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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북한방문기<1>[기고]북한방문기<1>
서귀포신문 | 승인 2002.12.20 00:00
북한의 공항개방은 충격으로 다가와 거리는 한산하고 집단마을은 초라 시멘트 원색의 집 볼땐 가슴 미어져 ▶방북경위 아무런 대가없이 북한동포들을 위해 감귤과 당근을 보냈던 제주도민들의 따뜻한 정성이 결국 민간차원에서 남북교류의 소중한 물꼬를 트게 했다. 민간차원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신기원으로 기록될 제주도민 북한 방문단이 2002년 5월10일 특별 전세기편을 이용, 5박6일 일정으로 ‘장도(壯途)’에 올랐던 것이 그것이다. 농업인단체·사회단체·교육·행정계 등 각계 도민 2백53명으로 구성된 북한방문단은 5월 15일까지 5박6일 동안 평양·백두산·묘향산 등을 둘러보았고, 가는 곳마다 북한동포들의 따뜻한 동포애가 묻어 있는 환대를 받았다. 우리가 이같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제주도민들이 북한동포돕기 일환으로 추진해 온 감귤·당근보내기 운동에 적극 동참해 온 결과, 북한이 감사의 뜻으로 제주도민들을 초청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필자도 제주도내 각계 각층에서 선발된 인원중 한 사람으로 선발되는 영광을 안고 70평생 꿈에도 그리던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다. 물론 필자의 삶이 공직에 오래 머물다보니 6.25 전쟁과 각종 도발로 인해 적대시하고 질시하며 살아 왔던 터라 일말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방문 그리고 제한적이지만 민간차원에서 방북이 추진되어 종전보다 상호관계가 개선된 점을 위안 삼을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평생에 한번 찾아온 북한방문의 기회에 북한의 모든 것을 배우고, 알아서 향후 남은 여생을 평화통일에 바쳐야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을 수 있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북한방문 자체를 새로운 흥분과 설레임으로 바꿔 놓기에 충분했고, 5박6일간의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었다. 필자가 겪었던 꿈에도 잊을 수 없는 5박6일간의 일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일정별 방문기 ▷5월 10일 (금요일) 2002년 5월 10일 11시 대한항공 KE 815(A300)편 비행기는 제주도민 방북단 253명을 태우고 제주국제 공항을 이륙했다. 날씨는 전형적인 5월의 쾌청함 그 자체였고, 비행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필자는 비행기가 제주공항 활주로를 서서히 벗어나며 힘찬 날개짓을 하자 창밖을 향해 시선을 던지다 문득 방북단 일행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반세기가 넘는 단절의 시간과 공간을 뚫고 제주~평양 직항로를 통해 말로만 듣던 북녘땅을 찾아가는 2백53명의 방북단들의 표정엔 일순 설레임과 함께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우리 비행기를 타고 직항로를 이용 방북 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0일 11시 제주를 떠난 KAL여객기는 순항을 계속하여 12시 20분 비행기가 평안남도 순안에 있는 비행장에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안내가 있었다. 제주를 떠나 순안공항에 이르는 동안 나는 한시도 눈을 감을 일 없이 창가에 앉아 우리의 금수강산을 눈여겨보았다. 어찌보면 처음 보는 풍경인데도 우리나라 어느 산의 풍경처럼 낯이 익고 친근감이 생기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비행기 고도는 점차 낮아져 곧 착륙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창 너머로 본 북한 땅은 푸른 산도 보이지만 고도를 낮추면 낮출수록 북한 땅은 메마르고 황토 빛이 역력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2시 30분 비행기가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제주~평양간 1,100㎞에 한 시간 반 남짓밖에 안걸린 셈이다. 두시간도 안 걸리는 이 거리를 우리는 반세기가 넘도록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이 아픔과 고통이 여기서 끝날 수 있도록 우리들이 지혜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이런 착잡한 심정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 일행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안공항에 도착하니 고려항공 비행기가 5~6대 정도가 보였으며 외국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청사광장에서 우리 일행은 기념 촬영을 했으며, 촬영하는데 통제를 받지 않아 자유롭게 사진 촬영도 했다. 지난날 국내에서 비행기를 타면 차광막을 내려야 했고, 착륙 후에도 주위를 둘러 볼 틈도 없이 총총히 청사로 걸음을 옮겨야 했던 어두운 시절을 경험했던 나에게 북한의 공항개방은 충격으로 다가 오기도 했다. 그리고 출입국 관리소에서도 우리 일행을 친절히 대해 줬으며 환영 나온 민화협 간부와 기자들도 별 문제 없이 우리를 따뜻이 맞이해 줬다. 우리는 공항까지 나온 버스에 분승하여 평양 시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장으로는 산이며 들, 농촌집단 마을들이 보였다. 그러나 거리는 한가하고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으며, 산야도 황토색이며 집단마을들도 초라하여 시멘트 원색으로 된 것을 볼 때 가슴이 미어져 옴을 느꼈다. 바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북한주민들의 실상이 눈에 잡히듯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군선/전 남제주군수 제343호(2002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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