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23)] 제주올레 17코스

길은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다시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길을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 편집자 글

 

제주올레는 바람이다.

바람 아니 부는 섬 날이 어디 있으랴만, 이 계절 1117코스에는 하늬바람이 불어온다. 처마 선이 닿아 있는 우잣담 높이에 머무는 북풍을 온몸으로 느낀 421년 전 청음은 제주 바람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애월 고내 지나 도근천 변에 이른 안무어사 청음 일행은 수정사에서 하룻밤을 넘기려 하였으나, 초가 몇 칸뿐이라 하는 수 없이 다리가 끊겨 바로 건널 수 없는 시냇물을 따라 겨우 건너가는데, 물색이 푸르기가 바다와 같다고 하였으니 바로 그곳이 명월대이다. 제주올레 따라 고븐데기 돌고 돌아 관덕정에 이르고 보니, 사람의 말소리가 꿩이 우는 소리와 같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제주올레 17코스 출발점(사진=윤봉택 제공)
제주올레 17코스 출발점(사진=윤봉택 제공)

1601년 음 922일 청음이 처음으로 걸었던 제주올레 17코스는, 그로부터 409년이 지난 2010925일에 개장되었다. 광령1리마을회관에서 광령천·도평동·창오마을·외도일동·외도이동·내도동·이호일동.원장천·현사동·이호천·백개마을(백포동동마을·서마을·도두일동·효동마을·신사수동·사수동·용담삼동·어영마을·수근동·용마마을·용담이동·용두암·서한두기·한천(왕관릉.탐라계곡.방선문.용연용연·용담일동·동한두기·병문천(관음사야영장 서쪽삼도이동·무근성마을·이도일동·일도일동에 있는 제주올레 간세라운지 까지는 18.1km 46리 길이다.

애월 광령은 서목안(西牧內)’에서 광령천·도근천을 넘어 목안(牧內)’으로 진입하는 길목이다. ‘서목안에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빛과 연관된 지명이 많다. 수월봉(水月) 그대로 달빛 바다가 아닌가. / 월령(月令) 달빛 나려 마음 가난한 마을 / 명월(明月) 달빛 하나로 세상을 읽는 마을 / 애월(涯月) 달빛으로 노 젓는 마을 / 빛으로 빛을 빗는 마을 광령(光令) 1리 마을회관 제주올레 17코스 출발점은 달빛처럼 은은함이 스며 있다.

 

광령리 자운당(사진=윤봉택 제공)
광령리 자운당(사진=윤봉택 제공)

도로변 순두동산의 작은 연못 순두물을 지나 한길 건너 무수천으로 진입하기 전, 북쪽 작은 길로 가면 영도빌라가 있는데, 그 건물 북쪽에 광령1리 본향 자운당이 있다. 오래전 빌라를 지으면서 신목 팽나무 두 그루는 모두 베어지고, 작은 팽나무가 대신 서 있다. 신위는 '송씨 부인, 송씨 도령' 일뤠당 계열로써, 산육을 담당한다. 본래는 광령리 당동산 작박거리에 있었으나, 이곳으로 옮겨졌다.

제주에서 중문·대정 간 개설된 서부산업도로는 지금은 평화로로 불리고 있다. 이 도로가 시작되는 곳에 소암 현중화 선생이 휘호 새마을로표석이 있고, 바로 광령천 광령교의 무수천이다.

 

무수천 들렁귀소(사진=윤봉택 제공)
무수천 들렁귀소(사진=윤봉택 제공)

광령교 다리 북쪽에 무수천 8경 중 제4경인 들렁귀소(영구연)’이 보인다. 쇠앗배 열두 장을 감춘다는 깊은 소에는 옛날부터 사람을 서먹는다라는 전설이 숨겨져 있는 절경이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은 무수천 절경에 대하여, ‘한라산에 올라 잔을 기울이고, 무수천 따라 흥겹게 내려오니. 登高南嶽擧深觴 川上歸來興更長라며 노래하였다. 이 무수천/조공천/수정천/광령천 동쪽을 따라 북쪽으로 내리면, 계곡 아래로 용눈이 굴, 매 앉은 돌, 오해소가 무수천 명소가 제2교까지 이어진다.

