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새벽하늘 별보기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만큼 아이들은 성장하고 성숙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아이들 둘이서 다툴 때나 심통이 나서 잔심부름도 외면할 때는 저래서 언제 철드나 싶어도 어느 순간 찬찬히 뜯어보면 이것들이 이제 머잖아 내 품을 벗어날 준비를 하나씩 끝마쳐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지난 주에는 큰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학부모와 함께 하는 체육대회가 열렸다. 이 학교에서는 한 해는 학생들끼리 소체육대회를 열고 또 한 해는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체육대회를 열어온 모양이다. 그런데 마침 우리 아이가 입학하던 작년에는 소체육대회가 열리는 해였기 때문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대규모 체육대회는 큰 아이로서는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셈이었다. 게다가 개교 50주년이 겹치면서 행사 규모도 커지고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행운권 추첨에서 1등을 먹으면 돼지 한 마리가 상품이라며 아이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진짜 재미있는 것은 시골학교답게 출신학교별로 팀을 짠다는 것이었다. 전교생이 표선 관내 6개 마을 초등학교 졸업생들로 이루어졌으니 이는 자연스럽게 마을 대항 체육대회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어 학부모들도 종목마다 팀을 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이들은 체육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 마을회관에 모여 응원 연습을 한다, 소도구를 준비한다, 플랭카드를 만든다, 경기 전략을 짠다, 연습을 한다 하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뭐 그리 준비할 게 많은지 토요일에는 밤이 늦도록 돌아올 줄을 몰랐다. 그날 새벽 3시가 넘어, 식구들이 모두 잠든 다음에야 큰 아이는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이고는 다시 모교에 모여 연습을 한다며 집을 나섰다. 평일에도 학교가 끝난 뒤 마을회관에 모이기를 몇 차례. 마을회관에서 모이니 별다른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자정 무렵쯤이면 데리러 가볼까도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였다. 달도 없는 밤, 아이들끼리 걸어온다고는 하지만 내가 모두 태워오면 어떨까 싶어 남편에게 말을 꺼내니 남편은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고, 그게 다 과잉보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호통을 치고 나섰다. 생각해보니 그도 그런 것 같아 데리러 갈 생각은 접었지만 신경이 쓰여 밤새 외등을 밝혀두고 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새벽이 거의 다 되어서야 돌아온 아이에게 늦은 밤 달도 없는데다 곳곳에 무덤까지 있는 길을 걸어오자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무섭긴. 성수네 누나가 무섭다고 해서 내가 누나 집까지 데려다주고 왔는걸. 엄마, 새벽 3시에 하늘이 얼마나 멋있는지 모르지? 하늘에 송곳하나 들어갈 틈 없이 별이 가득해. 정말이야, 언제 엄마도 한번 봐. 달없는 새벽에, 꼭”겁에 질려 두눈을 질끈 감고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올 줄 알았는데 녀석은 새벽 하늘을 힘껏 치켜보며 별을 세며 돌아온 게다. 모두 잠든 시간, 나 홀로 깨어 일어나 ‘송곳 하나 들어갈 틈없이’ 빼곡한 별들의 향연을 음미하는 그 기분은 얼마나 상큼했을꼬. 이 가을을 보내면서 아들 녀석은 엄마 말고도 자기를 지켜봐주는 또다른 존재를 있음을 알았을테고 나는 나 말고도 아들을 지켜주는 커다란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조선희/「마흔에 밭을 일구다」의 저자.남제주군 표선면 토산리제286호(2001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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