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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팡]‘몸이 말을 걸어올 때’[쉼팡]‘몸이 말을 걸어올 때’
조선희 | 승인 2002.12.20 00:00
신체가 극한 상황에 다달아야 몸의 경고에 귀 기울이며 후회 아주 생활력이 강한 여자가 있었더란다. 엄청난 고생 끝에 한 몸 먹고 살 만한 밑천을 장만했는데도 도대체 일을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밤마다 거의 벗다시피 한 차림으로 춤을 춰야 하는 스트립쇼 걸이었다. 머리가 아파도, 배가 아파도, 감기에 걸려도 아픔을 참아가며 스트립쇼를 했다. 갖가지 약을 밥처럼 먹으며 한편으로는 일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기도 했지만 일을 선뜻 그만두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는 도저히 일을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온몸에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벌겋게 부풀어올라 옷을 입을 수도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그제서야 여자는 일을 그만두고 비로소 몸을 누일 수가 있었다. 언젠가 읽었던 이 우화가 생각난 건 한달 전 병상에서였다. 두 시간 가까운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이젠 살았구나 싶을 때 머릿속을 뱅뱅 도는 것이 이 우화였다. 몸은 시시각각 위험을 경고하지만 이를 무시한 몸 주인은 결국 철퇴를 맞게 된다는 것, 몸은 처음에는 미미하게 위험을 경고하지만 결국에는 주인이 거부할 수 없을 극단적 상황을 마련해서라도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몸 주인은 그러한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몸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는 것 등이 누워서 이 우화를 되씹으며 내가 깨달은 교훈들이었다. 여름이 올 무렵부터 몸에 약간의 불편감이 생기긴 했지만 이미 알고 있던 병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화근이었다. 병을 큼지막하게 키운 뒤에야 수술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비교적 이성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떤 감상이나 어떤 합리화도 용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걸리는 것은 오로지 아이들뿐이었다. 아이들에게 ‘만약의 경우’가 생기더라도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는 따위의 말을 해주어야지 싶다가도 어쩐지 사위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가 하면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가 그 ‘만약의 경우’가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게다가 어렵지 않은 수술일 거라고 누차 강조하던 의사가 들으면 진짜 비웃을 일이지만. 혼자서 온갖 비관적 상상을 거듭하다가 내린 결론의 하나는 어떠한 상황이나 결과에도 나는 억울해 할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알고도 병을 키워온 죄,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을 잘도 챙겨먹는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은 죄, 늘 먹기와 자기와 일하기를 한여름 소나기 퍼붓듯 하면서 몸을 혹사시킨 죄 등등 일일이 따지자면 한마디로 ‘당해도 싸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달 가까운 자리보전 끝에 일어나니 본격적인 감귤 수확철이다. 그동안 좀 아팠다고 타고나기를 일복 많은 팔자가 달라질 리 있으랴. 여기저기 전화해서 인부 구하랴, 겨우 구한 인부들 아침 간식에 점심 식사 차리랴, 소비자와 직거래해야 하는 감귤이니 일일이 주문받아 개인 택배 보내랴 그 어느 것 하나 누가 대신 해주기 어려운 일들 뿐이다. 힘만 써도 되는 남자라면 일당을 주고 구하겠지만 수확철 농가 아낙이 해야 할 일이 어디 힘으로만 당할 일인가 말이다. 아직은 예전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회복하지 못한 것 같아 감귤을 따거나 콘테이너를 나르는 일이 면제되는 것만도 감지덕지일 뿐. 몸이 내게 건네는 나지막한 경고를 무시하지만 않는다면 내년 수확철에는 몇 배의 일을 해도 되리라. 아니 해야 하리라. 조선희/「마흔에 밭을 일구다」의 저자.남제주군 표선면 토산리 제343호(2002년 12월 19일)

조선희  sunnytos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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