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신화의 시대

‘신은 죽었다’는 니이체의 말이 근대의 시작을 알렸다. 인류가 오랜 동안 향유하였던 신화적 삶이 논리와 이성의 과학적 사고로 대체되어 퇴색해 버렸다. 그때부터 신화는 믿을 수 없는 ‘기만의 세계’로 치부된 반면 과학은 객관적인 진리를 습득해 가는 과정으로 여겨졌다. 다만 신화적 삶의 그림자가 예술과 종교의 한정된 영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그러나 시가 읊어질 수 있고, 종교적 신앙이 무용한 것이 아니라는 경험이 남아 있는 한, 아니 그보다 삶이 까닭없이 헛헛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공백이 여전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인 한, 신화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담고 있는 신화는 과학의 발전에 걸림돌이 아닌 밑거름이 돼 왔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사고가 ‘정복’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신화적 사고는 ‘이해’에 토대한 것이다. 과학은 자연을 정복할 수 있게 해 줬지만, 신화는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 것이다. 근대성이 해체되고 탈근대의 질서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곳곳에서 논리·이성·규범의 근대모델들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삶과 역사가 순환하듯이 새로운 ‘신화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새로운 신화의 시대는 문화의 다양성과 다차원적 동시공존을 존중한다. 동형화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차별화의 공간을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 지역의 정체성이 있는 그대로 인정된다. 인간의 상호작용, 상호연관 및 상호인식을 하나의 단일공간 위에 펼쳐놓으면서 참여자 모두에게 다원적 이익을 제공하고 참여하지 않는 자보다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한다.신화적 삶은 생산과 소비의 분리를 거부하고 공동체적 향유를 강조한다. 대중적 TV 처럼 만들어 내는 소수와 소비하는 다수의 원리는 도태된다. 오히려 인터넷 방송처럼 공동의 생산과 소비를 통한 창조와 소속의 즐거움을 중시한다.신화적 삶은 공동체가 자신들의 신화를 이야기하고 신화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인간적 유대를 끈끈히 하고 사람과 함께 하는 모임의 즐거움을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화적 삶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논리보다는 파격을, 규범보다는 자유를 선택한다. 신화적 삶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향유’되는 것이다.신화적 삶은 인간사회의 유대와 향유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졌던 시대를 이야기해 준다. 자연의 천둥소리를 두려워하고 엄동의 겨울을 거쳐 봄을 보면서 기적을 노래했던 시대를 말해 준다. 지금 다시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에도 신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자연을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인간의 발전을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을 주목한다. 생태도시 생태주거 등 우리의 사회시스템이 자연친화적으로 재조직화되고 있는 오늘의 추세가 이를 반증한다.우리 제주의 도시개발에, 관광개발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신화적 사고와 상상력이다. 우리 제주의 진정한 화합과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신화적 삶이다. 4·3 문제의 해결에서부터 제주바다와 한라산의 보호를 거쳐 아주 작은 축제의 개최에 이르기까지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에 요구되는 것은 이성과 과학이라기 보다는 신화적 힘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복과 논리’가 아니라 ‘관용과 이해’이다. 신화는 ‘역사가 쓴 시’이다. 신화는 박제화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살아 움직이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신화적 사고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새 누리를 비상하게 한다. ‘따뜻함’을 모토로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면서 무한한 아이디어를 현실적 발전에 접목해 준다. 무엇보다 신화적 사유와 삶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인간다움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제주가 가야하는 방향성과 개발의 비전을 제시해 준다.‘자연이 아름답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더 따뜻한 제주’, ‘지역민의 정체성과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하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중시하면서 지역사회와 사람들을 한데 아우르는 하나의 공동체’말이다.송재호/객원논설위원·제주대 교수 제232호(2000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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