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빛고운 강정에 살어리랏다 ③
표선리 서예 강사 정순임씨…2년째 동반자 자처

 

▲ 정순임씨.

 

돌이켜 보니,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집회나 투쟁을 이끌면서 목에 힘을 뻑뻑 주는 활동가가 있는가하면, ‘머릿수 하나라도 더 보태자’는 생각 하나로, 현장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조금은 비장하면서 약간은 수줍은 듯 실천하는 그들. 그 속에 서귀포시 표선리 서예 선생, 정순임 씨(38)가 머릿수 ‘하나’를 꼭꼭 채우고 있었다.

지난 23일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만난 정순임 씨는 만나자마자 막걸리부터 건넨다. 소탈하면서 서민적인 이미지가 짙게 풍겼다. ‘무슨 일 하느냐’ 물으니, “표선에서 영세한 서예학원 꾸린다”고 했다. ‘소속 단체는 어디냐’는 질문에, “어느 단체에서 활동하느냐 왜 묻느냐”고 받아치고는, “어디 소속도 아니고, 단지 머릿수 채우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순임 씨는 지난 2년 전부터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문제로 싸움을 해왔다. 그러니까 집회와 시위, 연행, 폭력이 이어지던 뜨거운 여름과 차디찬 겨울을 벌써 두 번이나 주민들과 함께 보낸 셈이다. 한 때 여론을 달궜지만, 지금은 잊힌 채 외로운 싸움이 계속되는 해군기지 문제에 ‘동반자 역할’을 맡고 있다.

그가 강정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2년 전, 올레길을 걸으면서 강정마을을 지날 때였어요. 시뻘건 글자를 새겨넣은 반대 깃발이 나부낀 걸 봤을 때서야, ‘아 여기에 뭔일이 있구나’ 싶었죠.” 실은 그녀, 지역 문제에 별로 관심없었다고 고백한다. “지역적인 문제는 신경도 안쓰고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큰 줄기의 문제들에만 관심을 기울였죠.”

순임 씨는 그 ‘노란 깃발’이 던진, 신선한 충격으로 궁금한 김에 마냥 따라나섰다. 제주도를 돌던 ‘해군기지 저지 도보순례’길을 두 차례나 함께 동행했다. 함께 걷던 주민들은 그녀에게 해군기지 문제를 소상히 알려줬다.

그래서 분명하게 알게 됐단다. “자연 파괴보다 정말 더 힘든 건 마을 주민들이 뼈저리게 고통받는 공동체 파괴입니다.” 그녀가 아쉬운 건, “강정 땅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공동체 파괴가 곧 마을을 욕보이는 것 같아 속으로만 앓는다고 전했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형제와 가족, 친척들이 ‘남 보듯’ 살아가는 게 못내 슬프다고 했다.

 

 

순임 씨는 자주 못가도, 적어도 이주일에 한번은 스케줄 상에 ‘강정마을 방문’을 꼬박꼬박 끼워 넣는다. ‘명예 주민증’을 줘야 한다는 주민들의 말을 건네면서 수줍은 표정도 살짝 짓는다. 그럴만도 한 게, 순임 씨는 벌써 강정마을 중덕 바닷가(해군기지 예정 부지)에 텐트도 쳐 놓고, 이미 냉장고, 전자렌지도 기증해놨다. 강정마을 천막에 이름 붙인 ‘중덕사’라고 쓰인 글도 사실 그녀의 솜씨다.

제 고향인양, 강정마을 자랑도 여념없다. “강정마을은 별게 다 있어요. 펑펑 쏟아지는 민물에다, 정 많은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가보면 곧 알게 되지만, 워낙 살기에 좋은 땅이죠. 여름 땡볕에 중덕 바닷가에 맨발을 담그면 또 어찌나 시원한데요. 밤에는 쏟아지는 별에 가슴도 벅차오르죠.”

분명한 것은, 해군기지 반대를 힘주어 말하던 시민단체 사람들보다 ‘머릿수 채우기’ 역할에 충실하던 이들이 더 오래 강정마을 주민들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순임 씨처럼 마을을 방문하고 음식을 나눠주면서 평범하게 응원하는 시민들이 몇 분 더 있다. 순임 씨는 “반대를 한다는 분들도 강정마을 흙바닥에서 구르고 주민들과 부대끼며 힘을 실어 줘어야 하는데, 말만 앞서고 생색만 내는 것 같아 아쉽다”고 건넨다.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는 주민들 곁에 늘 있으면서도,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순임 씨.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절실하다”는 생각에 방문을 이어간다. 그녀가 내맡은 ‘머릿수 보태는 일’에 깃든 숭고함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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