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14)] 제주올레 10-1코스

길은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다시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길을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 편집자 글

 

노를 저어 가면 바람이 없어도 닻을 내릴 수 있는 섬 가파도엔 오늘은 마파람 분다. 얼마나 낮고 낮았었기에 그 모진 파도를 다 넘겨 개파도가 되었을까. 해발 20.5m, 우리나라 유인도 가운데 가장 키 낮은 작은 섬 가파도.

물길 여는 곳마다 좀녜의 숨비 소리가 일어서 오는 더위섬, 그 섬에 닿으면 개도 이랑마다 청보리가 익어간다. 올레 따라 모시리 지나 황개까지는 여점 저점인데, 달빛으로 걷고 별빛으로 노래하다 보면, 섬 밖 한라산이 송악산 부남코지에 닻을 나려 바라보신다.

섬이라 하여도 산도 없고, 절벽도 없지만, 언제 바라보아도 내 마음의 섬이 되어, 이어도 길목을 지켜 주는 개파도는 늘 그리움이다.

180년 전 1842, 바람의 길을 따라 윗동네 모시리와 알동네 황개에 우잣과 성담을 쌓아 거친 하늬바람을 막으며 본향당을 세워 바닷길을 여셨던 바당올레 사람들.

이전에 가파도는 목장이었다. 영조 때에는 별둔장을 만들어 국가 제사에 쓰이는 흑우를 별도로 사육하였다. 그 후 1840년 영국 배가 상륙하여 소를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후 목장을 폐쇄하였고, 사람들이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거친 바람 환경을 견디기 위해 가파도의 울타리 구조는 처마보다 우잣담장이 더 높다. 그리고 혹독한 비바람으로부터 가옥을 보호하기 위하여 처마 아래에 잇돌이 놓고 물골을 따로 만들었으며, 우물이 없는 제주섬과는 달리 집 집마다 우물을 파서 식수로 사용한 게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은 추자도와 가파도가 유일하다.

가파도에 가면 들숨과 날숨의 경계를 넘어 숨비소리로 세상을 여는 우리 시대의 좀녜 삼춘을 만날 수가 있어, 설렘으로 올레가 출렁거린다.

 

가파도 올레 개장식(사진=윤봉택 제공)
가파도 올레 개장식(사진=윤봉택 제공)

2회 가파도 청보리 축제와 함께 제주올레 10-1코스 가파도 올레는 2010328일 상동 포구에서 개장식을 가졌다. 청보리축제를 처음 기획한 김동욱 가파리장의 환영 인사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올레를 여는 인사 말씀으로 4.2km 구간을 열었다. 하모리 운진항에서 가파도 상동 포구까지 도항선 운항 시간은 15분 내외이다.

모시리라 부르는 상동 마을 포구 대합실 길 남쪽에 제주올레10-1코스 출발점 간새가 있다. 이곳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나가면 바로 해변가에 상동 마을을 지켜주는 본향 할망당(매부리당)이 있다. 모슬포 하모1리 본향 문수물당에서 가지 갈라온 당으로서, 상동마을 좀녜와 어부의 만선 풍어를 주관한다. 이로 미뤄보면 처음 상동마을에는 모슬포 하모리 주민들이 많이 입주하였던 것 같다.

 

상동 할망당(사진=윤봉택 제공)
상동 할망당(사진=윤봉택 제공)

할망당 지나면 바로 이개덕이다. 이씨 성을 지닌 이가 주로 작업하였던 바다 구역이라 불린 지명이다. 이어서 팽풍덕이 있다. 이는 주변 바위가 병풍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가파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가옥과 돌담구조를 만난다. 집마다 파 놓은 우물 하며, 바다에서 감태 등 해초를 갖고 와 쌓아 놓았던 눌굽자리, 15가구에 하나 정도 만들어 놓은 몰방아, 돗통시 등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 수가 없는 가파문화 풍경화이다.

 

보롬바위(사진=윤봉택 제공)
보롬바위(사진=윤봉택 제공)

다시 바당올레로 나리면 큰왕돌이라 하는 보롬바위가 바닷가에 있다. 하동 황개창에 있는 까마귀돌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바위에 오르거나 바위에 걸터앉으면, 큰바람이 불어 출어가 어렵기 때문으로 마을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바위이다.

