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울타리 안에 봄을 심다

지난 해 거둔 강낭콩 씨앗을 물에 불렸다가 창가마다 심는다. 알기 쉽게 말해서 강낭콩이지 실은 작두콩이 원래 이름이다. <재크와 콩나무>라는 동화에 나오는, 재크가 하늘나라로 타고 올라갔다는 그 콩이다. 꼬투리도, 콩알도, 잎사귀도 다른 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데다 줄기 또한 굵은 철사처럼 딱딱하고 질기다. 창틀 맨 위쪽까지 타고 올라 갈 줄만 잘 매주면 여름 내내 창에 발을 걸 필요도 커튼을 칠 필요도 없다. 넓적한 이파리 대여섯 장이면 우리 돌집의 자그마한 창문 하나는 금방 가려진다. 콩알을 심으려고 보니 재작년 그리고 작년에 뻗어나갔던 줄기가 말라비틀어진 채 그대로 있다. 문득 어릴 절 읽었던 강낭콩 형제 이야기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책상 서랍 속의 강낭콩 꼬투리 안에서 오순도순 지내던 강낭콩 형제들이 어떻게 흩어지게 되었더라? 삼십 몇 년도 더 된 세월 저편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생각날 리 만무하다. 어쨌거나 다른 형제들처럼 멀리 떠나지 못해 슬퍼하던 강낭콩 한 알이 창틀에서 싹을 틔우고 그 창 곁에는 하루 종일 누워지내야 하는 아픈 소년의 침대가 있었다는 얘기다. 병든 소년에게 유일한 말벗 구실을 해주었던 그 강낭콩은 바로 봄, 희망이었으리라. 나도 창가마다 희망을 심는다.씨앗을 심는 일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보잘것없이 생긴 그 작은 한 톨의 씨앗에 담겨진 비밀은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말이다. 원래 예정된 그 색깔과 그 모양과 그 크기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에서 씨앗의 비밀은 끝나지 않는다. 한 톨의 씨앗은 무수한 생명으로의 회귀를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다. 심는 김에 이웃집 울타리를 몇 번이고 서성이며 받아두었던 이름 모를 꽃씨도 심는다. 생기기는 코스모스처럼 여리게 생겼는데 담장을 기어오르는 속성으로 치자면 담쟁이 넝쿨을 닮은 꽃이다. 하지만 담쟁이 넝쿨처럼 줄기가 저마다 씩씩하게 쭉쭉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실타래가 엉킨 듯 서로를 껴안고 힘을 보태어 힘겹게 담벼락을 기어오른다. 눈 부시게 빨간 꽃이 피는데 꽃이파리가 하도 작아 멀리서 보면 연초록 줄기 사이에 빨간 점이 찍힌 모습이다. 이 꽃이 담쟁이 넝쿨처럼 씩씩했거나 장미처럼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면 난 결코 꽃씨를 받기 위해 그 집 앞을 서성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도 나이가 들어가는 징조일까. 이제는 홀로 아름다운 꽃보다는 서로 얼크러져 있을 때 아름다운 꽃에 더 정이 간다. 더구나 이제는 꽃이름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언제 무슨 색깔로, 어떤 모습으로 피었던가만 뇌리에 살아있으면 그 뿐 굳이 이름이나 꽃말이 궁금할 까닭이 없다. 지루한 장마가 지나고 나면 우리 집 울타리에는 온통 그 이름모를 꽃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을 게 분명하다. 꽃잔치 뿐이겠는가. 게으른 내가 미처 건사하지 못한 씨앗들은 그 자리에 떨어져 겨울을 지새우고 다시 봄을 준비할 것이다.혹 누군가가 우리 집 울타리를 서성이다가 서로 보듬고 돌담을 힘겹게 오르는 그 꽃에 반한다면, 그래서 한 순간이나마 벅찬 가슴이 되어 언젠가의 나처럼 몇 톨의 씨앗을 정성스럽게 챙겨간다면…. 조선희/「마흔에 밭을 일구다」의 저자, 남제주군 표선면 토산리제309호(2002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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