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리글수레]정낭과 정보공유 시

[칠십리글수레]정낭과 정보공유 시스템98년 미국의 말콤볼드리지 위원회가 글로벌 기업 CEO 300명에게 ‘앞으로 기업이 당면할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1위는 ‘세계화’, 2위는 ‘지식경영’으로 나타났다. 경영인들에게 ‘지식경영’이 최대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필립스, GE 같은 다국적 기업은 물론 국내에서도 정보와 지식 관리를 전담하는 CKO(Chief Knowledgement Officer/최고지식책임자)의 도입이 늘고 있다.한때 위기를 맞았던 크라이슬러도 90년대 중반 소형차 네온의 개발단계에서 디자이너, 엔지니어, 조립 기술자 들을 한 팀으로 묶어 투입하는 혁신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자 각자가 지닌 정보가 한곳으로 모이면서 시너지를 발생, 60개월 정도 걸리는 출고 시일을 반으로 단축, 기사회생의 토대를 마련했다.알고 있는 것(Knowledge)이 체계화되어 효율적으로 공유 되는냐에 따라 기업의 성공여부가 결정되는 시대이며, 가치 있는 정보를 기업 목표에 맞는 지식으로 빠르게 전환하여 공유하는 것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토대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정보의 공유’보다 정보의 개발과 독점, 즉 ‘노하우’만을 우선시하여 습득한 정보를 자신만 소유하려고 해 온 우리 역사에서도 효율적인 ‘정보공유’ 문화를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식 대문인 정낭이 바로 그것이다.정낭은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긴 나무 1~3개를 양 옆 돌기둥 구멍에 걸쳐 놓아 밭에 나가거나 외출을 할 때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볼일이 있어 찾아 온 사람이 허탕을 치는 일이 없도록 집 안에 누가 있는지, 언제 돌아오는 지를 설명하는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표현 방법이다. 이미 세계 최초의 인간 디지털 이진 부호 통신(HBCC)으로까지 인정받고 있다.정낭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다투어 구축하고 있는 ‘정보공유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것이 될 수 있고, 이와는 반대로 별로 쓸모없는 정보라도 때에 따라서 아주 귀중하게 쓰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정보의 ‘가치변환성’의 속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낭을 매개로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했음은 물론 정낭이 주는 정보를 토대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신의와 협동의 미덕까지 키워왔다. 또한 정보의 빠른 전달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나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확보할 수 있었다. 정낭은 소수에게만 전달하는 정보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정보의 편식을 막고, 정보의 폭도 넓힐 수 있었다.국내 최고의 관광명소인 제주도가 세계적인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제2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와 함께 강한 바람과 싸워 온 제주인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초가,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고기잡이배 ‘테우’, 밀물과 썰물 때의 위치까지 고려해 축조한 돌그물 원담 등 제주 고유의 특색있는 문화와 전통을 재조명 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정낭’과 같이 제주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문화 유산을 정보화 사회와 효율적으로 접목시킨다면 제주도는 국내 및 세계의 정보문화를 선도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오경수/시큐아이닷컴 대표이사제359호(2003년4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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