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15)] 제주올레 11코스

모슬포항(사진=윤봉택 제공)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곳에서 올레가 열리고, 그 올레로 들어서면 모든 경계가 일순 사라지며 영혼의 숨결로 서벅거리는 서쪽 끝 모슬포,

탐라국에서 대정만큼 상흔 많은 고단이 어디 또 있으랴. 모슬포로 더 알려진 대정은 제주 근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대정 사람을 대정몽생이라 했을까. 이는 불의에 항거하였던 대정인의 기품을 단적으로 예시한 게 아닌가.

조선의 올곧은 선비들의 적거지이자, 나라가 어려웠던 시대에 온 몸을 던져 의거하였던 우국 열사들의 본향이 대정이다. 동계 정온, 추사 김정희, 정난주의 유배와 강제검의 난, 방성칠의 난, 오좌수의 의거, 이재수의 신축민란, 그리고 알뜨르비행장, 모슬포 제1육군훈련소 등은 근대사의 형극 그 자체였다.

열다섯 번째로 순례하는 제주올레 11코스는 20081130일 개장됐으며, 대정읍 하모리 체육공원에서부터 무릉리 제주 자연생태문화체험골(무릉외갓집) 까지 17.3km, 44리이다.

탐라의 39진 방어 유적 가운데 모슬진의 유적지를 지나 모슬포항을 돌아서면, 하모리·동일리·상모리·보성리·신평리·무릉리·청수리를 지나면서, 대정오일장·서산사·하모3리 섯사니물당·동일리포구·하모리 고인돌·모슬봉·정난주 묘역·신평도요지, 신평본향 일뤳당·신평·무릉 곶자왈·정개왓·오찬이궤·성제숯굽터·고래머들·인향동 구남못으로 이어지며, 삶의 물음표에 덧난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올레가 제주올레 11코스이다.

11코스 안내센터를 지나 길을 건너면 모슬진 유적이 있다. 이 모슬진은,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던 가래방호소를 1510년 장림 목사 때 회수로 롤 옮겨 동해 방호소를 세웠다가, 16775월 윤창순 목사가 동해 방호소를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오좌수 의거비(사진=윤봉택 제공)

모슬진 터 바로 곁에 오좌수 의거비가 세워져 있다. 강화도조약 이후 왜놈 침탈이 점차 많아지자, 이를 지켜내기 위해 대정읍 하모리 출신 이만송·이흥복·정종무·김성만·김성일 다섯 분이 분연히 일어나 항거한 의거비가 있다.

바로 북쪽에 있는 신영물·신령수·영신정이라 부르는 샘물이 있다. 하모2리 영수동 도로변에서 솟아나는 이 샘은 과거에 한 풍수가 지나가면서 물맛을 보고 나서 물맛이 너무 신령스러워 불린 이름이다. 수도가 보급되기 이전까지는 마을의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제주도 서부지역의 거점 항구인 모슬포항 주변에는 1930년 지역 어민들이 어업조합을 설립한 후 세운 물류창고가 있고, 골목을 나서면 대정오일장이다. 제주도 내에는 서귀포시 지역(대정, 표선, 중문, 서귀포, 고성/성산포) 오일장 등 5개소이고, 제주시 지역(세화, 한림·제주시 민속) 오일장 등 3개소인데, 대정오일장은 매월 16일에 열린다.

동일리 지경 머리에 산이물이 있고, 더 지나면 무오법정사 항일항쟁 주역이신 강창규 스님이 창건한 서산사가 표석과 함께 있다. 해안선을 지나면 길 남쪽에 불턱처럼 조성된 하모3리 돈짓당인 섯사니물당이 있다.

 

동일리 포구(사진=윤봉택 제공)

망동산, 모도리수눌늪을 지나면 생이물건너에 동일리포구가 기다린다. 홍물동 지나면 청소년 수련관 뜨락에 하모리 고인돌이 있다. ‘물배왓, 동카름, 벨레기동산지나 장갈연못위 대정여고 교정에는 제1육군훈련소 시절 제98육군병원 병동이 실습실로 사용되고 있고, ‘솟은밧, 비케왓, 우중모루지나면, 모슬봉수가 있던 모슬봉 입구이다.

