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북녘 땅을 보고 와서…<

차량없는 왕복 10차선 도로 <지난호에서 계속됨>▶5월 15일 수요일(6일째)출발 전 호텔 앞 버스 옆에 서 있는데 책을 보면서 걸어가는 여학생이 있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평양 의학대학 4학년이라 했다. 그가 읽던 책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자랑스럽게 보여 주는데 위생학 교재였는데 놀랍게도 마분지였다.순간 남쪽에서는 너무나 많은 종이를 소비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평양을 출발하여 남포로 가는 길은 왕복 10차선으로 청년 영웅도로라고 남포서해갑문과 함께 인민군을 동원하여 건설했다고 한다.약 45km 달리는데 차량은 수를 셀 정도이다. 차량이 없는 이 넓은 도로를 무엇 때문에 건설했을까? 이는 전쟁이 나면 전투기의 이·착륙용이요, 지하철은 폭격에 대비한 방공호, 서해 갑문은 상륙 작전을 저지할 방어선이라 생각된다.남포시내에서 갑문까지는 15km. 도중 우리는 아스팔트 도로 포장공사를 보고 그 공법과 장비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갑문 입구에 도착하니 버스에 안내양이 동승. ‘피도’라는 섬의 전망대까지 가면서 설명을 했다. 길이가 8km, 옆으로는 철도가 통하여 남쪽의 황해남도 은율군과 연결하고 ‘피도’는 해발 70m라 갑문1호는 2000톤 선박이 통과하고 갑문2호는 5만톤 선박이 통과할 수 있다는 설명인데 이 안내원은 남포사범대학 혁명역사과를 졸업하고 이곳에 근무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노래를 시키니까 재창까지 썩 잘 불렀고, 통일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하길래 통일이 되면 우리 며느리 하겠다는 말을 하며 나와 기념 사진도 촬영했다.돌아오는 길에 갈림길, 갈림길 다리가 있어서 내력을 물으니 해방 후 귀국 한 김일성이 고향 부모에게 먼저 가지 않고 인민을 걱정해서 평양으로 입성하고 다른 사람을 만경대로 보냈기 때문에 갈림길이 됐다고 선전에 열을 올렸다.가지고 간 선물들은 호텔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그리고 버스 운전원, 안내원에게 모두 주고 통일의 그 날을 기다리며, 또 만나자고 하며 아쉬운 이별을 하며, 검색은 그곳에서 들어갈 때에 비해서 더욱 철저히 항공기 트랩에 오를 때까지 4번의 절차를 거쳐 대한 항공 KE 816편 53A석 창 측에 앉은 나는 잘 보이는 북한 산야를 아쉬워하면서 통일의 그 날을 목놓아 기대하며 귀향 길에 올랐다. <끝>이문웅/수필가제320호(2002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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