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원초적 욕망에 마술걸기

인간 세상에서 살고픈 하늘나라 천사가 있었더란다. 하도 조르기에 이윽고 옥황상제가 그 천사를 젊은 여인의 첫 아기로 태어나게 해주었단다. 그 천사는 젊은 여인의 귀하고 예쁜 첫아기로 태어나게 된 것을 너무도 기뻐했다. 첫아기를 얻은 젊은 엄마도 기쁨에 넘쳐 정말 훌륭한 인물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기가 어려서부터 이것저것 안 가르치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놀 시간도 없고 버릇 들인다며 어찌나 매를 때리는지 아기가 된 천사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천사는 참다못해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말았다. 옥황상제가 물었다. 그래 어떻더냐? 계속 살고 싶은 생각이 들더냐? 그랬더니 천사가 대답하더란다. ‘인간 세상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젊은 여자의 첫아기로는 태어날게 못되더이다’.자식에게 욕심 갖는 것이야 어찌 젊은 엄마만의 일이며 첫아기에게만 해당될 것인가. 농사짓는 일을 자식 키우는 일에 곧잘 비유하는 나야말로 아무런 경험없이 욕심으로만 아기를 기르는 젊은 엄마처럼 욕심덩어리이다. 이것 저것 가꿔보고 싶은 것도 많고, 이왕이면 많은 수확을 거두고 싶고, 한술 더 떠 아무 걱정없이 제값에 팔았으면 하는 많은 욕심이 늘 내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들은 어쩌면 농부들이 당연히 가질수 있는 긍정적인 욕심일 터.문제는 이같은 긍정적인 욕심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할 수 있을까 잔머리를 굴리게 하는 원초적 욕망인 것 같다. 얼마전 참깨를 벨때의 일이다.늦봄에 가까이 지내는 농민회원의 노는 땅에 두집이 먹을 참깨를 심었는데 추석전에 두차례 솎아베기를 했었다. 이파리에 단풍이 들었거나 아랫쪽에 한두개씩 벌어진 것만 솎아베는 일이었다. 제초제나 농약을 전혀 쓰지 않아 그 무더운 여름 몇차례 온몸에 땀을 뒤집어 쓰며 김을 맸던 밭이었다. 앉은뱅이 걸음으로 다니면서 김을 매노라니 정신까지 몽롱해져 잡초 대신 참깨를 뽑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두뼘 정도로 자란 참깨를 엉덩이로 짓뭉갤까봐 어설픈 앉은뱅이 걸음을 하자니 무르팍이 어찌나 아픈지 서서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솎아베기 정도야 어려울게 없겠다 싶었다. 거기다 산들바람까지 불어오니 이까짓 정도야 누워서 떡 먹을 일이라고 즐겁게 낫을 들었다. 한 40분 지났을까. 이번에는 자꾸 허리가 아파오는 것이었다. 앉아서 하는 일도 아니고 반듯이 서서 하는 일도 아니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여 한두개씩 솎아베기가 만만치 만은 않았던 것이다. 허리에서 엉치에 이르는 부위가 어찌나 뻐근하고 묵직한지 이제는 앉아서 하는 일이라면 아무 불평없이 마냥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더니 영락 없이 그 꼴이다. 현재 하는 일이 아닌 다른 것, 현재 당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것만을 끊임 없이 갈구하는 내 안의 원초적 욕망은 늘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묘안은 내 안의 욕망에 마술 걸기. “그래 맞아,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야. 야, 그런데 너 잘 해내고 있구나. 앞으로 다른 어려운 일도 충분히 해내겠는데. 너 지난번 고구마 심을때 죽을 만큼 힘들어했지만 결국 해냈잖아. 검질매기는 어떻고? 번번이 두번 다시는 못하겠다더니 때만 되면 잘 하더라. 너 엄살이지? 할 수 있는데 괜히 힘들다고 엄살 피우는 거 맞지?”조선희/남군 표선면 토산리 제232호(2000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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