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경탐방 - 49] 서홍동 들렁모루
속이 빈 바위가 있는 동산 … 으름.고사리 등 다양한 생물 숨쉬는 '원시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기좋은 남쪽나라, 서귀포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곳곳 발길 닿는 곳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비경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관광지라는 명패만 달지 않았지 어디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풍광들이다. 다만 빨리빨리 흐름 속에 차창밖으로 지나쳐버렸을 뿐이다.  느릿느릿 걸어가도 되는 느림의 사회였다면 놓치지 않았을 풍광들, 서귀포신문은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놓치고 있는 아름다운 서귀포의 오아시스, 비경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 여름 숲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바다에서의 재미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초록잎 파라솔과 자연바람 에어컨, 쉴 새 없이 눈과 귀를 놀라게 하는 식물과 동물. 더위를 잊을 만큼 재미있는 해수욕과 견주기에 충분한 숲의 매력이다.

매년 북적거리는 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겼다면 해수욕장보다는 호젓한, 끈적거리는 바닷바람대신 코끝을 살랑살랑 간질이는 산들바람이 부는 숲에서 무더위를 잠시 잊어보는 것은 어떨까.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서귀포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의 매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서홍동 2432번지 들렁모루.

▲ 서홍동사무소와 주유소 사잇길을 따라 자동차로 약 10분 올라가면 들렁모루 표지판이 오른쪽으로 보인다.
자동차를 타고 서홍동주민센터와 주유소 사잇길을 따라 한라산방향으로 10여분 오르면 오른쪽 감귤과수원 울타리를 따라난 좁은 농로가 나온다.

이 농로 앞에서는 차를 세우고 100m 걸어가면 비밀의화원처럼 아담한 둥근터널 모양을 한 숲길이 찾아온 이를 반긴다. 바로 들렁모루 입구다.

숲길에 발 한 걸음을 내딛자 가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익어가는 으름열매가 이마에 정겹게 부딪친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으름은 어릴적 향수까지 담아 기분 좋은 숲길 여행을 예고한다.

▲ '들렁모루' 이름의 비밀이 이 바위에 숨어 있다. 제주에서는 가운데가 비어있는 비어있는 바위를 '들렁'이라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 5분 정도 걸었을까? 빼꼼히 고개 내민 큰 바위가 보인다.

바로 들렁모루 이름의 비밀을 간직한 바위다. 언뜻 고인돌 같아 보이지만 자연 생성된 바위다. 가운데 받침돌이나 지지대가 없어서 금방 중심을 잃어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지만 오랜세월 언제나 같은 자리였던 바위다.

여기서 '들렁모루' 이름의 비밀을 풀자면 들렁모루는 속이 비어 있는 바위가 있는 동산이라는 뜻이다. 비어있는 바위를 의미하는 제주어 '들렁'과 동산을 의미하는 '모루'의 합성어로 이 큰 바위가 이곳 이름을 짓는데 키워드가 됐다.

▲ 들렁모루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귀포시의 전망
하지만 이곳 볼거리는 이 바위만이 아니다. 바위 위로 조성된 전망대에서는 동쪽 지귀도에서 서쪽 송악산까지 아름다운 서귀포 해안을 조망할 수 있다.

500m 산책로는 둥근 원을 따라 걷듯 나 있는데 키 작은 소나무와 다양한 나무들을 볼 수 있어서 청소년들에게 자연학습장이 되기에도 충분하다.

숨어있는 숲이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자주 다녀가는 듯 산책로 곳곳에는 돌을 쌓아 소원을 빌었던 흔적도 남아있다.

특히 이곳에는 고사리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봄에는 고사리체험도 할 수 있다.

▲ 산책로 곳곳이 고사리 천지다. 봄이면 고사리체험 학습도 이뤄진다.
▲ 졸졸졸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산책로 왼쪽을 따라 서홍천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역시 단조로운 코스가 아니다. 눈과 귀가 바쁘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졸졸졸 귀가 즐거운 냇물도 지난다. 솜반천과 만나 천지연으로 흘러갈 서홍천이다.

그리고 들렁모루의 '백미', 산책로 끝에서 만나는 대나무 숲의 운치는 나무랄데가 없다.

하지만 이곳 대나무 숲에서 숲을 빠져나가면 처음 들렁모루에 들어왔던 입구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정상으로 가서 들어갔던 길로 나와야 길 찾기가 쉽다.

또한 들렁모루 입구까지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면 1시간 정도가 소요되지만 도심에서 볼 수 없는 또다른 농촌풍경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서홍동 들렁모루 산책로 끝에 위치한 대나무 숲길. 곧게 뻗은 길죽길죽 대나무는 보기만해도 시원하다.
한편 들렁모루는 원시림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는 있는 장점이 있지만, 관리의 손길이 미친 지 너무 오래됐는지 어른 무릎높이 만큼 자란 풀들은 찾아온 이들에게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 들렁모루 산책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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