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사항일운동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소풍’ 23일 열려

 

참가자들이 숲길을 걷는 장면(사진=장태욱 기자)
참가자들이 숲길을 걷는 장면(사진=장태욱 기자)

나무가 초록으로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계절이다. 떡갈나무와 소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등이 내뿜는 산소와 피톤치드를 마시며 계곡을 넘나들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시원한 바람이 이 또한 식혀줬다.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도시락은 피로를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법정사항일운동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소풍’이 23일, 법정사지 주변과 자연휴양림 일대에서 열렸다. 법정사항일운동을 기억하고, 발상지를 활성화하는 사업이다. 제주자치도가 주최하고 서귀포신문이 주관했다.

23일 소풍에는 서귀포시그린환경대학 회원들이 단체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어린이들도 예년과 비교하면 많이 참가했는데, 그동안 학교에서 역사교육과 체험학습 등으로 법정사에 대해 미리 이해했다는 어린이도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일가족도 참가했다. 인천 북예서초등학교 2학년 박종현 어린이는 “할머니가 서귀포에서 생활하시는데 방학이라 부모님과 함께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라며 “할머니가 소풍을 가자고 해서 왔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사진=장태욱 기자)
참가자들(사진=장태욱 기자)

참가자들은 10시까지 현장에 도착한 후 각자 자신의 명찰을 목에 걸었다. 강상무 법정사항일운동유족회장이 안내와 해설을 맡았는데, 강 회장은 “어린이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당무했다.

참가자들은 고지천을 건너 지금까지 법정사 터라고 알려진 곳으로 이동했다.

강상무 회장은 “안봉려관 스님이 1908년 관음사를 창건한 후 한라산 남쪽에도 사찰을 지어야겠다는 마음에서 1910년 이곳에 법정사를 창건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법정사가 있는 법정악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집에 수험생이 있으면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강상무 회장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1910년은 경술국치로 국권이 상실됐다”라며 “스님과 신도들이 독립을 위해 거사를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법정사 주지 김연일 스님은 우리나라의 모양이 돛단배를 닮았고 제주도는 돛단배의 닻과 같다고 생각했다”라며 “닻을 올리면 배가 출항할 수 있듯이 제주에서 거사를 일으키면 나라의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참가했다.(사진=장태욱 기자)
많은 이들이 참가했다.(사진=장태욱 기자)

참가자들은 다시 고지천을 건넌 후 의열사로 향했다. 그곳에서 희생자들에게 잠시 묵념을 올렸다.

강상무 회장은 “당시 법정사 스님과 신도들은 1918년 10월 7일 새벽에 법정사에 모여 새벽 예불을 올린 후 새벽길을 내려가 서귀포경찰주재소를 습격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중문주재소를 습격했다”라며 “당시에 파출소장과 일제 경찰 3명을 포박하고 거기에 갇힌 조선인을 구출했다”라고 말했다.

강상무 회장은 “일제는 거사가 발생한 후 가담자들을 잡아들인 후 광주고법 목포지청으로 이관했다”라며 “이 일이 전국 불교운동으로 확산할 것을 우려해 보천교도의 난이라고 왜곡해 발표했다”라고 말했다.

동홍초등학교 5학년 김지우 어린이는 “법정사로 소풍을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법정사항운동에 대해 사전조사를 했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됐다”라며 “해설사 할아버지가 네이버보다 더 똑똑한 선생님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법정사항일운동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니 일본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의열사에서 순국선열에 묵념을 올린 도순천을 건넌 후 쉼터에서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그리고 법정악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둘러봤는데, 안개가 끼어 바다까지 시원하게 보지는 못했다.

참가자들은 전망대를 내려온 후 주차장에 모여 설문조사를 한 후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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