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고구마 캐던 날

“고구마 줄을 위로 쭉 잡아 당기며 밑에 묻혀 있는 고구마를 호미로 다치지 않게 잘 캐도록 합니다” 3학년 이상 모든 어린이가 직접 고구마를 캐는 행사로 봄에 환경반인 녹색별 아이들과 예래환경연구회원들이 고구마 줄기를 심었는데 가을이 되자 고구마 줄기에서 주렁주렁 주먹보다 더 크게 열렸다. 농촌에 사는 아이들이라 고구마 캐는 부모님의 모습을 자주 보고 와서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학교 체험학습으로 고구마를 캐는 일은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니다. 고구마가 갓난아기 엉덩이 만큼 컸다. 하늘이 보고 싶어 얼굴을 삐쭉 내민 부분은 하얀 색깔로 칠해져 있고, 땅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부분은 부끄러운 새색시의 얼굴처럼 발가스럼 하였다. 북극의 빙산처럼 땅위로 십분의 일 밖에 보이지 않지만 흙속에 나머지 부분이 자리하고 있다.잘 생긴 고구마, 모양이 이리삐쭉 저리 삐죽 제멋대로 생긴 고구마, 아기 새끼 손가락만한 작은 고구마 등 고구마의 모습도 다양하다. 조랑말이 쟁기를 끌고, 금방 캐어 흙이 묻어 있는 고구마를 장작모닥불에 던져 시커멓게 구어서 호호 불며 먹기도 하고, 구운 고구마의 검뎅이를 손으로 삭삭 문질러 친구의 얼굴에 얼룩지게 묻히기도 하며 즐겁게 오후의 한나절을 쌀쌀한 가을 바람 속에 보내니 옛날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하다. 60년대라 늦가을이 되면 먹을 것이 귀해서 고구마를 다 캐고 난 남의 밭에 고구마 이삭을 주으러 다녔다. 다 말라가는 고구마 줄기에 아기 주먹만한 고구마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너무도 반가와 달려가 뜯었고, 혹시 땅속에 파다 남긴 고구마가 있을까 하여 호미로 깊게 파기도 하였다. 학교 갔다 와서 오후 내내 이 밭 저 밭을 돌아다녀도 몇 십개를 줍지 못했지만 그것도 감지덕지지. 갖고 와서 씻고 씻어 쪄서 먹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고구마를 가득 실은 트럭이 전분공장을 향해 우리 동네를 지나갈때면 트럭에 실린 고구마 자루위에 올라탄 아저씨를 향해 고구마 하나 던져 달라고 소리치며 고구마 차를 따라가기도 하였다. 재수가 좋은 날은 아저씨들이 던져주는 고구마 몇개를 얻어서 생것으로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간식으로 먹을 것이 적었던 겨울에는 고구마를 얇게 썰어 햇볕에 말렸다가 설탕처럼 단맛이 나는 당원과 물을 넣고 푹 끓여서 먹었는데 그 빼때기의 삶은 맛은 기가 찰 정도다. 그러나 그 맛은 다 어디 갔을까. 고구마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데 아이들은 모양이 좋은 것 몇개씩만 비닐봉지에 넣고 돈 몇 푼 주고 사오면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머지는 줍지를 않았다. 고구마는 탄수화물이 많고 구황식물로 우리 식단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식품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쌀이 흔하고 빵이 대중화되면서 고구마로 한 끼를 때웠던 시절은 가버렸다. 밭에 일하러 가시면서 고구마 몇 개를 삶아 밥상 위에 놓고 가면 학교 갔다 온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채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냉장고 문을 열면 각종 음료수, 과일이 가득한 것을 보고도 먹을 것이 별로 없다고 투덜된다. 식어서 차가워진 몇 개의 고구마를 먹으며 자식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했는데 넘치는 음식에도 고마워 할 줄 모르는 게 요즘 아이들이 아닌가. 빼때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양선생님은 고구마를 썰어서 학교 화단의 풀밭에 말렸다가 겨울에 쪄서 주겠다며 두 다리를 뻗고 아이들에게 써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어느 날 달콤한 빼때기의 국물을 먹는 아이들은 오늘의 고구마 캐기 체험학습을 생각하고 20여년이 지난 때 그 국물맛과 고구마 캐던 일을 기억하겠지. 추억은 아름다울 것이다. 직접 심고 가꾸고 캐내는 오늘의 체험학습을 통해 자연의 진솔함, 농산물의 수확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을 것이다. 꺼먼 재를 털어내며 한껍질 한껍질 벗겨 먹는 고구마의 달콤하고 푸듯한 맛과 같은 사랑을 베푸는 어린이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나를 먹으면 듬직하듯 남에게 베푸는 사랑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 서로 하나되어 고구마 캐듯 더불어 사는 어린이가 되길 바란다. 박재춘/예래초등교 교사제288호(2001년 11월 16일)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