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집34 도예가 허은숙

▲ 작업장에서의 허은숙 대표.
마을 주민과 함께 일궈낸 전통옹기 배움터...자료관으로 만들 터

도예가이자 사단법인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를 꾸려가고 있는 허은숙 대표를 만나러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제주옹기배움터를 찾아간 날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흙을 빚고 있었다. 흙 빚는 것을 도와주는 도예가 선생들과 어울려 키득키득 웃다가 또 제법 열중하다가 또 어느 사이 밖으로 휑하니 나갔다가 아이들은 마치 배움터가 제집 거실인양 거침없이 ‘놀멍 만들멍’ 하는 중이었다. 무더운 한여름,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날이면 날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것이 힘들 법도 하다.

“힘들긴요. 결국 누군가 해야 할 일인데요. 제주옹기배움터 자체가 마을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의견이 모아져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제가 해보니까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주 흙을 가지고 놀아봐야 제주 옹기와 친해지고 그러는 과정에서 정말 제주 옹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겨날 테니까요.”

▲ 허은숙 대표의 또 하나의 작업실이라 할 수 있는 구억제주전통옹기배움터 내부 모습.
구억 제주옹기배움터는 올해 3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폐교된 교실 한 칸짜리 분교가 지금은 옹기 전시장과 교육장으로 말끔하게 새 단장을 했지만 그 전에는 누군가 개인 사업을 위해 리모델링을 시도했다가 3~4년째 방치되어 흉물처럼 여겨지던 곳이었다. 마을회가 발 벗고 나서서 구억 마을의 특성에 맞는 가치 있는 일을 하자고 의견을 모아 교육청에서 불하를 받았고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와 힘을 합쳐 일군 것이 옹기배움터이다. 학기 중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옹기 체험 프로그램과 전통 옹기를 기본으로 한 도자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말이나 방학에는 어린이와 가족 단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대정읍 관내 인성·안성·보성·구억·신평 어린이와 지역민들에게는 무료 개방된다.

“구억이나 신평 지역의 경우 각 가정마다 옹기를 굽거나, 팔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했던 경우가 90% 정도입니다. 앞으로 이곳이 단순히 교육만 담당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제주옹기에 대한 채록을 마쳐야 하구요. 제주옹기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박물관 혹은 자료관 혹은 사료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의무 중의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 구억 마을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운영하고 있는 배움터의 외관.
누군가 해야 할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이 ‘아름다운 의무’에 발목이 잡힌 허 대표가 사실 도예를 전공한 이는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다. 제주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전시기획 일을 맡아 하다가 귀향한 것이 1997년의 일. 고향으로 돌아와 뭔가 ‘제주다운’ 일에 몰두하고 싶어 제주 섬문화 축제 기획을 담당하기도 했고 제주의 설화와 신화를 토대로 한 테마 파크 기획 일을 잠시 하기도 했지만 모두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때 제주 흙으로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찾아간 곳이 제주도예촌이었다. 그곳에서 땅을 파고 풀을 깎는 등 ‘노가다’ 일을 가리지 않고 도예촌의 터 닦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제주전통옹기 복원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허 대표는 현재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4호 허벅장 전수조교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몇 년 동안 ‘쌩노가다’를 하면서 도예촌의 틀거지를 만드는 작업을 한 거지요. 처음엔 전통 옹기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전수자들이나 심지어 도공의 자제들까지 떠나는 거예요.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야 하니까 전 남아 있었던 거고요. 그저 같이 버팀목이 돼줘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어느 날 보니 제가 제주 옹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생각도 없었다가 어느 날 보니 자신이 옹기를 빚고 있더라는 허 대표지만  실은 그가 만든 다기를 보면 누구나 첫눈에 반하고 만다. 보통의 다기가 지닌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면서도 손에 딱 쥐어지는 느낌, 그래서 허 대표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 ‘쥘다기’이다. 순수하게 흙판을 만들어 손으로 두드려가며 만들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 역시 ‘쥘다기’라는 것. 어떤 손잡이는 작은 호리병 꼭지가 붙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뺑덕어멈’의 입을 연상시키는 두툼한 입술 같기도 해서 마음에 착 감겨오는 것이 쥘다기의 가장 빼어난 미덕인 성싶다. 허 대표가 빚은 쥘다기 가운데 하나인 ‘화산땅 쥘다기’는 2007년 유네스코로부터 우수 수공예품으로 인증을 받기도 했다. 유네스코 우수 수공예품 인증제도란 자연 소재로 친환경적 효과를 내는 상품에 한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그 품질과 성격을 보증해주는 것을 말한다. 제주 화산흙을 손으로 빚어, 유약을 쓰지 않고도 유약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제주 전통 돌가마에서 구워낸 점을 유네스코가 높이 샀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 허 대표와 마지막 남은 제주전통옹기장들이 함께 쓰는 작업장 껌은돌 입구.
陶歷 60년  老스승들과 보존회 만들고, ‘껌은돌’서 공동 작업

이쯤 해서 허 대표가 작업하는 공간이 보고 싶어진다. 구억리 배움터야 말 그대로 제주 옹기에 관한 모든 것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개방적인 곳일 테니 허 대표의 개인 작업은 보다 은밀한 공간에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허 대표를 앞장세워 찾아 간 곳은 ‘껌은돌’, 배움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신평리에 위치해 있다. 제주전통옹기전승보존회의 주축이 되고 있는 노(老)스승들과 같이 작업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가 모시는 노스승들이란 모두 평균 60년 가까운 도력(陶歷)을 지니고 있는 분들로, 고원수 도공(80)을 비롯해 강신원(80)·고달순(74) 불대장(기물을 재우고 불을 지피는 역할), 이윤옥(73)·이전강(71) 건애장(토림꾼, 흙판을 만들고 용도에 맞게 준비하는 역할), 김성군(74) 축조 담당 기능인 들을 이른다. 여기에 전수자 5명을 포함해서 모두 11명의 식구가 ‘껌은돌’의 주인인 셈. 특히 이 ‘껌은돌’ 건물 자체가 명도공이었던, 이윤옥 건애장의 부친이 마지막까지 작업하던 공방터로서 옛 명도공의 자취가 배인 곳이라 장마철이면 비가 새지만 이를 감수하며 작업실로 쓰고 있다. 게다가 2년 걸려서 전통 방식 그대로 복원한 가마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실 보존회라는 조직을 엮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어른들이 계셔서 가능했습니다. 제주 옹기가 뿔뿔이 흩어지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오신 분들이라 모든 것이 저희에겐 귀중한 가르침입니다.  하다 보니 중심에 서 있는 꼴이 되었는데, 이 일의 어렵고 힘든 것을 다 따지자면 솔직히 저는 피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상황이 절박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거지요. 사실 10년 세월이라면 전수자가 최소한 10명은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참으로 우직하고 미더운 허 대표이다. 적어도 그가 버티고 있는 한 제주 옹기가 왜곡되거나 그 가치가 훼손되거나 그 명맥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왜냐하면 허 대표 뒤에는 제주 흙과 물과 바람과 불로 옹기를 빚으며 세월을 바쳐온 노스승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희 /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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