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민의 서귀포 오름 이야기(82)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섬은 어디를 가든지 아름답지 않는 곳이 없다. 특히 도시와 마을을 벗어나기만 하면 이곳저곳에 숲이 우거지고 수 많은 오름들이 서 있어서, 그 속에 들어가 잠시 앉아있기만 해도 좋고, 우거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기만 해도 도시에서 찌든 삶을 살던 이들에게는 자연이 주는 힐링(healing)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고 숲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숲에 들어가고 오름에 올라가는 것을 즐겨서 제주 섬의 이곳저곳 걷기 코스와 숲길을 많이 걷곤 한다.

제주에 아름다운 숲이 많은 것은 이들이 훼손되지 않게 가꾸고 돌보며 연구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림청 아래 제주산림과학연구 시험림들이 이들이 가꾸고 돌보는 숲인데, 서귀포에는 서귀포 시험림과 한남 시험림이 있다. 1,550ha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서귀포 시험림은 동홍동, 상효동, 토평동과 남원읍 하례리 지경에 걸쳐 있는 숲으로, 난대림 보육과 장기생태연구를 하고 채종원 및 지역 시험을 주로 하고 있으며, 1,203ha의 면적을 보유하고 있는 한남 시험림은 남원읍 한남리와 하례리에 걸쳐 있는 숲으로, 이곳에서는 SFM(지속가능한 산림 경영)을 위한 모델림 조성을 주로 하고 있다.

한남 시험림에는 숲길 탐방 코스가 마련되어 있으며, 516일부터 1031일까지 기간에만 개방하고, 온라인 예약 시스템에 의해 예약을 한 사람에 한하여 숲길 개방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남 시험림 내에는 사려니오름, 넙거리오름, 머체오름, 큰거린오름, 족은거린오름 등 5개의 오름이 있는데, 이 중에 사려니오름과 넙거리오름은 탐방 코스 중에 포함되어 있어서 숲길 개방 기간 중에는 자유롭게 오를 수 있고, 나머지 세 오름은 특별 목적에 의한 허가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한 오름이다.

넙거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사진=한천민 소장)
넙거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사진=한천민 소장)
넙거리 정상부(사진=한천민 소장)
넙거리 정상부(사진=한천민 소장)

넙거리오름은 한남 시험림 내에 있는 오름으로, 남원읍 한남리 지경이며, 북동쪽에는 머체오름과 큰거린오름과 족은거린오름, 북서쪽에는 사려니오름과 사려니자락이 있어서 이 오름들과 사이좋은 오름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이 오름을 넙거리라고 하는 것은 오름의 위쪽에 있는 원형 굼부리가 매우 편평하여 넓게 보이는 데 연유한 까닭이다. 한자 표기로는 광가악(廣街岳), 광거악(廣巨岳)이라고 하는데, 넓다는 뜻의 이 쓰인 것은 쉽게 이해가 되나, 거리를 뜻하는 , 크다는 의미의 가 붙은 것은 의미가 없어서, 아마도 거리는 단지 접미사로 쓰여서 넙거리라고 부르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시험림 내의 오름 입구에 멀동남오름이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이렇게 부르는 까닭은 어찌된 연유인지 알 수가 없다. 멀동남이라 쓰인 것으로 보아 멀동남은 어떤 나무를 가리키는 말인 듯한데, 이게 어떤 나무인지 확인되지도 않을뿐더러, 이 오름이 속한 마을인 한남리에서조차도 멀동남오름이라 부르지 않고 넙거리오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멀동남오름은 어디서 연유한 이름일까?

넙거리굼부리와 처사 오공의 묘(사진=한천민 소장)
넙거리굼부리와 처사 오공의 묘(사진=한천민 소장)

이 오름의 굼부리 서쪽 능선 아래에는 處士吳公의 묘가 있는데, 일본의 연호인 大正 7(서기 1918)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이 묘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于光武辛丑九月二十九日葬于松堂境??茂輝男甲申作之原壽六十八大正七年戊午四月日掌議康履厚謹誌]

여기서 茂輝男(무휘남)이라 쓰인 부분이 있는데, 이 한자를 멀동남으로 잘못 읽어서 표기한 것에 연유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