 

가파도 거석문화(사진=윤봉택 제공)
가파도 거석문화(사진=윤봉택 제공)

서쪽 코지로 나가면 썰물 때에만 드러나는 큰아끈여, 조근아끈여가 있고, 바로 동쪽이 목그차진여이며, 선인장 군락 가기 전에 해변에서 샘이 솟아나 불린 물앞이물이 있다. 좀 더 가면 고양이 형상을 한 고냉이돌이 있는데, 앞바다에서 자리가 많이 거리기에 가끔 자리돔 거리는 배를 볼 수가 있다. ‘잉개코지가기 전 풍력발전기 방향으로 오르면, 고인돌 닮은 거석이 많이 흩어져 있다. 자연적으로 있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형적인 면이 있어, 향후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도대밧(사진=윤봉택 제공)
도대밧(사진=윤봉택 제공)

가파초등학교를 지나면 가파도의 중심에 도대밧이 있다. ‘도대는 등대를 말하는 바, 이곳이 가파도에서는 가장 높은 해발 20.5m가 되기에, 오래 전 이곳에 도대가 있어 불린 지명이 아닌가 한다. 마을에는 이곳에 소망 전망대를 세워 섬 전체를 바라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가파도 중동마을을 지나 북동 방향으로 가면 청보리밭 올레이다. 송악산에서 한라산 서귀포 앞바다 섶섬까지 무한 포옹이 가능한 곳이다.

청보리올레 끝점에서 좌우로 보면, 가파도의 목축문화를 엿볼 수 있는 특이한 성담 건조물이 가파리 174번지선 그 전후에 흔적이 남아 있다.

 

가파도 성담(사진=윤봉택 제공)
가파도 성담(사진=윤봉택 제공)

가파도에는 땅은 적고 농사 때문에 소를 방목할 때는 이렇게 해변에 돌담을 쌓아 소가 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목하였다. 형식은 해안선을 따라 두 줄 또는 석 줄로 쌓아는데, 구조는 맨 아래 부분은 두 줄 접담으로 쌓다가, 위에서는 한 줄로 마감하여, 전형적인 접담에 외도리 우쓴담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담 북쪽 해안에 개엄주리코지, 구제기여가 있다. 지형이 개미와 비슷하여 불린 왕돌 두 개가 있고, 물결 이는 곳이 구제기여이다.

 

가파도 제단(사진=윤봉택 제공)
가파도 제단(사진=윤봉택 제공)

해안가 성담 끝나는 동쪽 해안이 큰옹진물이며, 묘지 중간 부분 해안이 넓개이다. 제단은 가파리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포제단으로, 매년 1월에 제 뫼실 날을 가려 전 주민의 뜻을 모아 제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이다.

해안선 남동 끝점에 볼락코지가 있다. 이 코지 동산에는 가파도 문화와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은 가장 높은 건물 하나가 몇 년 전부터 건축되어 있는데, 아직도 내부는 준비 중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문학이나 예술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그 빛을 더하는 게 아니었가. 하면 아름다운 섬에 이런 건축물이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 ..., 가파도에도 폐가도 있는데,

황개창으로 가다 보면 식수로 사용했던 돈물깍이 있고, 그 서쪽 좀녜불턱 너머에 10-1코스 종점 제주올레 간새가 기다리고 있다.

가파도 개경 기념비(사진=윤봉택 제공)
가파도 개경 기념비(사진=윤봉택 제공)

가파섬에서 가장 남쪽 마을 하동에는 황개창이 있다. 마라도와 가장 가까운 포구에는 까마귀돌이 선왕 바람을 날리고, 그 곁에는 하동 본향당인 뒷성 선왕당이 있는데, 상동 할망당에서 가지 갈라온 당이다.

하동은 가파도 행정 중심 마을이다. 마을회관, 어촌회관이 있고, 가파도 개경 12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1962년 당시 가파도에는 212, 인구는 1,036명이었다.

필자 소개 글

법호 相民. 윤봉택은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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