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음식, 슬로푸드 가치 재발견 ④]소박한 맛과 멋 - 제주의 문화를 담다

바야흐로 느림이 대세다. 쫓기듯 바쁘게 살아온 현대인들은 휴식과 여유를 희망하며 느리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재미있고, 맛있는 것을 찾아간다.
그동안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 느림의 미학을 잊어버리고 살았음을 일깨운다. 올레 열풍이 이를 상징한다. 천천히 걸어가는 도보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주고 있는 제주올레는 제주해안길의 아름다운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간단히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는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오랜기간 음식을 만든 이의 정성을, 먹을 수 있는 것의 감사함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이제 상업이익을 떠나 좋은 품질의 식품생산을 통해 건강의 참맛을 주는 슬로푸드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음식은 지역의 산물이자 일들의 흔적이다. 소박하다 못해 투박한 제주전통음식에 숨겨진 슬로푸드의 가치를 발견하고, 전통음식을 명품화하고 있는 도외 사례를 통해 제주음식을 세계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5차례에 걸쳐 모색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슬로푸드 관점에서 바라본 제주음식
2. 전통음식에서 미래를 보다 -  국내 첫 슬로푸드 죽방멸치
3. 전통음식에서 미래를 보다 -  경기도 파주 장단콩마을
4. 소박한 맛과 멋 -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다
5. 제주음식의 세계화를 위한 과제

▲ 제주전통음식 조리법에는 근검, 절약의 정신이 들어있다.
음식은 지역의 산물이면서 그 지역에 일어났던 일들의 흔적이다.
전통제주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을 두고 과거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던 제주인들의 아픈 과거를 들추는 일이자 배부른 현대인들의 여유라고 할 지 모른다. 특히 제주를 다녀간 일부 관광객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맹맹하고 맛이 없는 음식이 제주음식이었다고 회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제주만의 소박한 멋이자 맛이었다.

척박한 토질에서 밭농사를 주로 했던 제주섬. 먹을 것이 귀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육지부에서 식량이 도달되는 것도 천운(天運)이 따라야 했고, 잦은 기근이 찾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제주이기에 먹을거리에서는 단연 절약의 지혜가 돋보인다. 제주산업정보대 고정순 교수가 재연한 1960년대 밥상을 통해 제주음식에 담고 있는 지혜를 찾아볼 수 있다.

▲ 고정순 제주산업정보대 교수가 재연한 1960년대 밥상
마밥에 호박잎국, 편육(일명 돔베고기), 가지찜, 우럭콩조림, 퍼데기김치, 오이장아찌, 부추나물무침, 깻잎과 콩잎, 호박잎의 쌈채소 등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물론 당시 이 밥 한상은 끼니 걱정 없이 사는 부잣집 밥상보다도 더 잘 차려진 진수성찬으로 보편적인 밥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시 제주음식의 조리법과 그 안에 숨겨진 제주 어머니들의 지혜를 찾아볼 수 있다.

# 제철재료 사용하는 슬로푸드 원칙 충실

우선 산과 들, 바다에서 나는 제철 재료를 골고루 사용했다.
밥상 가운데 낭푼에 수북이 담아진 보리밥에는 마가 들어있지만 당시 제주인들은 감자나 고구마, 무 등 제철에 나는 재료를 넣어 밥의 양을 늘렸다. 호박잎 또한 7~8월 호박이 열리기 전 여린 것으로 뜯어서 썼다. 가지나 부추도 흔히 밭에서 나는 재료며 우럭 바다에서 쉽게 나는 생선이다.

▲ 제주사람들이 먹던 편육, 돔베고기
조리방법도 간단하면서도 단순하지만 아끼고 아껴 먹었던 조리방법이 숨어있다. 사실 우럭과 콩은 흔한 말로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 아니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생선이 모자란 점을 콩으로 보충했다. 콩조림을 냄비에 깔고 우럭을 얹어서 간장을 넣고 끓이면 완성되는 우럭콩조림은 귀한 생선이 모자란 점을 보완해 양을 늘리면서도 다소 부족할 수 있는 단백질을 보완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또 단백한 맛을 배가시킨다.

호박잎국에는 밀가루가 들어갔기 때문에 그냥 된장국에 비해 먹었을 때 더 든든한 느낌이 있고 뻣뻣한 호박잎을 부드럽게 한다.

▲ 고정순 교수는 2005년 슬로푸드국제연맹 관계자들이 제주를 방문했을 당시 자리회국수를 준비해 날 생선을 통째 먹는 것이 생소한 외국인들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냈다.
오랜시간 숙성되고 발효되는 과정은 다소 적을지라도 제철에 나는 재료를 이용해서 원재료의 맛을 살려낸 음식, 즉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슬로푸드로서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 버리는 것이 없는 조리법, 절약은 기본

또한 음식재료가 풍부하지 못해 어느 것 하나 버리는 것 없이 알뜰하게 식재료를 이용한 슬기는 높이 살 만 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쉰다리다. 쉰다리는 제주식 발효 농축 요구르트라고 함축할 수 있다.

▲ 여름철 제주사람들이 즐겨먹던 호박잎국도 칼칼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
저장시설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 보리밥은 쉬기 일쑤였다. 여기에 누룩과 물을 넣고 하루에서 이틀정도 발효시키면 시큼하면서도 칼칼한 쉰다리가 완성된다. 쉰 밥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제주 어머니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다.

양념을 거의 쓰지 않고 재료맛을 그대로 살린 것도 제주음식의 특징이다. 김치만 보더라도, 제주도의 김치는 무척 소박하다.

특별한 양념은 하지도 않고 고추농사가 잘 되지 않아서 고추양념도 듬성듬성할 정도로 적게 썼다. 이렇게 단순하고 간단한 조리법은 원재료의 영양소 손실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재료의 영양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 또한 슬로푸드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김진화 슬로푸드 한국위원회 회장은 슬로푸드는 깨끗한 재료, 만드는 사람과 조리법,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먹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조화를 이룰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면서 제주는 청정자연에서 생산된 지역농산물이 충족되는 만큼 전통적인 향토음식의 레시피를 복원해서 상품화 한다면 슬로푸드 운동의 실천이 가장 쉬운 곳이라고 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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