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13)] 제주올레 10코스

길은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다시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길을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 편집자 글

 

언제 걸어도 무한 포옹을 느끼는 제주올레, 그 올레에 서면, 계절이 변할 때마다 절(파도) 소리가 다르다. 계절에 따라 바람 방향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일까.

걸음걸음으로 올레를 안아 돌담마다 스미는 작은 이야기들, 바당 올레의 문을 열면 늘 정낭 너머로 다가오시는 나의 별빛 전설이 있어, 마파람으로 옷을 벗어, 말 가웃의 그리움을 토해내는 사계 해안선,

제주올레 10코스 전 구간은 태풍이 불어올 때 가장 많은 바람이 지나가는 구간 중 하나이다. 그리고 먼바다 또는 인근 해 큰바람이 불어 조업이 어려울 때는 먼바다 어선을 비롯하여 남부 해역에서 조업하던 배들이 일순 산방산 중심으로 모여들어 밤새 집어등을 밝히며 때아닌 야경을 연출한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우리가 태어나기 전 어느 사냥꾼의 실수로 한라산신의 궁둥이를 쏘자, 이에 분기탱천한 산신이 한라산을 뽑아 사냥꾼에게 던진 게 산이 되었다는 산방산, 그 중 허리에는 산방덕이 누이의 슬픈 전설이 시방도 눈물 되어 방울방울 떨어지고, 호종단이 시기한 용머리에는 그날 아픔이 응고되어 파도가 울어도 씻기지 않은...,

열세 번째로 연재하는 10코스는 안덕면 화순백사장에서부터 사계리·상모리·산이수동·섯알오름·하모리·약포동, 우리가 모슬포라 부르는 대정읍의 하모리 체육공원까지 15.6km, 40여 리 올레로써, 2008525일 제주올레 6코스로 처음 개장되었으며, 후에 10코스로 조정되었다.

필자가 처음 매주 1회 제주올레 순례를 결심하고 10코스를 먼저 선택하였던 것은, 2021년 봄 송악산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그러한 개발 행위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에서 개발을 책동하는

나쁜 지신(地神)을 밟고 좋은 지신(地神)의 기를 북돋기 위함에서이다.

구간에는 아시아 권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 화석산지등 이 구간은 신화와 전설의 유적이기도 하다. 200772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제주화산섬이다. 이는 도 전역이 세계자연유산임을 상징하기 위하여, 당시 문화재청 천연기념물분과 위원들의 예지로운 산물이었고, 여기에 송악산도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예비 검속된 민간인 218인이 섯알오름에서 1차로 1950716일 해병 모슬포부대 5중대 2소대 분대원에 의하여 학살되었고, 이어서 2차로 같은 해 820일 해병 모슬포 3대대 분대장급 이상 하사관에 의하여, 차례로 영문도 모른 채 주륙되어 매장된 씻겨지지 않은 아픔과 일제 상흔이 남아 있는 알뜨르 비행장은 그 역사의 현장이다.

 

10코스 출발점(사진=윤봉택 제공)
10코스 출발점(사진=윤봉택 제공)

10코스 올레 안내소를 지나면 산톳(멧돼지)이 자주 내려와 물을 먹었다 하여 부르는 '돗물'을 건너면, ‘하강수족욕 쉼터이다. 풍파로 인하여 이 동산까지 모래가 쌓이면 풍년이 들고, 정상에 모래가 씻어 가면 흉년이 든다고 하여 불려진 사간다리동산이 기다린다. 화순리에는 동서에 각각 유반석·무반석이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 중 무반석이 이 동산에 있다.

 

황우치해안(사진=윤봉택 제공)
황우치해안(사진=윤봉택 제공)

이곳을 지나면 소금막으로 이어지는 해안선 자왈이 산방산과 어울지는데, ‘황우치해안에 이르면, 그 옛날 아름다웠던 백사장은 모두 유실되어 앙상한 바닥만 드러내고 있어 아프다. 이러한 모래 유실은 화순항 방파제 공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론인데, 바로 코앞에 있는 용머리해안 해저 상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연기 사라진 산방연대를 지나 내리면, 1653815일 태풍으로 파선되 상륙한 하멜 일행의 기념비가 서 있고, 바다를 호령하는 용머리해안이 산방산에 기대어 날쿰·설쿰해안선의 바람을 날리고 있다.

