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千日生話(천일생화)

얼마 전 나와는 평소 안면만 있을 뿐 개인적인 대화는 나눠본 적이 없는 어떤 분의 초대로 몇 사람이 어울려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와 내 가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그렇듯 그 분도 제주로 시집을 왔느냐, 적응에 어려움은 없느냐 꼬치꼬치 물어왔다. 지역의 터주대감이다시피 한 그분으로서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우려였다. 제주에 온지 만 3년이 다돼가는 터라 별 어려움은 없다고 답하자 그 분은 대뜸 내게 ‘천일야화’를 들려달라셨다. ‘천일야화’라는 표현이 다소 생뚱맞긴 했지만 그간 우리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자는 말인 줄 모를리 없는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천일 동안 살아온 이야기(生話)라면 얼마든지 들려드릴수 있겠지만 굳이 밤에 들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며 입도(入島) 천 날 째 되는날 축하연을 열자고 제안했다.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그 옛날 아기가 태어나 무사히 백 날 째를 맞게 된 것을 축하하며 백일잔치를 열었던 것처럼 험난한 타향살이를 천일동안 잘 버텨온 우리를 축하하는 천일잔치를 열자는 것이었다.한번도 생각해 본 적도, 계산조차 해 본 적도 없는 ‘천 날’이었다. 입으로는 늘 1년 째, 2년 째, 3년 째 하면서도 단 한번도 그것을 날수로 환산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정말 이상한 것이어서 4년째 살고 있다고 하면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천 몇일 살았다고 생각하니 터무니없이 짧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언젠가 내 나이 스물 몇 살이었을 때, 갑자기 세상이 거대한 괴물로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뭔가 가슴 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 가라앉은 듯 답답하고 팍팍하게만 느껴져서 내 앞에 놓인 그 많은 세월을 언제 다 지워나갈 수나 있으려나 싶은 때였다. 친구 누군가가 장난처럼 전화 다이얼을 돌리더니 내 귀에 들려주는데 놀랍게도 그때까지 내가 살아온 날이 8천일 조금 넘는다는 거였다. 지금도 그런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태어난 지 며칠 째 된다는 답변을 들려주는 자동응답전화 서비스였다. 세상을 너무 많이 살아버린 듯한 고약한 착각에 빠져있던 내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고작 8천 몇 일을 살고 이렇게 주저앉아 있다니 하는 자각이 나를 추스르게 해주었음은 물론이다.이곳에서 천 일을 사는 동안 남편은 4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으로 달음박질하고 있고 나 또한 30대에서 40대로 세월의 강을 훌쩍 뛰어넘었다. 볼에 오동통한 젖살이 가시지 않았던 큰 아이는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고 그저 책가방 들고 왔다갔다 하는 재미에 학교엘 다니던 작은 아이도 내년이면 중학교 교복을 입는다. 변하고 나이를 먹는 것은 사람 만이 아니어서 이사오면서 도배했던 벽지도 이제는 누리끼리 세월의 무게를 덧칠해가고 있는 중이고 이사오던 첫 해 내가 뚝딱뚝딱 만들었던 마당의 평상도 못질한 부위마다 헐거워지면서 삐그덕거리고 있는 중이다.아, 흐르는 것이 세월 뿐이랴, 그렇게 우리들의 인생도 한데 어울려 흘러가는 것을. 이 다음에 다시 천 일이 흐른뒤, 나는 또 어떤 ‘千日生話’를 내 비망록에 새기게 될 것인가.조선희/「마흔에 밭을 일구다」의 저자, 남제주군 표선면 토산리제307호(2002년 4월 4일)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