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빨리 빨리’ 서둘지 말고

우리나라를 일컬어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 또는 ‘은자(隱者)의 나라’ 즉,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불러왔다.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칭하던 한국은 1960년대 이후 놀랍게 변신하였다. 남들은 수 백년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를 불과 30년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이 과정에서 ‘은근과 끈기’는 ‘빨리 빨리’로 무엇이든 속성주의로 변한 것이 아닌가 싶다. ‘빨리 빨리’는 아마도 세계인들이 가장 잘 아는 한국어 중 하나일 것이다.‘빨리 빨리’는 느린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좋기는 하지만 반면 이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초고속 실적 달성만을 안중에 두고 국민소득 1만불 목표를 급히 서둘렀다.그러나 속성은 속패라 성장의 베일이 벗어지기 시작하자 쓰라린 경제 대란을 초래한 것이다. 그뿐인가, 이러한 ‘빨리 빨리’의 기질은 곳곳에 도사리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의 참변, 가스 폭발 등 급히 서두른 결과가 가져온 상처이다.작금에도 조령모개식의 교육정책으로 교육이 붕괴되다시피 되고, 게다가 2001년에는 수능시험마저 난이도를 조절하지 못하여 수험생들의 울음바다를 연출케 한 것도 알고 보면 졸속 교육 혁신이 빚어낸 교육 정책 부재의 소산이다.또한 매일같이 교통 사고로 죽어가는 생명은 얼마인가? 이것도 ‘빨리 빨리’에서 오는 조급증으로 구제불능의 이기심 때문이다. 함부로 서두름은 일에 일을 더하게 한다는 일화 하나를 소개코자 한다.어느날 아침 빠른 속도로 마차를 몰아서 달려온 나그네가 마차를 멈춘 다음 길가는 사람에게 00도시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물었다.그는 “천천히 가면 4~5시간, 급하게 달리면 하루”라는 기묘한 대답을 해주었다. 나그네는 발끈 화를 내며 그 곳에 올 때까지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마차를 몰아 댔다. 그런데 그만 도중에서 수레바퀴의 굴대가 부러져 버리고 말았다. 나그네는 부러진 굴대를 수리해서 바퀴 끼우는 데 시간이 걸려 한 밤중이 다될 무렵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또 이런 속담이 있다. “똥 마려운 계집 국거리 썰 듯”한다는 말이 있다. 제 일이 급하면 다른 일은 아무렇게나 해치우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항상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뇌까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은 본연의 일 때문에 바쁜 것이 아니라 극히 지엽적인 것들에 쫓기는 수가 많다. 일을 줄이려하지 않고 욕심을 내여 마구 일을 벌리는 탓에 거두지 못하여 바쁘다.일이란 꼭 해야 될 일과 하지 않아도 좋은 일이 있다. 해야 될 일을 미루거나 게으름으로 일관하다보면 그 사람의 삶은 조금도 여유가 없어 짜증스럽기만 한다. 그처럼 하지 않아도 좋은 일에 나서서 분주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것 역시 스스로 삶을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다.‘바쁘다’고 하는 한자의 <바쁠 망(忙)>자를 풀어보면, 심방 변(心)에 없을 망(亡)자를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음(心)이 없어진(亡)>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지나치게 바빠서 다망(多忙)한 나머지 양심이 없어지는 양심부재(良心不在)가 되고 마침내 중심을 잃어서 주체성 없는 인간 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제발 ‘빨리 빨리’ 서둘지 말자. 급히 서둘러 불행을 맛본 쓰라린 경험도 ‘빨리 빨리’ 서둘러 잊을 것인가. 이것 또한 우리네 큰 병이다.보라! 자연은 추호도 서두르는 일이 없지 않은가. 순리대로 생성하고 운행한다. 해와 달은 밤낮으로 달리되 밝음에 변함이 없고, 봄은 언제나 제때에 찾아와 산야에 꽃을 피우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하고 자연을 믿고 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동양의 철학은 자연의 섭리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다.「정중동(靜中動)」은 동양 진리이다. 정(靜)은 숨은 내면의 정신을 말함이며, 동(動)은 밖으로 나타난 행위를 말함이다. 맑은 정신 속에 바른 행위가 나타나는 법이니 맹목적으로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 다시 말하면 한가(靜)한 때에 다급(動)한 일에 대비할 마음을 지녀야 하고 바쁜(動) 처지에서는 느긋(靜)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이제는 물질에 쫓기는 ‘빨리 빨리’ 보다 ‘느림의 여유’를 갖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좀더 느긋한 마음 자세가 긴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오남련/논설위원·전 서귀포교육장제295호(2002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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