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개업] 한라수제비

한라수제비 가게 전경 (사진=설윤숙 인턴기자) 
한라수제비 가게 전경 (사진=설윤숙 인턴기자) 

한입에 들어가는 쫄깃한 반죽과 포슬포슬한 감자, 시원한 국물까지.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안성맞춤인 음식 수제비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 할머니는 밀가루 반죽 열심히 치대어 면포로 덮어놓고 팔팔 끓는 멸치육수에 애호박, 김치 넣고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얇게 펴서 한입 크기로 툭툭 뜯어 넣어 뜨끈한 수제비를 끓여주시곤 했다.

수제비의 유래를 찾아보니 중국의 6세기경 고전 <제민요술> 속에서 박탁(餺飥)’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한 기록으로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시대 요리책 산가요록(山家要錄, 1459)’에 수제비가 국물에 뜬 모양이 꽃 같다고 하여 나화(刺花)’, ‘수라화(水刺花)’로 기록하고 있다. 임금님 밥상을 수라상(水刺床)이라고 하니, 이에 유추하면 임금님 밥상에 핀 꽃으로 해석해 수제비가 임금님도 드시던 귀한 음식이었던 듯하다.

전통적으로 쌀 생산이 주이고 밀 생산이 적었던 우리나라에서 밀로 만든 음식인 수제비는 귀한 음식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과거에는 궁중이나 반가에서 닭 국물에 온갖 고명을 넣어 삼복에 보양식으로 먹는 여름철 별식이었다고 하니, 지금처럼 서민 음식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수제비를 즐겨 먹게 된 것은 6.25전쟁 이후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보급되면서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애용되었다고 하니, 서민의 고단한 삶을 반영한 음식 중 하나이다.

제주에서는 메밀 조배기, 보말 조배기 등 조배기라는 명칭으로 익숙하다. 그럼에도 육지만큼 수제비를 파는 가게가 흔하진 않은데, 서홍동에서 <한라수제비>라는 간판의 가게를 발견했다. 누가 봐도 수제비를 파는 집이다.

해물고추장수제비, 해물파전, 돈가스, 전복도시락 등 
해물고추장수제비, 해물파전, 돈가스, 전복도시락 등 

이곳 주인장은 설영택, 전지연(51) 씨 동갑내기 부부.

마흔이 넘어 인생의 반려자로 만나게 된 이들은 제주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제주가 그냥 좋았다던 이들 부부는 육지에서 각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왔다.

올해 1월 제주로 이주하고, 한라수제비 가게를 낸 것은 불과 2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안주인 전지연 씨는 다년간 자영업을 하며 장사의 노하우가 쌓였다. 피자가게도 몇 년간 운영했지만 배달과 테이크아웃 전문으로 운영하던 피자가게와 지금 수제비 가게는 다른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오픈키친으로 직접 수제비를 뜯는 장면을 손님들이 꽤 재미있게 지켜보신다고. 그러면서 손님과 주고받는 한 두 마디가 즐겁다고 했다.

5남매인 전지연 씨는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 먹이는 것이 좋다. 식당을 하신 엄마의 영향을 받아 요리하는 것이 즐겁던 그는 언니, 오빠들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린다. 워낙 요리를 좋아하고 주변 사람에게 해주는 것도 좋아하는 지연 씨는 한 끼를 때우기 위한 외식은 하진 않고, 웬만한 요리는 집에서 직접 해 먹는단다.

그중 주인장이 잘하고, 좋아하고, 주변에서 맛있다고 하는 해물수제비를 주메뉴로 내세웠다. 이곳의 해물파전, 돈가스 등도 항상 집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수제비하면 주로 멸치 육수를 기본으로 하는 수제비가 많은데, 연구를 거듭해 해물과 된장을 넣은 해물수제비의 맛있는 조합을 찾아냈다. 된장을 베이스로 한 음식이 많은 제주의 특성을 살리고 더불어 된장은 해물의 비린내도 잡는다. 수제비하면 필수로 곁들여야 하는 배추겉절이도 맛이 좋다.

돈가스도 서울 남산 왕돈가스처럼 얇고 큰, 어릴 적 경양식 식당에 가서 먹던 돈가스이다. 제주산 생등심을 사용해 신선한 재료 자체가 톡톡히 맛의 역할을 한다.

직접 그린 가게 내부 벽화 앞에 선 설영택, 전지연(51세) 씨 부부 (사진=설윤숙 인턴기자)
직접 그린 가게 내부 벽화 앞에 선 설영택, 전지연(51세) 씨 부부 (사진=설윤숙 인턴기자)

101일 문을 연 한라수제비는 광고 한번 없이 주민들에게 입소문이 나고 있다.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일주일에 여러 번 찾아오는 단골도 생겼단다.

어느 날 가게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80세 넘은 노부부가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찾아오셨다. 수제비를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수제비 가게가 이곳에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발걸음을 하셨다고 하니, 손님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듣는 이야기들이 참 좋다는 주인장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오는 가족 손님, 엄마와 함께 가게를 왔다가 매일 학원에 오가는 길에 가게 앞에서 꼭 인사를 건넨다는 8살 꼬마 손님 등.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진짜 맛있어요라는 손님의 말 한마디로 피로가 싹 가신다는 주인장.

내가 정성껏 만든 맛있는 한 끼를 먹고 가는 손님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로 일도 일상도 즐거운 부부다.

한라수제비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월요일 휴무.

서귀포시 중앙로 189 지오빌2차아파트 20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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