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후 서귀포시장, 7일 강정주민과의 대화

‘주민 무시한 태도’ 고개 숙여 사과, 주민들 “신뢰 회복” 바람

 

△ 고창후 시장과 기지반대 강정주민의 간담회가 열린 강정의례회관

 

오후 8시30분이 지나면서 강정의례회관에서 고창후 시장과 대화를 나누던 주민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입구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던 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시장이) 달라져신게 마심”

“도지사도 우리 편에 서켄 했으니”

“이제는 믿어봐야 주게…”

얼큰한 술기운에 성을 내는 사람이나, “그래도 몰라…” 라고 말끝을 흐리는 주민도 더러 있었지만, 4년 동안 공무원과 만나고 나면 늘 핏대를 세우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창후 서귀포시장이 7일 오후 7시부터 강정의례회관에서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고병수 신부를 비롯한 해군기지 반대 주민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간담회를 통해, 고 시장은 ‘주민과 행정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것과 쌍방이 공감하는 방안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강정 주민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외면했던 시와 도정이 변해야 한다며, 주민의 입장을 바탕으로 해결의지를 끝까지 이어가길 원했다.

이날은 주민 50여명과 시청관계자, 언론사 등 모두 80여명이 넘는 사람이 자리를 채워, 신임 시장의 입을 주목했다.

 

△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강 마을회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김태환 도정에서는 너무나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다행히 해군기지 문제 해결의지를 밝힌 우근민 지사가 당선됐다”며 “3년 넘게 싸워온 우리는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 현안이 있겠지만 강정의 해군기지 문제는 서귀포시민, 제주도 전체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인식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고창후 서귀포시장은 가장 먼저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진 3년 동안, 공동체가 찢겨나가며 너무 많은 아픔을 겪으셨다”며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입장을 대변해야 할 도정과 행정이 갈등을 부추기는데 앞장서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점을 사죄드린다”고 밝히며 앞에 앉아있는 주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어 “이 자리에 큰 선물을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약속한다. 갈등은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마을에서 찬반으로 나뉘며, 공동체가 깨진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고 시장은 “이전 시장과 비슷한 모습을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들이 있다”며 “우 지사가 행정경험도 없는 젊은 변호사를 (시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냐”며 현 도정의 의지를 대변했다.

또한 “앞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확보하며 시정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히며 “만약 한 쪽 입장에만 서있다면, 아무도 날 신뢰하지 않아 결국 문제가 해결할 수 없다”며 중립 이유를 설명했다.

고 시장은 ”해군 관계자는 이미 만났고, 찬성 측 주민들도 만나겠다”고 행보를 밝히며 “양측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을 마련하겠다”고 앞으로의 해결방향을 제시했다.

 

△ 고창후 서귀포시장

 

고 시장에 의하면, 취임 직후 해군 관계자를 만나 해군과 주민간의 고소, 고발로 인한 수사를 취소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더불어 “조만간 해군의 전향적인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여러분이 이 싸움에서 100% 이긴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준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현재 입장을 현실적인 바탕에서 논의할 것을 주문했지만, 서귀포 시와 제주도가 주민과 등을 돌리는 자세를 취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김 시장은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행정절차가 몇가지 남아있지만, 김태환 도정이 행정절차를 (해군과) 너무나 잘 협력하는 바람에 ‘마땅한 칼’이 없는 상태”라고 표현하며, “그렇기에 강행 여지는 불행하지만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군기지 공사가 강행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없을 것”이라며 “흉내만 내다가 발을 뺄 것이란 생각 추호에도 없다. 문제 해결에 어려움과 고난이 있더라도 저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해 주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 시장에게 강정주민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어진 질의시간에서 주민 이한호 씨는 “(시장이) 처음에 말했던 ‘갈등해소’가, 해군기지 반대입장을 밝혀 갈등을 해소한다는 의미인지, 강정 주민 사이에 나타난 갈등만을 해소한다는 것인지 정확한 의미를 말해달라”며 기지 건설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다.

이 질문에 고 시장은 “이 자리에서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에 대한 찬성과 반대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가장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주민들이 갈등 없이 찬성할 때 건설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극심하게 반대하는 입장이 존재하는 데 건설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미 골이 파일 대로 파인 주민간의 갈등 회복을 우선적으로 주목한 것이다.

더불어 “불과 몇 일내에 내 생각이 드러날 테니,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내 입장을 지켜달라”고 강조했다.

 

△ 질문하는 주민

 

윤호경 강정마을회 사무국장은 “주민에게 일명 ‘인센티브(혜택)’를 주기위한 사업이 여러 건 있다는 의혹이 있다”며 사실 관계를 물었고, “혼란스러운 지역상황을 틈타 주민의 동의도 없이 강정천 개선사업, 해안도로 공사, 워터클러스터사업 등의 개발사업이 무자비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시장은 인센티브 사업으로 꼽히는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답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정천 개선사업은 중앙정부가 전국적으로 재난방지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며, 워터클러스터사업은 “현재 도의회에서 조건부동의 통과가 됐으므로, 하원동 주민과 함께 논의해서 시와 도정에 개선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설명했다.

윤용필 씨는 “부지 내 홍보관 시설이 미관상 매우 좋지 않으니, 철거할 수 없는지 알고 싶다”고 홍보관 철거를 요구했다.

시장은 “철거할 권한이 시장에게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분명히 해군측에 (홍보관과 관련한)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 관심있게 지켜보는 주민들

 

윤한복 씨는 절대보전지구 해제가 합당한 과정을 거친 것인지 법률가로서 입장을 물었다.

이에 고 시장은 “보전지구를 변경하는 경우 주민절차를 밟도록 명시돼 있지만, 해제 즉 축소하는 경우는 관련조항의 문맥상 애매한 해석이 가능하다”며 “법조인의 시각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한다면 동의가 필요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절대보전지구 해제처분이 취소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반대 메세지를 적은 현수막을 걸면, 거는 족족 철거한다고 하소연 했고, 4년동안 투쟁을 이어오며 각종 경조사를 시설이 열악한 의례회관에서 치르는 형편을 털어놨다.

고 시장은 “최근에 강정 지역에 걸린 당선축하 현수막도 철거됐다”고 웃으며, “다른 생각을 가진 주민이 불법 현수막으로 신고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양측을 동등하게 고려하는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또한 대천동 주민자치위원장과 일부 동장이 해군기지 홍보관을 방문하며 갈등을 부추기는 행태를 보인다고 항의하자, “혹시나 방문하면 자신에게 바로 전화해서 알려달라”며 “그 즉시 조치를 취해, 더 이상 방문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간담회를 마치며 강 마을회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주민에게 사과하며 해결의지를 보인 시와 도정을 이제는 믿어야 한다”며 “지나간 잘못한 점을 다시 들추어내 따지기 보다는, 행정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해 변화된 도정에 맞게 주민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근민 지사와 고창후 시장이 이전 도정의 행태를 따라간다면 죽음도 불사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 고창후 서귀포시장

 

고 시장은 “오늘 자리는 행정과 강정주민의 신뢰회복을 위한 의미있는 첫걸음”이라고 끝맺음 지으며 주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날 의례회관에 참석한 고시림(62)씨는 “지금까지 막혀있던 대화의 길이 열린 것 같다”며 “이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은 의미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소연 할 곳 없이, 4년의 세월이 짓눌러온 아픔을 애써 차분하게 풀어내는 듯 했다.

 

△ 간담회를 마친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강정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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