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찢겨진 강정, 희망은 있는가
<2>주민들만 ‘골병’든다
“죽고 싶다” 응답률 무려 40%…전문의, “심각한 수준”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 조정 실패가 낳은 후유증은 상상을 넘어선다. 정부와 도를 향한 분노가 되레 주민들간 격한 충돌을 양산하고 있다. 강정 주민들은 마을을 ‘총성 없는 전쟁지역’이라는 자조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생활과 의식 곳곳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2년4개월에 걸친 갈등의 늪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주민들과 함께 살펴본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피해’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주민 10명 중 4~5명이 정신 건강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귀포신문이 강정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다. 지난 9월2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이번 결과는 그냥 지나쳐도 될 사소한 내용이 아니었다.

특히, ‘자살’을 생각한 주민 비율이 40%를 넘어섰다. “이같이 집단적인 피해 양상은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결정적인 결함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는 분석이다.

# 정신 건강 ‘이상군’ 최고 57%…적대감>우울>불안 순

서귀포신문은 마을 주민 110명을 대상으로 정신심리설문(BSI)을 진행했다. 무응답과 불성실한 응답자 12명을 제외한 98명을 추려냈다. 이번 조사는 해군기지 찬성 또는 반대 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구성비는 운동 참여 주민이 82.6%다.

조사 결과 전체 조사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 ‘이상군’은 항목별로 많게는 57%, 최소 17.3% 비율을 보였다. 한 가지라도 이상 소견이 있는 사람은 전체 중 74명(75.5%)에 달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적대감’ 증세를 보인 주민이 56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57%를 차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우울’(53.1%)이나 ‘불안’(51%)·‘강박’(50%) 증상도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외에도 ‘대인민감성’(44.9%), ‘신체화’(38.8%), ‘편집증’(37.8%) 순으로 분석됐다.

이범룡 밝은신경정신과 원장은 “사회에 대한 분노나 주민소환 좌절을 통해 느낀 고립감과 적대감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며 “예상됐던 일이지만 보통 인구의 최대 20%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이번 결과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 원장은 또한 “분노가 특정 대상에 ‘투사’하거나 친밀했던 사람에게 더욱 더 가혹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감정적 상처를 한방에 되돌릴 수 있는 묘안은 없지만, 도민 사회의 심리적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자살 생각 44%…일반 도민의 5.4배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엔 잘 가던 강정포구에도 가질 않죠. 항상 응어리진 느낌입니다. 집 팔고 당장 나가고 싶어요. 이사가더라도 서귀포시내로 가진 않을 겁니다.”

이번 설문에 “이까짓 조사하면 뭐하나”라며 응수하던 김정태(가명·50대)씨는 그동안 쌓아 왔던 ‘스트레스’를 성토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일 뿐, 갈등과 괴로움이 내면에 깊은 상태”라고 말했다.

최근 1주일 동안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 사람은 43명(43.9%)으로서, 응답자 절반 가량이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2008년 사회통계조사’(통계청)에서 제주 도민의 자살충동 평균치가 8.1% 수준임을 감안하면, 일반 도민보다 5.4배 가량 높은 셈이다.

자살 이유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 가운데 38.0%가 ‘정부나 도의 태도’를 꼽았고, 36.7%가 ‘지역 주민간 갈등’을 선택했다. 나머지는 경제적 문제(12.6%), 가정 내 불화(7.6%), 주변인의 태도(5.1%) 순으로 나타났다.

실제 ‘자살을 시도하거나 계획했다’고 응답한 주민들도 전체 34.7%나 됐다. 해군기지 결정계획이 발표된 2007년 5월 이후 자살을 시도하거나 계획한 횟수를 묻는 질문에 34명이 1회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정신 건강 약화가 수면 장애로 이어지는 ‘불면증’ 현상도 나타났다. 응답자 가운데 31명(31.6%)이 ‘잠들기’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고, 32명(32.7%)이 ‘잠을 유지하기’ 힘든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강동균 마을회장은 2년 넘게 하루 세 시간도 채 잠들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의료연대 제주지부 한 관계자는 “그동안 속으로만 삼켜왔던 주민들의 정신적인 피해가 집단화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이는 국가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에게 끼친 폭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신적인 피해보상으로만 귀결될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재검토를 통해 해소시키려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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