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의 예술가의 집] 서양화가 현민자

▲ 서양화가 현민자씨의 옥탑작업실.
# 삭막한 옥탑 작업실에서 퍼져나는 예술의 향기

애초에 잘못된 정보였다. 화가의 작업실이 북촌에서 단박 눈에 띄는 하얀 집이라기에 맞춤한 예술가의 집이겠다 싶어 방문을 약속했는데 화가가 알려준 길이 달랐다.

함덕 바닷가 근처 건물 3층으로 오라는 것이다.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일단 만나보고 북촌으로 자리를 옮길 요량이었다.

화가가 일러준 건물의 계단을 오르는데 정말 이건 아니겠지 싶었다. 분명 3층이라 했건만 3층엔 버젓한 건물 대신 조립식으로 지어진 옥탑건물이 하나 달랑 서 있었기 때문.

따사로운 봄볕에 눈을 찌를 듯 작열하는 방수 페인트의 진초록색이라니... 활짝 열린 문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작업실 풍경...옳게 찾아오기는 했으나 원하던 작업실 풍경과는 거리가 있는지라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 현민자 화가의 작업실 내부.
그런 다음 이내 찾아드는 깨달음...예술가가 작업하는 공간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이 세상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고 가장 아름다운 작업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 모든 예술가가 어찌 나무가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에서만 붓을 들 수 있을 것인가. 낯익은 거리 한복판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오가는 길목에서도 어김없이 타오르는 것이 예술혼인 것을.

서양화가 현민자 화백의 옥탑 작업실은 창고 건물 흡사한 외양만큼이나 실내 분위기도 독특하다.

# 실크에 드러난 수묵의 농담 ... 생명은 꽃으로 피어나고

바닥에 좍 펼쳐진 다양한 옷감들, 실내에 흐르는 정적인 클래식 음악, 여기저기 널려있는 생화와 말린 꽃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서가(書架), 쇼 케이스를 채우고도 넘치는 여러 다기들...화가의 방이기보다는 패션디자이너 혹은 플로리스트 혹은 철학자 혹은 도예가 혹은 다인(茶人)의 방에 들어선 느낌이다. 아니 세상을 향해 열린 호기심과 관심과 애정을 한데 지닌 화가의 방이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었다.

▲ 현민자 화가
"제가 워낙 꽃을 좋아해서요. 작업실이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 있다보니 더욱 꽃이 그립고 좋아지네요. 그래서 틈만 나면 밭에 나가 나무도 심고 꽃도 가꿉니다. 음악을 듣다보면 작업에 영감을 얻게 되기도 하구요. 원래는 선흘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그 지역이 워낙 습하고 비가 많아 실크에 그린 작품의 보관이 어려워 그곳을 떠나야 했어요."

작업실 바닥에 널린 다양한 옷감들은 말하자면 현화백의 다양한 미술적 소재 실험의 도구인 셈이다. 초기서부터 캔버스천보다는 제주의 갈염천이나 모시, 마(麻)에 작업을 시도해오다가 '꽂힌' 것이 실크.

다른 소재와 달리 실크는 염료와 빠르고 깊게 감응하는 까닭이다. 부드럽고 섬세한 직조에 염료가 스며들고 번지면서 드러내는 신비감이 우주의 생명을 꽃이라는 상징성으로 표현하는 현화백의 작품세계에 맞춤이었던 것이다. 꽃이 지닌 여성성, 그 부드러움과 섬세함과 온화함과 신비로움을 실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대로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오일 페인팅을 하면 그 순간 바로 물감이 고착되기 시작하지만 실크는 붓과의 접촉 상태에 따라 물감이 스며드는 속도가 달라 우연성이라고 할까요, 때론 당황할 만큼 예측을 할 수 없는 요소들이 더해져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표현해주지요."

