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의 예술가의 집 19] 성악가 현행복

▲성악가 현행복씨가 손수 만든 문패가 걸린 통나무집. 
우도 동굴·용연 선상·방선문 계곡...천연의 무대 발굴

성악가 현행복 선생의 이호동 작업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성악가의 작업실이라고 해서 도심의 빌딩 숲 사이에 자리 잡은 현대식 스튜디오를 떠올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부질없는 선입견이라는 것을 알았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오디오시스템을 갖추고 반질반질 빛나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인 공간에서 연미복을 차려입은 성악가가 아리아를 부르고 있는 그림은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일 뿐이다.

제주시 이호2동 굴왓마을. 일주도로에서 100m쯤 떨어져 있는, 도시도 아닌 시골도 아닌 마을에 현 선생의 작업실이 있다.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 길 바로 아랫동네, 정확한 간격을 두고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이 들려온다.

▲해녀들이 쓰는 비창으로 테왁을 연주하는 현행복 씨.
그가 누구던가. 제주 남성 성악가 1호이자 동굴과 용연, 계곡과 포구로 음악회의 무대를 끊임없이 넓혀온 공연기획가가 아닌가. 그뿐이랴. <방선문(訪仙門)>,<취병담(翠屛潭)>,<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 등의 책을 펴냄으로써 제주 문화의 원류를 찾는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는 지역문화사연구가가 아니던가.

하는 일 많고 머리 쓰는 일 많고 노래 부를 일 많은 그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작업실에 들리는 비행기 이착륙 소음이라니...많이 불편하겠노라고 인사삼아 말을 건네니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화답한다.

"소음이란 게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저처럼 시도 때도 없이 발성하고 노래 부르고 음악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자칫 이웃에게 민폐를 끼치기 쉬운데 시시각각 굉음이 들려오니 사람들은 제가 내는 소리 정도야 그에 비하면 애교로 봐주실 수 있잖아요. 저만 해도 워낙 익숙해져서 어떤 때는 비행기 소리가 안 들릴 때도 많아요."

25년째 한 자리서 노래 부르고 제주 문화 연구

소음으로써 소음을 줄인다니 이음치음(以音治音)이라고나 할까. 워낙 시끄러운 동네다보니 음악활동하기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이 집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산남(山南)의 위미가 고향이니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도 아닌 터에 어찌 이곳과 연을 맺게 되었을까?

"이 집과는 역사가 깊습니다. 제가 제주 음대 시절 이 집에서 자취생활을 했지요. 이 집은 당시 초가였는데 집주인이 바로 옆으로 이사를 가서 새 집을 짓고 사는 바람에 제가 자취를 하게 되었던 거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그곳에서 강의를 하다가 다시 제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땐 결혼도 했는데 3월에 오다보니 신구간이 지난 탓에 집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옛날 살던 집이나 한번 찾아가보자 하고 이곳에 와보니 아직까지 비어있더군요. 집주인이 반기면서 와서 살아만 줘도 고맙다고 하길래 이곳에서 살림을 차리고 살면서 아예 사들여서 안거리를 짓고 이 집은 제 작업실로 쓰게 된 거지요."

 그러니까 학생 때부터의 인연을 따지자면 이 집에서만 살아온 세월이 25년이다. 차츰 자취를 감춰가던 제주 초가에 연음당(硏音堂)이라는 당호까지 짓고 노래를 부르고 허벅장단을 두드리고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겨울, 연음당이 화재로 홀라당 타버리는 일을 겪었다. 그때까지 모아둔 모든 자료와 악보 등이 전소되어 버린 것이다. 당장 작업 공간과 자료를 잃으니 낙심 천만, 도무지 의욕이 새로 생기지 않았다.

심란한 마음을 달랠 겸 이호 바다에 낚시를 하러 갔다. 그런데 난파한 원목선에서 파도에 떠밀려온 통나무가 바다에 가득 널려 있는 것이었다. 집 채 만한 통나무를 보니 섬광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무들을 그러모아 집을 지으면 되겠구나...그렇게 해서 지금의 작업실이 태어났다.

