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제주국제자유도시 보완이 필

시장 선점이 사활적으로 중요한 시대, 즉 큰 것이 작은 것을 이기는 시대가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는 시대이다. 자연적 비교우위에는 약하지만 화훼산업 영역에서 세계를 석권하는 네덜란드의 예처럼 다소 기술력이 떨어지더라도 초기에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경우 시장을 선점할 수 있고 지식기반 투입과 수확체증 법칙에 따라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개방경제 거점을 향한 동북아 도시들의 경쟁이 뜨거운 현실이다. 세계적 국제자유도시로 정착한 홍콩, 천지개벽으로 불릴 만큼 급부상하고 있는 상하이의 푸동, 새로운 경제중심을 꿈꾸고 있는 인천의 영종도, 국제금융거점으로 2단계 도약을 준비하는 도쿄 등.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로서 과연 이들 도시들과 경쟁하여 시장 선점이 가능한가. 안타깝지만 그 대답은 ‘불가능’에 가깝다. 21세기 지역개발이 세계시장으로의 진출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고, 따라서 국내적 환경에 한정되는 것을 벗어나 세계적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국제물류·국제금융·가공수출 등 전형적인 국제자유도시로서 제주개발의 타당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사정이 이러하다면 지금 추진되고 있는 제주국제자유도시 정책은 틈새시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선점하는 방향으로 수정·보완되어야 한다. 이제는 부푼 꿈을 접고 차가운 머리로 냉철히 판단하고 통찰해야 할 때이다. 지나친 선전과 과잉기대는 제주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문자 그대로 제주형이어야 한다. 그것은 동북아의 주요 국제도시들과 보완적인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가능하다. 제주를 홍콩, 상하이(푸동), 서울, 동경, 타이페이 등 동북아 주요 국제도시의 배후 휴양거점으로 개발해 내는 것이다. 그래야 제주국제자유도시의 밑그림이 확실해지고 보다 분명한 개발전략들이 도출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자유지역인지, 관광휴양지역인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두루뭉실한 계획이 되어버리고 결국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관광·휴양은 기본적으로 전도(顚倒)현상을 본질적 속성으로 하는 활동이다.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운 곳으로 가고 싶어하고 도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시골로 나가고 싶어한다. 제주가 동북아 주요 국제도시와 보완적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보다 자연과 휴식에 충실한 휴양지로 가꾸어야 할뿐만 아니라, 쉬면서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금융과 정보화, 언어 서비스, 컨벤션 기능 등 비즈니스 역량 또한 완벽히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국제 관광·비즈니스 지역이 틈새시장 선점을 위해 제주가 추구해야할 자유도시의 모습이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은 개방으로의 원심력뿐만 아니라 지역으로의 구심력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해내야 한다. 그래야만 제주의 특화개발과 지역민의 발전을 통하여 국가발전을 기하는 승승(勝勝)의 국가정책적 지역개발전략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그것은 지역의 모든 자원을 바탕으로 지식기반경제를 수용하는 혁신적 개념과 전략에 기초해야 하며, 그것은 국가·시민·시장이라는 거시담론과 함께 주민·지역·문화라는 미시담론이 상호 의사소통되고 호환될 수 있는 개념과 전략에 토대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1차산업 종사자 등 소외계층의 배제를 제거하고 승자연합(winner's circle)의 포용의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무조건 규제를 완화하고 동일한 인센티브를 퍼주어 되는대로 외자를 유치하는 그런 국제도시가 아니라, 경제적 규제는 완화하지만 환경적·사회문화적 규제는 오히려 강화하고 제주의 발전방향에 맞는 투자자본에 대해서는 더 좋은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기획유치하는 그런 국제도시이어야 한다. 외자유치와 경제규모 확대에만 집착한 나머지 지역민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국제자유도시 추진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은 민물고기가 바다로 나갈 수 없듯이, 제주의 현실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제주적인 선택과 변혁의 의지없이 세계화와 개방화라는 세계경제 담론의 바다로만 가려고 하는 것이 정부의 의지이고 현실적 기반이어서는 곤란하다.‘지역의 자원을 이용하고 지역공동체의 지도와 통제를 받으며 자연의 환경용량 내에서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반영하는 생산방식’이 세계시장을 향한 제주개발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은 지역의 문화와 환경의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관광의 총체적 발전을 기하고 여기에 정보·금융·업무서비스 등 연관 경제기능이 부가됨으로써 휴양과 업무가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이른바 제주형의 제주다운 국제도시이어야 한다.송재호/논설위원·제주대학교 교수제297호(2002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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