이번에 이 오름을 탐방하면서 시험림 탐방 안내소에서 만난 안내원도, 넙거리오름 입구 안내판에 멀동남오름이라고 표기를 한 것을 넙거리오름으로 바꿔 달라는 건의를 산림청에 했는데도 산림청에서는 아직까지도 표기를 바꾸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넙거리오름은 전체적으로는 둥그스름한 모양의 오름으로, 넓고 야트막한 원형 굼부리를 가지고 있으며, 능선의 바깥 사면 중 남쪽 사면은 매우 가파르고, 동쪽과 서쪽 사면은 다소 가파르며, 북쪽 사면은 매우 완만한 편이다. 굼부리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은 남쪽이 높고 서쪽과 북쪽이 약간 높으나, 동쪽 능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남서쪽에 위치한 정상부에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서 그곳에서는 남쪽과 서쪽의 경관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오름의 동쪽과 남쪽과 서쪽 기슭에는 임도가 만들어져 있어서 시험림의 관리를 위한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10월 말 경 개방 기간이 종료되기 전의 어느 토요일, 한남 시험림 탐방을 예약하고 사려니오름 기슭의 탐방 안내소로 가서 예약 확인을 받고 숲길을 걸고, 넙거리오름과 사려니오름을 올랐다.

사려니오름 남동쪽 기슭의 시험림 안내소를 통과하여 출입증을 받아 목에 걸고 탐방로를 따라 걸어가니, 탐방로 좌우로 우뚝우뚝 서 있는 삼나무들이 시원한 그늘과 공기를 보내주어 걸어가는 길이 상쾌하였다.

오름 북서쪽에 이르자 오름 위로 올라가는 탐방로 나무 데크 계단길이 있어서 오름 위로 올라갔다. 계단길 주변으로도 삼나무들이 울창하게 솟아 있었고, 삼나무 가지 사이로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고 있었다.

서쪽 능선 위에 올라서니 남쪽 정상부의 전망대로 가는 길과 북쪽의 조록나무 군락지로 가는 길이 갈라져 있었다. 정상부 쪽으로 먼저 가기로 생각하고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능선을 따라 걸어갔다. 걸어가는 능선 길의 왼쪽으로는 너른 굼부리가 내려다보였고, 굼부리 안에도 삼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우거진 삼나무 아래에는 백량금, 산수국, 누리장나무 등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각종 고사리들과 모시풀, 천남성 등이 그 사이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더욱이 산수국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서 보랏빛 꽃을 피울 때는 굼부리 안이 온통 보랏빛 물결로 물들 것만 같았다.

오름 남서쪽의 정상부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니 남쪽 바다와 여러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져 보였다. 서쪽으로 한라산 정상부가 올려다 보였고, 그 아래 방에오름 등 점점이 작은 오름들이 쭉 늘어서 있었으며, ᄉᆞᆯ오름, 생길이오름, 고이오름 등도 바라보였고, 섶섬, 문섬, 지귀도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들이 내려다보였다. 서귀포 시내의 우뚝 솟은 수많은 빌딩들도 영천 오름과 칡오름 사이로 바라보였고, 머리에 방송 중계탑을 세운 삼매봉도 바라보였다.

전망대를 지나 다시 능선 위의 탐방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남쪽 능선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능선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는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었으며, 탐방로 주변 능선 위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화산탄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또한 화산탄들과 나무들이 어우러져서 분재처럼 자라고 있어서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굼부리 둘레 능선 위의 탐방로를 따라 거의 한 바퀴 돌아서 조록나무 군락지 쪽에 이르니 그곳 굼부리 안쪽에 산담을 두른 묘가 하나 있었다. 묘비에 쓰인 글을 확인하기 위해 내려가 보았더니 앞에서 기록한 바와 같이 쓰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묘 앞에 좌우에는 작은 동자석 양쪽으로 서 있었는데 남쪽의 동자석은 작은 막대를, 북쪽의 동자석은 꽃을 들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묘에 누워있는 이는 생시에 꽃을 무척 좋아하던 이였으리라.

조록나무 군락지를 지나서 다시 오름 아래 탐방로로 내려와서 시험림 내 나머지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가을을 만끽하였다.

 

위치 :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지경

굼부리 형태 : 원형

해발높이 436.6m, 자체높이 102m, 둘레 1,874m, 면적 269,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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