천하장사 닥밭 정운디전설이 울렁이는 거문질따라 용해동과 토깃동네를 넘기다 보면, ‘토깃개라 부르는 사계리포구가 마중 나오는 납데기 빌레’.

 

납데기 빌레(사진=윤봉택 제공)
납데기 빌레(사진=윤봉택 제공)

숙종 38(1712) 8월에 용 두 마리가 형제섬 앞에서 싸움하였는데, 그 여파로 해일이 일고 큰바람이 불어, 섬 앞에 있는 거문질에 피해가 막심하여 가옥 66채가 파손되었고, 해변 소나무들이 많이 훼손되었으며, 모래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가 논밭에 떨어지면서 피해가 컸었다는 전설 따라 성제섬이 마파람에 옷을 벗으면, ‘군여코지지나 작은 방파제를 넘기는 거욱대조차도 파도에 잠긴다.

사계리와 상모리 경계 만다리해안을 넘어서면, 오래전 이곳이 습지였을 때 남긴 사람 발자국과 코끼리를 비롯한 각종 동물 발자국을 엿볼 수가 있다.

 

산이수동포구(사진=윤봉택 제공)
산이수동포구(사진=윤봉택 제공)

용다리창에서 상모리 패총유적을 지나면, ‘살레덕코지건너에 산이수동포구가 있다. ‘산이물구석해안선에는 일제가 구축한 열일곱 개의 동굴진지가 있고, 그 위로 송악산의 이중 분화구를 이루는 가메창을 순례하지 않고서는 송악산을 보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부시리덕을 넘어서면 가파도와 마라도를 바라볼 수 있는 부남코지이다. 여기에서 동용숙이절벽 해안을 따라 진누룩돌지나 섯용숙이에 닿으면 전경초소 올레이다. 굽이굽이 해안을 따라 가면 개다리구석건너에 대난골모살해안선이 오후 바람과 자맥질을 한다.

 

섯알오름 학살터(사진=윤봉택 제공)
섯알오름 학살터(사진=윤봉택 제공)

22개나 되는 송악산 일제외륜동굴진지를 지나 섯알오름에 닿으면, 예비검속된 민간인 218명이 아군에 의하여 죄 없이 주륙 당한 아픈 넋의 칭원함으로, 오늘도 알뜨르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하모리 문세왓주차장에서 중간 인증을 마치면, 비행기 격납고 아래로 알뜨르비행장 활주로가 있다. ‘멜캐바당올레를 따라 운진이항에 닿으면, 바로 이곳이 하모리해수욕장을 배경으로 노을 지는 멜캐라 부르는 약포동이다.

이곳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나신 78세 유정숙 좀녜 삼촌을 만났다. 상모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생활하시며 5남매를 두셨는데, 해안가 지명에 대하여 상세히 말씀 주셨다.

후릿바당모래밭을 따라 숨비질하던 고참봉원은 운진이항에 묻히고, 흔적이 사라진 무수연대가 부삿가름에서 오수를 즐기고 있다. ‘운진이코지에서 하모리 약수동 좀녜불턱을 지나면, 바로 해변 바위에 하모리 본향 문수물당이 있다. 이 신당에서 섯사니물(하모3), 동사니물, 여막은게, 가파도 메부리로 4개 신당이 나눠지는데, 하모리에서 가파도로 이주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가파도 상동에 있는 할망당이 바로 이 문수물당에서 나눠진 신당이다.

동골동산에서 대정중학교 담장을 지나면, 서부보건소 남쪽에 문수물이 있고, 건너에 제주올레 10코스 종점이다.

 

필자 소개 글

법호 相民. 윤봉택은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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