 

올란지(엉또폭포)(사진=윤봉택 제공)
올란지(엉또폭포)(사진=윤봉택 제공)

올란지라 부르는 엉또폭포는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던 곳으로, 1980년대 지나면서 올란지에서 엉또, 이후에 엉또폭포라 부르게 되었다. 엉또폭포 절벽 좌우에는 보호종인 솔잎난이 많이 자생하였는데, 일부 몰지각한 애호가들이 모두 도채하여 지금은 틈새에서만 간혹 보여 안타깝다. 산책로가 개설되면서 철새인 원앙이도 이제는 드물게 찾아 온다.

하천을 건너면 정직한 윤서철 목사님이 계시는 동산위의교회가 길 남쪽에 있다. 잠시 머물다 올레로 나서면 구지뽕나무가 많은 틀남밧소롯올레이다. ‘아웨낭열매 따라 신월동을 건너 고근산 초입에 닿으면 산책로 서북쪽에 강생이궤가 있다. 깊지 않은 이 수직굴은 이원진의 탐라지(1653)에도 등장할 만큼 당시에는 만장굴만큼이나 유명한 굴이었다. 이 굴에 돌멩이를 던지면, 앞바다에 떠 있는 범섬 콧구멍으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출입이 어렵다.

꼬닥꼬닥 나무계단을 오르면 고공산·고근산이라 부르는 정상 굼부리가 나오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백록담을 마주하면 전망대와 함께 중간 스탬프 인증샷이 기다린다. 능선따라 내려오면 못보데기에서 남북으로 길이 나눠진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내리면 우마를 방목하였던 마장밧이고, 지난날 마을 대표들이 모여 협의를 하였던 제남아동센터 남쪽에 상뒤동산이 있다. 대로변 바가잣도아래로 이어지는 고샅길 닮은 골목 올레로 들어서면, 지형 따라 바위를 이용하여 조성한 모니카동산이 있다. 이곳에서 잠시 건불리다가 배칩지나 항골내를 넘어, 호근새마을금고 사거리에서 열무냉면으로 점심을 찍으면, 지나온 올레를 모두 잊게 할 만큼의 꿀맛을 느낀다. 일어서면 호근마을회관 뜨락에 세워진 근대사 서귀포의 최초 등단 시인 김광협 선생의 수선화가 작은 시비로 기다린다.

 

하논(사진=윤봉택 제공)
하논(사진=윤봉택 제공)

고갠드르를 지나 벤돌·목골·매아진돌을 지나면 대로변이 용당입구이다. 이곳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내리면 국내 최대 분화구인 하논 분화구가 펼쳐진다. 일반 분화구는 대부분 용암 분출로 이뤄지나, 이 분화구는 마르형으로 지하 깊은 곳에서 가스나 증기 폭발로 5만 년 전에 만들어진 분화구이다. 500여 년 전부터 지어온 논농사는 지금도 모내기를 해마다 하고 있다. 주변에는 용출수가 많으며 4·3에 잃어버린 마을과 서귀포 최초 성당이 건립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하논(大沓)’은 논이 많이 경작되어 불려진 지명으로 분화구 주변에는 동언새미·당물·몰망수·조근몰망수등에서 솟아나는 용천수가 많으며, 주위에는 동거지(모루) ·웃거지가 원형으로 둘려 있어 서리가 일찍 내린다. 분화구 내에는 큰보롬이·눈보롬이·궤보롬이·조근보롬이 등 오름이 모루와 함께 어우러져 아늑함을 더한다.

하논 입구 걸메목을 지나면 선반내(線半川) 사거리이다. 이곳에서 하구 까지 동쪽은 서귀동, 서쪽은 서홍동 경계가 하천을 중심으로 선이 반씩 나눠지기에 불려진 이름이다. 하논 입구를 걸메목’, 주변 아래를 웃걸매라고 하는데, 하논에서 내려온 물이 이곳을 지나 한줄기는 천지연폭포로, 또 한줄기는 남성마을 입구 알걸메로 이어진다. ‘걸메의 걸()은 도랑을, ‘는 도랑에서 내려온 물이 가두어진 것을 의미하는 제주어로서, 물이 가두어지기에 논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다.

 

마근소(사진=윤봉택 제공)
마근소(사진=윤봉택 제공)

선반내 다리 아래로 내리면 지난날 목동들이 멱을 감았던 테우리통이 있고, 법장사로 건너기 전 홍예교 아래에 인공으로 조성된 마근소가 있다. 19431120일 천지연폭포 입구에 서귀포수력발전소가 세워지면서 이곳에 제방을 쌓아, 이 물을 끌어다가 전력을 생산하려고, 물을 막아 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근소라 부른다.

올레 따라 동산을 오르면 지난날 작지(자갈)가 많아 보리 농사가 잘되었던 3호광장 작지왓건너에 제주올레7-1코스 종점, 제주 바람의 옹달샘 제주올레여행자센터이다.

 

필자 소개 글

법호 相民. 윤봉택은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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