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24)] 제주올레 18코스

길은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다시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길을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 편집자 글

 

삼성혈 동편 산지천 물길 따라 뱃고동을 울리면서, 산지포 도댓불을 바라보며 대륙을 향해 닻을 올린 처음 그들은 누구였을까.

탐라국에 39진이 세워지던 날은 육십갑자 중 무슨 날이었을까.

높새 칼바람 매서운 끝을 별도봉에 매어두고, 사라봉 칠머리당에서 해원 상생의 넋을 날리며, 알오름 애기업은돌을 기억하였던 해변마을 곤을동 주민들은, 다시 또 어느 오름 질곡의 억새로 피어나 길을 걷고 계실까?

스물네 번째로 연재하는 제주올레 18코스는, 일도일동에 있는 제주올레 안내센터 간새라운지에서부터 시작되어 이도일동, 제주성, 산지천, 동문시장, 일도일동, 건입동, 건입포·산지항·제주항, 동자복, 칠머리당, 사라봉, 화북일동, 알오름, 애기업은돌, 별도봉, 곤을동, 화북천, 금산마을, 화북포구, 화북진성, 해신사, 별도환해장성, 장머들, 동마을, 별도연대, 삼양삼동, 벌랑포, 삼수천, 둠벵이교, 삼양이동, 알카름동산, 해수욕장, 가물개, 삼양수원지, 삼양일동, 해수욕장, 설개, 원당봉, 신촌리, 닭모루, 서동, 대수동, 큰물포구, 동동포구, 대섬, 조천리, 조천진성, 연북정, 조천포구, 조천연대를 지나 조천만세동산 입구에서 마무리되는 19.8km로써, 50리가 넘는다.

​제주성(사진=윤봉택 제공)
​제주성(사진=윤봉택 제공)

18코스 시작은 제주의 가장 화려했던 목안(牧內)’중심을 지나 동목안(東牧內/조천 함덕 구좌)’으로 나가는 길목이다. 구석구석 마다 볼거리 느낄 거리가 많다. 제주성은 제주·정의·대정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중앙로에서 두목골을 지나 항골을 거쳐 귤림서원·오현단으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제주성을 만난다. 오현교 동쪽 끝점에는, 1555년 일본 왜적들이 화북포로 침입하여 제주성을 공격할 때, 70여 명 관군이 적을 급습하여 퇴각시킨 '을묘왜변 전적지'가 있다.

 

산지천(사진=윤봉택 제공)
산지천(사진=윤봉택 제공)

산지천 남수각 다리를 지나면, 물맛이 좋았다고 전하는 검정, 서흘천이 있었다. 동문시장에는 1689년 기사사화 때 제주에 5년 동안 유배되었던 김진구 유배지가 있는데, 그 후 1706년 그의 아들 김춘택 또한 제주에 유배(1706.4~1710.6)당하게 되는데, <별사미인곡別思美人曲>은 제주에서 지은 순 한글체 가사로 유배문학의 백미이다. 김춘택은 미인곡에서 해 다 저무는 날의 가는 줄 설워 마소. 엇더타 이 내 몸이 견줄 데 전혀 업네라며 자신의 유배 심경을 토로하였다.

2017년에 조성된 탐라문화광장은 건입포/산지항/제주항으로 연결되는 산지천을 아우르고 있다. ‘건들개로 불린 건입동은, 제주항을 중심으로 이뤄진 마을로서, ‘북수구를 지나면 산짓물이 솟아나고, 길 우측에 건입동 서당 터가 있다. 그 동쪽에는 1905년 목사 홍종우가 세운 영은정 정자가 있고, 김만덕 기념관 뒤편 금산수원지 상수원 보호구역에는, 금산 기슭에서 솟아 나오는 용천수를 광대가 먹고 병을 고쳤다고 하여, '광대천'이라는 샘이 있다.

산지천 하류 용진교 아래가 산지포 초입이며, ‘냇깍을 지나면 거상 김만덕 주막이다. ‘솟탕이라는 주정 공장 터를 지나 오르면, ‘고도리왓, 굴렁밧, 가마귀머들건너 사라봉에는 사라봉수가 토끼들과 숨바꼭질하고 있다. 오름 능선 아래에는 칠머리당이 있는데, 처음에는 동부두 남쪽 동산에 있었다.