 

몽돌 축담(사진=윤봉택 제공)
몽돌 축담(사진=윤봉택 제공)

1사라교 넘어 도평동, 창오교 건너, 창오랭이 마을의 어시천교를 지나 외도천교를 넘으면 외도일동이다. 이곳에서부터 외도수원지 닿기 전 사메기내까지 사이에는, 지형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밭 축담을 가지런하게 쌓았고, 돌이 모자라자 냇가 몽돌을 갖다가 모아 쌓은 전형적인 제주 하천변 축담 석축 양식을 볼 수 있어 즐거운 명소이다.

외도일동은 수정사 중심으로 이뤄져 "절물마을"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고려시대 창건된 수정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령천 하구에 있는 외도이동 월대(月臺)는 달을 보면서 여가를 즐기던 장소이다. 제주에는 월대가 모두 세 군데 있다. 한림 명월리에 있는 명월월대. 광령천 월대. 서귀포 법화사 월대이다. 이 가운데 법화사 월대는 법회나 야단법석에 사용했던 것이나, 이곳을 포함 두 군데 월대는 그대로 물빛에 출렁이는 달빛을 느끼고자 함이었다.

 

월대(사진=윤봉택 제공)
월대(사진=윤봉택 제공)

월대는 '달을 직접 보는 게 아니라 물에 비춘 달을 보는 것을 말하며 이를 월견대(月見臺)라 하고, 지월(指月)은 달을 직접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의미하고, 간월(看月)은 직접 바라보는 것으로, 모두 그 의미가 각각 다르다. 월대 표석은 1925 을축년 3월에 외도마을 갑자생 갑장회인 외도리 갑자신흥회 회원 12명이 세운 것이다. 외도동에서는 20138월부터 월대천축제를 행사하고 있는데, 천원지방(天圓地方) 양식으로 복원하여 놓았다. 조공포, 하구를 지나 외도교를 건너면, 내도동 알작지 해변이 이어진다. 내도포구를 지나면 알작지왓, 깅이바득해안가 길 건너 남쪽에 고샅길 닮은 올레 담장과 환해장성 개경담이 오고생이 남아 있음이 기쁨이다. 해안가 두리빌레에 있는 내도동 알당(두리빌레당)은 바닷가에 있는데, 신위는 용녀부인, 뱀신을 모시며 어업을 관장한다.

 

내도 올렛담(사진=윤봉택 제공)
내도 올렛담(사진=윤봉택 제공)

원장천 현사교를 지나면, 백개라 부르는 이호일동 현사포구이다. 이호해수욕장 쌍원담을 지나 문수물건너에 이호 동모슬포구/동개가 있다. 그 동쪽에 이호일동 본향/붉은왕돌 할망당이 있는데, 도두오름 허릿당에서 갈라온 가짓당이다.

도두항 섬머리지나 도두봉에 오르면, 도원봉수터가 정상에서 기다린다. 도두이동 신사수포구/홀캐로 내려가면, 기건 제주목사(1443~5)가 나병환자를 살피기 위하여 도내 처음으로 공립의료기관인 구질막을 설치하였던 벵막이모루가 있다. 좀 더 가면, 해안에 도두2동 왕돌 할망당이 있고, 몰래물방사탑 아래에 몰래물이 즐겁게 솟아난다.

 

몰래불 방사탑(사진=윤봉택 제공)
몰래불 방사탑(사진=윤봉택 제공)

용담삼동 까마귀 동산을 오르면, 새로운 방사탑이 있고, 바로 어영마을공원에 중간 스탬프가 있는데, 어영마을 본향당을 지나 수근연대 넘으면 다끈개/수근포와 해신당, 다끄내물이 있다. 용담이동 몰머리, 소금빌레, 용두암을 지나면, ‘개씹구멍. 서한두기물. 용연이 나타난다.

 

용연(사진=윤봉택 제공)
용연(사진=윤봉택 제공)

출렁다리를 건너면 한두기이다. 동한두기 절동산 동 아래에 미륵신앙의 상징인 서자복이 있다. 벌랑개의 병문천을 지나면, 무근성마을회관이 있는데, 건물 우측에는 양반가가 살았던 조관집터가 있고, 길 남쪽이 고씨네 몰방애터이다.

제주목 관덕정 앞 서문한질을 건너면, ‘추숫물터가 있고, ‘서문골따라 남쪽으로 가면, 구제주대병원 서쪽 일대가 이얏골이며, 이아 건물 마당이 녹남밧이다. 이곳에서 좀 더 가면, 제주 최초 성당인 중앙성당이 있고, 그 건너에 제주올레 17코스 종점 제주올레안내센터 간세 라운지가 있다.

 

필자 소개 글

법호 相民. 윤봉택은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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