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집37> 서양화가 현충언

記憶이란 절실히 사랑하는 것...사랑하는 이를 위해 빈 의자 하는 놓는 것...누군가에게 다가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될 수 있다면...

▲ 현충언 화백.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 // 안에는 고요한 풍경 // 풍경은 간절한 꿈을 꿉니다 // 그림은 시(詩)가 되고 // 시는 빛깔이 되는 꿈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 전문, 김순이

 
1990년대 중반 서귀포 시내를 걷던 김순이 시인의 눈에 <기억의 섬>이라는 카페가 눈에 띄었다. 예사롭지 않은 상호(商號)였다. 무턱대고 들어갔다. 벽면에 걸린 그림들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주인장을 찾아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물어보니 카페 주인장 솜씨란다. 김 시인은 주인장을 설득한다. “이런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남과 공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김 시인은 어느 날엔가는 주인장이 자리를 비운 카페에 들러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시를 써놓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김 시인에 이끌리다시피 그 주인장은 1996년 첫 개인전을 연다. 타이틀은 <기억의 섬>. 그리고 몇 년 뒤 김 시인 역시 <기억의 섬>이라는 동명의 시선집을 펴낸다. 
 
그가 바로 서귀포 터줏대감 서양화가 현충언 화백이다. 기억의 섬에 살고 있는 이, 바람 속을 걸어가는 이, 현 화백을 만나러 남조로를 타고 수망을 향한다. 설명을 들을 때는 찾기 쉬울 것만 같더니 그만 길을 놓치고 말았다.  현 화백이 길가까지 데리러 나오겠다 한다. 잠시 후에 만난 현 화백은 농업용 트럭을 타고 있었다. 트럭을 탄 중견 서양화가라...어쩐지 쉽게 조합이 되지 않는다. 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한 이 편견의 굴레여. 트럭을 따라 숲길에 들어선다. 좌우로 펼쳐진 숲은 참으로 황홀하다. 주인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받고 자란 티가 확연하다. 작업실은 널따란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 감귤 창고. 제주 섬 감귤농사를 짓는 동네라면 어디서고 만날 수 있는 콘크리트 감귤창고가 화가의 야무진 손끝과 뛰어난 안목을 만나 멋들어진 작업실로 되살아났으니 감탄이 절로 인다.

▲ 소박하나 정갈함이 묻어나는 작업실 내부
“이 땅에 나무를 심고 가꾼 지는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감귤밭이었지요. 완전 폐원을 하고 창고를 개조해 작업실로 사용한 건 5년쯤 되고요. 남들은 한량인 줄 알지만 저 나이 든 나무들 모두 제가 묘목을 심어 키운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묘목 뿌리가 뽑히면 다시 심고 또 뽑히면 또 심고를 반복해서 세월이 흘러 이 숲을 이뤘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이 긴 세월을 어떻게 참았을까를 생각해보니 그것은 순전히 나무 덕택이에요. 너무 힘들다고 느낀 순간 생각했습니다. 이러는 나를 보고 나무는 뭐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마치 나무를 하인처럼, 나는 주인인 양 그렇게 대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 놀라운 발견이었지요. 비로소 나무와 동등한 입장으로 생각하게되었다는 것, 늦은 나이에 그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놀라웠지요.”

현 화백은 자신을 ‘나무 심고 돌보고 그림 그리는 이’로 소개한다. 달리 말하자면 드러내놓고 자신을 ‘전업화가’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를 다시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현 화백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고, 따라서 ‘벽’에 갇혀있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뜻이다. 어찌 제도권 안의 교육만으로 그림의, 예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오로지 ‘사방의 벽을 허물 수 있는’ 힘은 완전한 자유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늘 자유를 향해 열려있다. 그의 그림 대부분에서 만날 수 있는 액자 혹은 창문과 같은 통로와 거기에 시원스럽게 뻗은 길이 그러하듯이. 오늘의 현 화백을 있게 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자. 첫 개인전 ‘기억의 섬’ 이후 두 번째 개인전 역시 ‘기억제(記憶祭)’였으니 과연 그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

▲ 감귤 저장창고를 개조한 작업실 외관.
“세상에는 현존하는 것과 현존하지 않는 것이 있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잊어버려도 좋다거나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현존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생명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살아있는 것이지요. 기억되는 한 살아있는 것이니 기억이란 무언가를 가장 절실히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현 화백의 그림을 문외한의 눈으로 단순히 바라보건대, 예의 액자형 구도가단골로 등장하고 그 앞에는 거의 의자가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의자는 무엇인가? 우문(愚問)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연히 성경의 한 대목을 읽었는데, 2천년 전 사랑하는 사람의 기일(忌日)이 되면 그를 기억하기 위해 의자를 하나 놓았다고 하더군요. 잊혀지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의자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억법인지...제 그림에 나타나는 의자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기억은 사라진 대상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행위이며 그것은 의자 하나를 놓는 것으로 상징된다는 뜻이겠다. 물론 그림에는 이 모든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될 만한 제목이 붙어있지 않다. 2004년에 열었던 세 번째 개인전
‘나는 이제 西歸로 간다’도 전체적인 타이틀만 붙여놓았을 뿐 각 작품에 따른 제목은 없다. ‘무제(無題)’라는 제목조차 없다.

▲ 30년을 가꿔온 숲 산책에 나선 현 화백.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완벽한 자유를 원하는데 그림을 보는 사람 역시 벽을 통과하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일이 제목을 달아 보는 사람의 자유의 몫을 벽에 가둘 순 없어서 제목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저 제 그림을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현 화백이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보는 사람에게 따뜻함, 포근함을 느끼게 하기 위한 배려인 성 싶다. 오일 파스텔을 이용해 점묘기법으로 표현한 풀밭은 세상 시름을 떨치고 팍 퍼질러 눕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손가락으로 문질러 표현한 오름 등성이는 서러움에 지친 이의 가슴을 다 품어 안아 줄 것만 같다. 파스텔로는 큰 작품을 그릴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어깨가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도 현 화백이 작업을 지속하는 까닭은 아마도 우리에게 그런 위안을 선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저는 제가 잘난 줄 알았는데, 다 제가 잘 나서 잘난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모두 제 안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밖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모든 사람, 흙·풀·바람·햇살·하늘·바다와 같은 모든 자연이 저를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보답의 의미, 혹은 올해로 육십을 맞은 제 인생의 중간 정리의 의미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작업실은 작은 갤러리이자, 작은 도서관이기도 하다.
오는 10월 21일부터 서귀포 기당미술관에서 전시 예정인 개인전의 타이틀은 ‘그대의 風情’. 개인전을 앞두고 작업실에 펼쳐져 있는 여러 작품 가운데 하나, 붉은 삼나무 그림을 두고 현 화백은 이렇게 들려준다.

“누군가의 소설에 ‘붉은 삼나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형상화가 이뤄졌습니다. 붉은 삼나무가 실제로 있는 것인지, 노을빛을 받은 삼나무인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구절 하나가 이 그림을 이끌어낸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제 그림이 누군가에게 다가가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조각이 되고 춤이 되고 노래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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