5부 능선에 있는 중간 스탬프를 지나면 보성리 지경이다. ‘한굴밧지나 광대왓방향으로 들어서면, 풍수지리상 좋은 터로 알려진 존섭이고, 바로 위가 정난주 마리아묘역이다.

신평리 마을 초입에는 한 가마에서 유일하게 두 종류의 옹기(황색·흑색)를 동시에 구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쌍굴가마가 있었다 하여 불린 하동굴동산이다.

신평리 본향당(사진=윤봉택 제공)
신평리 본향당(사진=윤봉택 제공)

한진못지나 조로방내넘으면, 크지 않은 연못 서녁물이 보이고, 4.3사건으로 사라진 식물동네지나면, ‘모루왓우측으로 신평곶자왈 입구가 나타난다. 바로 이곳이 1901년 장두 이재수가 신축민란을 봉기할 때, 이곳 신평리 본향 일뤳당에서 천지신명께 제를 올렸던 유서 깊은 신당이 있다. 과거에 당굿을 할 때는 돼지를 산에 풀어 놓고 난 다음에 다시 산돼지를 잡듯이, 풀어 놓은 돼지를 잡는 산신놀이를 하였다고 전한다.

신평곶자왈로 들어서면, 자왈 높은 곳에 볼레낭이 많아서 불려진 꼬리볼레동산과 자왈에 방목한 소를 돌보기 위해 테우리들이 모여 놀았던 테우리동산이 있고, 이곳에서부터 한숙이고른질로 가는 길이 나눠지기 때문에 불려진 거린밧이 있다.

신평 곶자왈 잣도를 지나면, 무릉곶자왈이다. ‘잣질올레 따라 13km 지점 지나 새왓으로 가면, 정씨 성을 가진 분이 이곳에 머물면서 자왈을 개간하여 생활하였던 정개밭이다.

 

성제숯굽터(사진=윤봉택 제공)
성제숯굽터(사진=윤봉택 제공)

그리고 지난날 오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한 손으로 소를 때려잡을 정도 힘이 천하장사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 끼에 쌀 한 가마 분량의 밭을 지어 먹어도 모자라 부잣집 소를 잡아 먹으며 이 궤에서 생활하였다고 하여 불린 오찬이궤가 있다. 좀 더 아래로 내리면, 과거 인향마을이 설촌될 당시, 한 형제가 이 숲에 들어와 숯가마를 만들어 숯을 구웠다 하여 불린 성제숯굽터가 있다.

15km 지점 지나면 고래머들이다. '고래'는 맷돌, '머들'은 돌무더기 또는 땅에 박혀 있는 암석을 말하는 제주어인바, ‘고래제작에 필요한 연한 성질의 돌이 많았기 때문에 불린 지명이다.

인향동(인냉이)는 무릉2리에 있는 자연마을로서, 평지동(고바치좌기동(사기수웃날뢰(신평리날뢰(일과리) 등과 함께 이뤄진 마을이다.

구남못(사진=윤봉택 제공)
구남못(사진=윤봉택 제공)

이 마을에는 우마 방목 때 급수원으로 사용되었던 구남물, 구남수가 있는데, 못 서쪽에는 돌로 만들어진 구시통(돌확) 2개가 좌우로 놓여 있는데, 이는 빨래로 인하여 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빨래 전용으로 만들어 놓은 세답 문화유산이다. 이처럼 연못가에 구시통을 놓아 빨래하였던 곳은 한경면 낙천리 저갈못과 이곳이 유일하다.

왕돌단, 삼오정을 지나 동카름에서 삶의 느낌표를 나누는 이 마을 올레 삼촌을 만났다. 85세 연장자부터 75세까지 보석 같은 사람들.

무릉 오거리에는 대정현이 설립될 당시 이 지역에서 기와와 목탄을 생산하여 대정현청으로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다리를 설치하였던 고인교가 있고, 이곳에서 좀 더 가면 제주올레 11코스 끝점 무릉외갓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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