 

애기업은 돌(사진=윤봉택 제공)
애기업은 돌(사진=윤봉택 제공)

알오름의 웽이동산 능선을 지나 오르면, 애기업은돌이 별도봉 끝자락에 서서, 저 홀로 빈 애기구덕을 흔들고 있다. 안곤흘내/화북천/별도천을 안아 휘감는 하구에는, 194914일 오전 9, 군사작전으로 인하여 43호 가옥이 모두 불타고, 주민 24명이 억울하게 희생된 4·3 곤을동 마을 유적이 있다.

 

화북진성(사진=윤봉택 제공)
화북진성(사진=윤봉택 제공)

해안선을 따라가면, 화북일동 금산마을포구/금돈지/새성창/별도포구와 환해장성을 만난다. 김석윤 와가를 넘기면서 화북포구를 건너 화북진을 지나면, 김정 목사(재임 1735~7)가 화북포를 세우며 제를 지낼 때 고했던 화북포시역시고유문(禾北浦始役時告由文)비가 세워져 있는데, 세월의 무게로 모두 마모되어 있다.

 

별도연대(사진=윤봉택 제공)
별도연대(사진=윤봉택 제공)

그 안에 바다를 지켜온 해신사가 있고, 지나면 화북 동마을과 엉물머릿개/동선창이다. 별도 환해장성과 연대를 지나면, 삼양삼동의 벌랑마을이다. 파도가 파도를 가른다고하여 벌랑이라 부르는 마을에는, 고즈넉한 초가 한 채가 섯동네/버렁마을 길목을 지키고 있다.

 

삼양일동 설개(사진=윤봉택 제공)
삼양일동 설개(사진=윤봉택 제공)

벌랑포구를 지나 둠벵이내/삼소천 둠벵이교 건너면, 삼양수원지가 있는 삼양이동 감수동/가물개이며, 검은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다. 삼양일동 설개/서흘포를 지나면, 앞오름과 원당봉으로 향하는 올레가 진밧질이다. 신촌 가는 올레를 따라 가면, 길 북쪽에 사기왓이 있고, 여기에서 묵은터를 지나면, ‘새모을신촌리이다.

 

신촌리 닭머루(사진=윤봉택 제공)
신촌리 닭머루(사진=윤봉택 제공)

닭의 머리 모양 닮았다 하여 부르는 닭머에는 늘 바람이 부는데, 해안선이 그렇게나 아름답다. 신촌리 서동 좀녜 불턱을 지나면, 환해장성과 원담이 올레를 열어 반긴다. 어촌 올레를 지나면, ‘고는새여안고 있는 큰물성창 대수포구인데, 주변에 용천수가 많다. 여기에서 돌코지지나면, 신촌 동동네 돌코지성창/동동포구이다. 대섬 방향 올레 우측에 동동네 일뤠낭거리 일뤳당이 있는데, 신위는 일뤠낭거리일뤠도. 고동지영감. 짐동지영감이다.

대섬은 신촌과 조천리의 경계에 있는데, 섬에 조릿대가 많아 불린 이름이다. ‘우미솟개, 숭에통을 지나면, ‘개남개남탕아래 신남머들, 원서방개가 썰물을 끌어당기고, ‘불턱개, 오저여가 온 종일 밀물을 퍼 나른다.

올레담 따라가다 보면 조천리 황씨종가댁이 제주 한옥 멋스러움으로 처마 선이 살아 있음을 볼 수 있다. ‘도릿물, 두말치물지나면, 비석거리 넘어가 조천진성 연북정이다.

 

조천진성 연북정(사진=윤봉택 제공)
조천진성 연북정(사진=윤봉택 제공)

뭍에서 탐라국에 입도할 때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서목안 애월진의 애월포구와 이곳 동목안 조천포를 이용하였으며, 연북정은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충정과 그리움의 연정을 빗는 곳이다. 1590년에 처음 세워진 이 정자는 제주목의 관덕정과 함께 오래된 정자 가운데 하나이며, 조천진은 39(화북진· 별방진·수산진·서귀진·모슬진·차귀진·명월진·애월진)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으며, 남문 하나만 있는 특이한 진성이다.

조천포와 함께하는 개낭개/큰물성창의 금당포를 지나면, 조천리 하동마을에 새콧할망당/고망할망당이 골목 가에 앉아 있다. 신위는 새콧고망 할망으로 뱀 신을 모시고 있으며, 어업을 관장한다. 하동마을 올레를 따라가다 보면, 큰길 건너 둔덕에 조천연대가 있는데, 동으로는 왜포연대, 서로는 별도연대와 교신하였다. 여기에서 조천만세동산 서쪽 한질 출입문 인근이, 제주올레 안내소 18코스 종점이다.

 

필자 소개 글

법호 相民. 윤봉택은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