작업실에 놓인 그림들엔 모두 꽃이 피어있다. 나비 같기도 하고 별 같기도 하고 들꽃 같기도 한 꽃들이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어떤 것은 어두운 밤하늘을 흐르는 은하수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봄바람에 밀려오는 꽃내음을 형상화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춤추는 발레리나 같기도 하다.

공통적인 것은 바탕을 이루고 있는 깊고 그윽한 어두운 색체와 그 위에 도드라져 빛나는 꽃잎들이다. 일단 조팝꽃이나 안개꽃이나 도라지꽃을 연상시키는 꽃잎들이 눈에 먼저 띄니 익숙한 반가움에 그림이 한층 가깝게 느껴지다가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임을 깨닫게 된다.

문외한의 눈에 비로소 그림 한 폭에 공존하는 동양과 서양의 내면 세계 혹은 우연과 필연의 조화가 어렴풋이 읽혀진다. 그의 그림이 외국인에게 더 인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서양 물감은 밖으로 튀지만 동양 물감은 안으로 스며들지요. 실크에 동양 물감을 채색하면 깊게 스며들면서 자연스러운 농담을 빚어냅니다. 그 바탕 위에 서양 물감으로 그린 꽃들은 저 스스로 도드라지게 표현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오랫동안 철학 동아리 터줏대감을 지키고 있는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그림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 현민자 화가가 사용하는 붓과 물감, 그리고 작품들.
# "내안의 것들 쏟아내고파 ... 1만호 展 구상 중"

지난해까지 열 번의 개인전을 열 때마다 주제는 생명의 시초와 관계들을 표현한 '미궁(迷宮)', '감응(感應)' 등이었다. '실존-감응'을 주제로 한 그의 일곱 번째 개인전을 두고 미술평론가 김현돈 제주대 철학과 교수는 이렇게 평론했다.

<...필치는 밀레의 저문 들녘처럼 고요하면서도 잭슨 폴락의 페인팅처럼 활달하다. 평온한 화포의 들판 위에 굵은 붓끝으로 물감과 먹을 찍어 바르고, 뿌리고, 흘리고, 세필로 선을 긋고, 한 점 한 점 꽃잎을 새겨나가면서 독특한 자기만의 소우주를 조형한다. 그것은 광막한 바다였다가 고적한 하늘이었다가 고목의 가지를 흔드는 서늘한 바람이 되어 빈 가슴을 두드린다. 그것은 서양 음악의 비브라토라기보다는 가야금 산조의 농현(弄絃)한 떨림에 가까운 소리다...>

지금 현 화백은 새로운 시도를 꿈꾸고 있다. 10000호 짜리 작품전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 10000호라면 100호 그림 100장을 잇대어 놓은 규모이다. 다루기 까다로운 실크에 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현 화백이다. 100호 짜리 그림 100장이 각각 독립적인 그림이면서 서로 연결될 때 10000호 짜리 작품 하나로서의 독립성과 완결성을 가진 작품으로 국내외 전시전 갖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해 열 번째 개인전을 끝내면서 일단 한번의 마무리는 했다는 느낌이었어요. 뭔가 일생의 역작을 압도적인 스케일로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막 불혹을 넘긴 나이에 시작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에너지가 딸려서도 안 될 것 같고 이 나이 이전에는 이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없었고...지금이 아니면 내 안의 것들을 다 쏟아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시작하는 일입니다."

현화백의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생활인이었으나 내면의 끼를 감출 수 없었던 화가였다. 이른 아침 스케치를 하러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나섰던 유년의 어느 날, 떠오르는 해가 순식간에 물들인 황금빛 바다를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그 아침 처음 만난 자연의 생명력과 신비와 경이는 지금 현 화백의 화폭을 지배하고 있는 주제인 셈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거대한 화폭 위에 넘실댈 그 날 그 바다의 생명력이 기대된다.

이 삭막한 조립식 옥탑 작업실은 그 역작의 산실이 되리라...현 화백이 흙을 퍼 날라다 심어놓은 자그마한 화단에 이름 모를 풀꽃 한 그루가 봄볕에 살랑거리고 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