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쉼팡]방앗간에서

난생 처음 농사지은 참깨 한말 남짓을 들고 방앗간에 들렀다. 처음엔 조금 남겨두었다가 볶은깨로도 쓸 요량이었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어 모조리 기름을 짜기로 했다. 연로하신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참기름은 함부로 먹기가 죄스러워 따르는 손이 떨리지만 이거야 내가 농사지은 것이니 한 해 마음놓고 맛나게 먹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게다가 화학비료는 물론 농약 한번 안 뿌리고 미생물 발효 비료를 주고 키운 것이니 그야말로 ‘마지막 한방울까지’기름을 짜서 먹어야 제격일 것 같았다. 사람이 붐비는 젊은 아낙의 방앗간을 뒤로 하고 노부부가 오손도손 떡을 만들고 고춧가루를 빻고 기름을 짜는 방앗간에 들어서니 기다릴 필요도 없이 내순서였다.아, 얼마만에 와본 방앗간인가. 적어도 30년 세월 저편의 일이 아닌가 싶다. 명절을 하루나 이틀 앞둔 날 새벽 미리 담가 불려놓은 쌀을 함지박에 담아 머리에 인 어머니는 곤히 잠들어 있는 우리가 깰세라 살금살금 방앗간으로 행했었다. 아침 밥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찾아 눈을 비비며 잰걸음으로 달려가보면 어머니는 기계음으로 씨끄럽기만 한 방앗간에서 아직까지 차례를 기다리고 계셨다. 삐그덕 삐그덕 덜컹덜컹 돌아가는 기계가 신기해 구경을 하다보면 어머니 찾아나선 나마저 함흥차사가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차례가 되어 떡을 만들때도 그냥 맥놓고 앉아서 구경만 하는게 아니라 더 곱게 빻아달라, 설익지 않게 쪄달라 주문이 많기만 했던 어머니. 그뿐인가. 고추가루 빻을 때는 가루가 다 빠져나온 기계속을 몽당빗자루로 한번 더 쓸어내리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참기름을 짤때는 깻묵까지 다 얻어오셔야 직성이 풀리셨던 어머니. “내 물건 맡겼을 때는 끝까지 지켜앉아 확인해야 한다”고 늘상 말씀하셨던 어머니는 참깨 보따리나 고추보따리를 방앗간에 턱하니 맡겨놓고 볼 일 보러 가는 젊은 여자들을 못 미더워했다.그 어머니에 그 딸이어서였을까. 나도 은행에 들릴 일이 있었건만 그냥 죽치고 앉아 참기름이 짜지도록 기다렸다. 그 사이 손님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내 어머니보다 몇 살 위일 것만 같은 할머니는 동백기름을 짜러오셨다. 아침부터 점심무렵까지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동백은 두말 남짓. 앉아서 기다리기도 힘이 드시는지 방앗간 한켠에 놓인 평상에 벌러덩 눕고 마는 할머니는 겨울철이면 잔기침이 도져서 늘 동백기름을 짜놓고 드신단다. 조금 있으려니 그 할머니가 주워오신 것보다 두배는 많을 성 싶은 동백이 고무대야에 쏟아졌다. 이번엔 중년의 아주머니다, 두분은 서로 아는 사이인지 동백기름의 효험과 복용방법에 대해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뒤늦게 온 초로의 아주머니는 텃밭에 심어 말린 고추를 빻으러 온 모양이다. 얼핏 보니 우리가 농사지은 청량고추와는 종류가 다른지 길쭉하게 생겼다. 쌀자루로 하나 넘치게 들고온 고추를 빻고 나니 생각보다 양이 적은지 아주머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모습이 꼭 내 어머니를 닮았다. 주인 할머니가 한마디 거드신다. “그래도 이녁이 농사지은 것인데 이만허면 많수다”초벌로 짠 기름을 한번 끓여 밭친 뒤 기름을 식혀 담는 절차를 알리 없는 내가 어리둥절해 하는 꼴이 우스웠는지 주인 할머니가 일일이 병에 담아주신다.양동이를 기울여 마지막 한방울까지 따라주는 그 모습도 내 어머니를 닮았다. “며칠뒤에 고추 빻으러 올께요” 로 인사를 대신하고 방앗간을 나섰다. 이제는 방앗간도 문턱이 닿도록 드나들어야 하리라. 이제 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쥐고 따라나선 코흘리게 꼬마가 아니라 한 철 농사지어 온 가족 먹을거리를 단도리해야 하는 시골 아낙이 아니던가.조선희/남군 표선면 토산리 제234호(2000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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