새로 붙인 당호는 '현 아저씨의 통나무집(Uncle Hyun's Cabin)'. 미국의 노예폐지론자였던 여성 작가 헤리엇 비쳐 스토가 쓴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의 기막힌 패러디이다. 

▲현행복씨의 손 때묻은 목어가 천정에 걸려있다.
제주 자연과 제주 소리의 합일과 소통을 지향

연미복보다 흰색 두루마기를 주로 입는 성악가, 사방이 막힌 공연장의 무대보다 탁 트인 자연 속의 무대에 더 자주 서는 성악가, 이해하기 어려운 클래식 곡보다 마음이 더 먼저 젖어드는 제주 민요를 더 많이 부르는 성악가로 널리 알려진 만큼 현 선생의 활동 반경은 넓고도 독특하다.

 "용연은 예로부터 풍류객들이 야간에 배를 띄우고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맑은 물에 비친 달의 아름다움을 즐긴 곳입니다.

이를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 하여 영주12경으로 부릅니다. 이것을 지난 99년부터 용연 선상음악회로 재현해서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2003년 용연 구름다리 공사 때문에 음악회를 한 해 거르게 되었는데 그때 생각해 낸 곳이 방선문입니다.

백록담에서 흐른 물이 방선문 계곡을 거쳐 한내에 이르는 것이니 의미가 있다 싶었습니다. 더구나 봄의 정취가 뛰어난 방선문 역시 '영구춘화(瀛邱春花)'로 영주 10경에 드는 곳이니 그만한 야외무대가 없지요."

 고정관념을 깬 그에게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용연이나 계곡은 그야말로 자연이 선물해준 천연의 무대였다. 그런가 하면 우도의 동안경굴(東岸鯨窟)에서의 음악회는 제주의 소리가 동굴의 울림을 만나 날개를 단 격이니 바야흐로 제주 명품 음악회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올해로 용연 선상 음악회가 열 살이 되었고 방선문 계곡 음악회가 여섯 살, 우도 동굴 음악회가 자그마치 열두 살이 되었으니 그가 그동안 제주 자연과 제주 소리의 합일과 소통을 위해 고심해온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지난해에는 한경 용수리 포구 절부암에서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포구 음악회의 첫걸음인 셈이다. 동굴소리연구회와 제주소리연구소를 이끄는 한편 제주소리 가무악극 <제주기(濟州妓)  애랑>의 대본 및 음악 구성 작업을 했고 거의 2년에 한번 꼴로 제주 문화와 역사에 관한 저서를 출간하고 있으니 그만큼 일복 많은 성악가도 드물 것이다.

뿐 아니라 허벅에서 시작해 목어(木魚, 나무를 깍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속을 비게 해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佛具), 테왁, 소라고둥 등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자연의 소리를 음악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그의 타고난 도전 정신과 실험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스테파 섬은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스코틀랜드의 아주 작은 섬입니다. 하지만 그 섬에 있는 핑갈 동굴에 다녀온 멘델스존이 그곳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으로 '핑갈의 동굴' 서곡을 지으면서 유명해진 곳입니다. 저도 다녀왔는데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해식동굴이었지만 동굴 공간은 동안경굴보다 훨씬 협소했습니다. 음악회를 열 수 있는 조건으로 보자면 우리의 동안경굴이 월등하다는 이야기지요. 동굴 음악회를 통해 문화공간으로서도 우도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억을 더듬자면, 노예 톰의 주인 아들이 톰의 비극적인 죽음 후에 집안에 귀속된 노예들을 톰의 이름으로 해방시켜주면서 남긴 말이 "너희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볼 때마다 너희들의 자유를 생각해라" 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현 아저씨의 오두막’을 볼 때마다 자꾸 잊혀져가는 우리 제주 소리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조선희 /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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