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제주음식, 슬로푸드로서의 가치 재발견
(2) 전통음식에서 미래를 보다 - 죽방멸치

 

바야흐로 '느림'이 대세다. 쫓기듯 바쁘게 살아온 현대인들은 휴식과 여유를 희망하며 느리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재미있고, 맛있는 것을 찾아간다.
그동안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 느림의 미학을 잊어버리고 살았음을 일깨운다. '올레 열풍'이 이를 상징한다. 천천히 걸어가는 도보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주고 있는 제주올레는 제주해안길의 아름다운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간단히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는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오랜기간 음식을 만든 이의 정성을, 먹을 수 있는 것의 감사함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이제 상업이익을 떠나 좋은 품질의 식품생산을 통해 건강의 참맛을 주는 슬로푸드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음식은 지역의 산물이자 일들의 흔적이다. 소박하다 못해 투박한 제주전통음식에 숨겨진 슬로푸드의 가치를 발견하고, 전통음식을 명품화하고 있는 도외 사례를 통해 제주음식을 세계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5차례에 걸쳐 모색한다. <편집자주>

인위적인 시간을 따르지 않고 자연의 시간을 따르는 순응, 물질적인 추구를 자제하는 절약, 지역 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하는 소박함. 결국 슬로푸드운동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지방 특유의 먹을거리와 요리방법을 보존하면서 전통을 지키고 가족의 화합을 지키는 운동이다.

슬로푸드 국제본부는 매년 생태계의 다양성 보존을 위해 가축의 품종과 채소 종자를 보존하고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음식 등을 보존, 공헌하는 개인이나 단체, 지도자 등에 슬로푸드 상(Siow Food Award)을 준다.
 
# 국내서 처음으로 슬로푸드로 공인된 '죽방멸치'
 

▲ 죽방멸치는 다른 멸치보다 은색빛이 더 선명하다.
국내에서는 2001년 10월 포르투갈 포르토에서 거행된 제2회 슬로푸드 상 시상식에서 한국슬로푸드위원회 김진화 회장이 연구, 조사한 300년 전통의 죽방멸치잡이와 멸치상품이 처음으로 수상했다.

죽방멸치의 슬로푸드 상 수상은 죽방멸치의 가치를 드높이는 기회이면서도 우리나라에 슬로푸드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특히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 오랫동안 이용돼 왔던 죽방렴의 의미를 통해 전통 어로문화 전승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강조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 조상의 슬기가 담긴 300년 전통어로 방식 고수

경상남도 남해군 지족리 창선교를 지나다보면 지족해협에 V자형의 울타리를 쉽게 볼 수 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 속에 나무를 세워 고기를 들게 하는 나무 울타리,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어법 중 가장 오래된 원시어법으로 알려진 죽방렴이다. 참나무 말목과 말목 사이 대나무 발처럼 엮어서 고기를 잡기 때문에 이름을 죽방렴(발)이라고 했다. 현재 죽방렴은 남해군 지족해협과 삼천포 늑도해협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남해군 지족에서는 현재 26명의 어업인이 정치망 어업면허를 얻고 300년 전통의 죽방렴을 이어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그물망처럼 보이지만 죽방염에는 선인들의 지혜와 300년 이어지는 지족리 어업인들의 손때가 정겹게 묻어있다. 이것이 바로 죽방멸치가 슬로푸드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오랫동안 계승되고 있는 전통어로 방식도 가치를 지니지만 죽방염 설치과정을 조금만 알아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물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이 담아주는 대로

죽방렴을 설치하려면 발의 기둥이 될 참나무를 갯벌에 박아야 한다. 지족해협이라고 해서 어느 자리나 죽방렴 어업이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적으로 좋은 장소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했다. 또, 물이 빠졌을 때 빠른 시간 안에 나무를 박아야 하지만 죽방렴 한 곳마다 100개가 넘는 참나무 기둥을 박아야 하는 여건상 물때를 맞춰 물이 빠질 때마다 작업을 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조류의 세기를 등급화한 조석현상과 더불어 음력을 이용해 보름간을 주기로 총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이 물때를 먼저 파악하지 않고서는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슬로푸드운동의 기다림의 미학, 느림의 미학과 부합하는 것이다. 물론 죽방염 설치과정의 노력과 수고로움을 짐작케 한다.

▲ 죽방렴 조업 과정(위쪽부터 시계방향)
특히 이곳 사람들은 애써 고기를 잡으러 바다를 헤집고 다니지 않고 V자형으로 막은 죽방렴(竹防簾)에 들어온 멸치를 그물로 모아 온전히 올렸다. 밀물일 때 죽방렴 안에 들어온 멸치를 물이 빠졌을 때 발안에 들어가 고기를 건져냈다. 지족해협은 수심이 얕아 고기를 건져내기가 쉽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먹고 적당히 물물교환에 사용할 정도의 양만 수확하는 순박하고도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죽방멸치가 또 유명한 이유는 은백색의 빛깔과 멸치가 원형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적당히 건져 올려진 멸치는 5분 이내 가까운 육지로 옮겨져 곧장 선별과정을 거쳐 삶아진다. 

▲ 유속이 빠른 남해안 지족해협 앞바다에 수로에 V자형으로 발을 막아 밀물과 썰물에 회유하는 고기를 포획하는 정치망 어장을 대나무로 막아 발을 만들었다고 해서 죽방렴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해수와 천일염으로 간을 해 삶아진 멸치는 건조 해풍과 자연광에 건조되는데 그렇게 해서 최상품(멸치 길이 7~8㎝) 멸치 1㎏당 100만원 하는 죽방멸치가 탄생된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죽방멸치는 상품성을 인정받고 일반 멸치와 확연한 차별성을 가지면서 남해 지역특산물 향토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남해군 관계자는 "죽방멸치는 1년에 20㎏ 가마니로 70여개를 생산하나 마나 할 정도로 귀하게 생산되는 만큼 그 값어치도 높아지고 있다"면서 "죽방멸치가 유명세를 타고 많이 알려지면서 주문은 쇄도하고 있지만 그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죽방멸치의 인기를 실감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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